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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음반] 우리나라 5집-2

 

[음반] 우리나라 5집 3일간 듣기-2일차



 둘째 날 듣기-주관으로 진실에 접근하다.


 노래는 시다. 소설이나 극과는 달리 시와 노래는 1인칭으로만 서술되며 서정적 자아를 전제로 한다. 외부세계에 의해 환기된 자아의 정서를 그야말로 토해내는 것이다. 민중의 편에서 민중의 희노애락을 담아내려는 민중가요 노래들의 대다수는 서정적 자아를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설정하여 노래했다.

 이것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상업주의 예술과 맞서는 하나의 무기였으며 때문에 진보를 지향하는 예술가들이 가져야할 하나의 미덕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기존 우리나라의 노래들 또한 대부분의 서정적 자아는 집단적 자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5집은 확실히 집단적 자아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으며 개인을 서정적 자아로 앞세우고 있다. 개인의 사색, 고민들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정당한 것인가? 우리나라의 기존 앨범들에 그러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놓고 그래도 되는 건가? 민중이라는 집단의 삶과 지향을 담아내야 하는 민중예술이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인가?


 단언컨대, 그래도 된다! 아니, 제발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집단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은 집단이라는 자아를 설정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우리는 해를 거듭할수록 집단이라는 우리의 자아를 유형화시키고 박제화시키지 않았던가.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촛불에서 보았듯이 민중이라는 집단은 그렇게 개성적인데!


  모든 것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가치가 발생한다. 과학은 객관적인 것을 통해서만 진실을 드러낼 수 있고 그때 비로소 보편성을 획득하지만 예술은 다르다. 예술은 주관적인 것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며 이때 예술은 보편성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예술이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고자 할 때, 과학과는 정반대로 보편성이 사라져 버린다. 예술가 자신의 주관적인 눈과 귀로 환기하지 못하고 표현해낸 민중의 삶과 희노애락은 쉽게 박제화되고, 이런 작품은 몇몇에게는 여전히 반가울지 몰라도 대다수의 민중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보편성이 상실되는 것이다.


 예술가가 삶의 진실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주관적인 눈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야 하며 이렇게 접근해낸 진실이라야 대중을 공감시킬 수 있다. 예술가는 삶의 객관적인 기록자가 아니며 자신의 오감으로 세상을 감수하는 살아있는 인간이다. 대중은 예술가에게 객관적인 것, 빈틈이 없는 논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예술가들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주관적인 사색을 만나고자 한다. 예술가와 대중이 이렇게 만날 때 진실한 공감이 만들어지며 이렇게 형성된 공감은 비로소 세계와 삶의 진실을 드러내준다. 물론 만나지 못하는 경우, 진실은 예술가 자신의 것으로만 남게 되며 이때도 보편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슷비슷한 유형의 작품보다 개성이 넘치는 작품이 많은 것이 나는 더 반갑다.


 둘째 날, 나는 5집을 들으며 흐뭇해진다. 우리나라 5집에서 감지되는 서정적 자아의 변화가 좋기 때문이다. ‘서정적 자아의 변화’를 통해 ‘주관으로 진실에 접근’하려는 우리나라의 태도를 어느 앨범에서보다 뚜렷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주관으로 접근한 진실이 얼마나 대중의 진실에 접근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지 그 결과는 아직 알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의 태도 자체에는 몇 번이고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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