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 안산에 있는 놀이패 걸판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며 배우이다. 탁월한 희극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 그는 놀이패 걸판에서 3-4년동안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을 썼고 그의 작품들은 재미없는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유쾌하고 통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본업은 연극이지만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민중의 소리에 <걸판지게>라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고, 얼마전에는 <미국과 맞짱 뜬 나라들>이라는 책의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하는 등 다재다능하다.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손에서 책을 떼지 않는 엄청난 독서광이다. 작품에서 표현되는 그의 상상력과 통찰력은 그의 성격과 재능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엄청난 독서량에 힘입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작가로서의 그는 근본적으로 세계와 삶에 대해 초월적 자세를 가진다.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외면한다는 의미에서의 초월이 아니라 누구보다 더 깊이 천착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초월하는 것이다. 그의 방식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삶에 대해 비탄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며 또한 비장하게 맞서 피터지게 싸우는 방식도 아니다. 그는 관객들을 데리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그리하여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거대한 빌딩도 하늘에서 보면 성냥갑이 되어 버리듯, 그와 함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삶은 복잡하지 않다. 세상은 모순적이라서 오히려 웃긴 것이 되어 버린다. 관객들은 그와 함께 날아올라 연신 웃음을 터뜨리면서 삶과 세계를 명쾌하게 이해하는 통찰력을 얻고, 동시에 모순을 극복할 생산적 힘을 충전할 수 있게 된다.
연출가로서의 특징을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는 스스로 쓴 작품을 스스로 연출하는 방식의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던 탓에, 그가 써낸 대본에는 기본적인 연출설계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의 연출적 특징을 잡아내려면 텍스트와 공연만으로는 부족하며 연습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절묘한 타이밍, 빠른 전환, 정확한 포즈의 사용 등의 수법을 선호하며 또 그만큼 익숙하다. 반면에 블로킹이 조금 단순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이는 걸판의 주된 공연장소가 집회장이나 행사장인 탓일게다. 그의 연출방식은 상당히 민주적인데, 이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원하는 사람들과의 작업에서는 불리한 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배우로서도 여러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인물의 특징을 잘 포착하고 집중적으로 잘 표현하는데 있다. 만약 그가 어떤 사람을 흉내낼 때 사람들은 놀라워 하며 "와! 똑같애!"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박장대소를 하며 "맞다, 맞어!"라고 반응하게 된다. 그는 똑같이 만들어 내지 않으며 인물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만을 포착하여 이를 과장해서 표현하는데 능란한 것이다. 그는 흔히 애드립이라고 부르는 즉흥에도 능한데 단순히 말장난에 익숙한 것이 아니라 극의 내적상황과 공연 현장의 흐름에 맞게 창조해낼 줄 알며 이는 그가 작가이자 연출자인 탓이리라. 연습시에 몸을 사리거나 익숙하다고 대충 흘려버리지 않고 활발하게 몸을 사용하는 성실함 또한 그가 가진 좋은 미덕이다.
그와 그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재능과 열정에 대해 질투가 나고 좌절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그가 앞으로 더 많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는 아직 서른이 채 안 된 젊은 예술가다. 그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그것이 아주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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