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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이순재에게 무너지다

나는 이순재라는 배우를 좋아하지 않았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야동순재'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을때조차 나는 거침없이 싫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싫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내가 싫어하는 한나라당이었고 대선 때 이명박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게다가, 명계남과 문성근 등이 드라마와 영화에서 거의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과는 달리 그는 각종 광고와 드라마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 씁쓸했다.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노무현 지지자가 아니며 민노당 지지자에 가깝다.)

한나라당이라고 이순재라는 배우를 싫어한다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나 또한 내 나름의 신념에 기반하여 좋고 싫음을 구분한다.

나는 "좋은 배우란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배우이며, 그런 배우들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라고 믿는다. 즉, 이순재는 나의 신념에 비추어볼 때 최소한 사랑하고 싶지 않은 배우인 것이고 나는 이 신념과 판단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산>을 보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조대왕을 연기하는 걸 보고 흔들려 버린 것이다. 이런, 내가 왜 이순재 연기에 감동하는 거지? 왜 이순재가 나오길 자꾸 기다리는 거지?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영조대왕이 돌아가셨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영조가 죽고 난 뒤부터 <이산>을 잘 보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베토벤 바이러스>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강마에를 맡은 김명민의 독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또한 강마에를 맡은 김명민의 연기를 보려고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는 편이다. (장근석과 이지아 둘만 나올때는 정말 채널을 돌리고 싶다...)

하지만 이순재가 맡은 김갑용이라는 캐릭터가 회를 거듭할 수록 묵직하게 꽂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내 나름의 개똥같은 신념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베토벤 바이러스 8화를 보다가 나는 무너져 버렸다. 강마에가 치매걸린 사람을 연주자로 쓸 수 없다며 나가라고 했을 때 김갑용이 자신은 치매가 아니라고 받아치는 그 장면. 이순재는 김갑용이란 캐릭터를 빌어 내 마음에 커다란 감동을 일으켰다.

젠장! 솔직히 얘기하자. 그런 감동을 불러일으켜준 이순재라는 배우가 고맙기까지 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이순재라는 배우를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이 나와 다르더라도 나는 그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배우란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배우이며, 그런 배우를 사랑해야 한다'는 나름의 신념이 배반당하는 순간이었다

신념을 배반하고 나니 괴로웠다. 그 괴로움은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신념을 배반했으니 머리가 혼돈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마음이 가는대로 머리가 가는 수밖에. 이순재로 인해 나의 신념은 방향 전환을 하기로 했다.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그의 예술적 재능과 노력을 거짓없이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가 정치적으로도 올바르다면 마땅히 그를 존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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