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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극단의 혁신

극단의 혁신


-작성자 류 성-


1. 극단은 연극을 위해 존재한다.


 극단은 운영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연극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예술이기 때 이다. 그러므로 극단에는 삶의 경험, 생활태도, 가치관, 심지어 예술관까지 각기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예술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극단을 운영한다. 연극을 하기 위해서.


 극단은 본성상 결사체가 아니라 대중단체이며 예술단체이다. 이는 누구 한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자주적 의사에 따라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대중단체의 생리도 그렇지만, 연극은 집단예술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연극예술은 연극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창조되기 때문이다. 주체성과 창조성은 서로 비례하는 것이다.


 극단이 일반적인 회사 혹은 공무원 조직처럼 상하관계에 의해, 상명하복으로 운영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그렇게 운영되는 곳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지는 예술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들을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바에야 공연 기획사를 운영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단체 운영에 책임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본심과는 상관없이 독재에 빠지기 쉽다. 그들은 자신이 행사할 권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책임이 더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속도 많이 썩고 남모르게 애태울 일도 많다. 만약 구성원들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면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독재적 운영보다 더 나쁜 것은 구성원들의 의존적 태도다. 의존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작업할 줄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한다. 극단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구경꾼, 훈수꾼의 지위로 떨어뜨린다.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뒷담화를 자주 까지만 풀기 위한 노력에는 게으르다.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아주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미루어 단체의 독재적 운영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상호 불신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의 구성원들은 언제나 조직적 관점에 기초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때로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과 배치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를 감수하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연극이란 예술을 하기 위해서 극단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동존이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맞춰가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때로는 충돌할지언정 서로간의 간극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자꾸 채워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정말 복잡하고 어려우며 커다란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이 사람을 변화발전시킨다고 말한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들끼리도 변화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더 높은 예술을 창조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문고리는 한 번에 열어버릴 수 있지만 사람의 변화발전은 절대로 그럴 수 없는 법이다. 


 토론은 열려있고 의견은 모아가되 결정은 책임자가 해야 한다. 책임자의 권위가 없는 단체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모든 토론과 운영이 백가쟁명식으로 되어서는 곤란하며 쓸데없는 감정문제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일단 결정이 난 것에 대해서는 따르는 것이 기풍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과 다른 결정이 나왔다고 근태를 하는 것은 나쁜 짓이다. 그렇다고 결정사항을 무조건 따르기만 강요하는 것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결정된 사항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서로 이끌어주고 노력해야 한다.


 예술은 지시와 복종으로는 절대로 창조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술은 예술가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기반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연극은 집단 예술이라는 특수성이 더해진다. 진정한 연극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는 속에서 창조된다.



2. 연극에 규칙은 없지만 극단에 규칙은 있다.


 연극을 창조하는데서 규칙이란 불편한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비평가들이 드라마의 법칙이니 하는 이런저런 규칙들을 만들어 냈고 이로써 예술가들을 속박하려 들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위대한 연극은 규칙을 무시하거나 깨부수며 탄생했다. 그러나 연극에 규칙은 없지만 극단에 규칙은 필요하다.


 먼저 규칙에 대한 관점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 극단에 규칙이 왜 필요한가? 구성원들을 속박하고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가? 물론 그런 규칙을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규칙은 사람들을 귀찮게 만들뿐이며 더군다나 예술을 창조하는데 아무런 힘이 없다. 극단에 규칙이 필요한 이유는 상호 신뢰를 높이고 창조적 활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 규칙은 필요하다.

 

 규칙은 강제성이 있는 것이다. 강제성이 없는 규칙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므로 있으나마나하다. 잘 지킬 때는 상이 있고, 지키지 못했을 때는 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비인간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적인 것과 무법천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예술작업은, 특히 연극작업은 상호간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는 속에서 원활하게 진행된다. 규칙에 강제성이 부여되는 것은 창조적인 상태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규칙은 구성원들의 토론에 의해 도출되고 합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자발적인 준수를 위한 기초이다. 또한 규칙은 선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규칙의 이행과 불이행을 누가 보아도 판단할 수 있을만큼 명백해야 한다.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되는 규칙은 오히려 상호신뢰를 해치고 극단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규칙은 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 불필요하게 많은 규칙도 오히려 해가 된다. 예술단체의 규칙은 예술작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규칙을 어겼을 땐 누가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고백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존경받을 만한 일이다. 누구나 부족한 점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으며 나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동료들에게 허심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대충 넘기려 드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규칙을 어긴 동료에 대해서는 도와주어야 한다. 동료가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를 깨닫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규칙을 앞세워 사람을 심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가장 비겁한 짓이다. 규칙은 상호신뢰를 높이고 작업의 활력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합법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쥐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격하는가 아니면 돕기 위해서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안다.


 규칙이 만능은 아니다. 규칙보다 중요한 것은 동료들 간에 형 노릇, 아우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형이면 형답게 굴어야 한다. 동생들한테 부끄럽지 않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 동생이 잘 못 나가면 형답게 따끔하게 지적도 해주어야 하고, 손 잡고 격려도 해주어야 한다. 동생도 동생답게 굴어야 한다. 궂은 일이 있으면 먼저 나서야하고, 형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형과 동생이 서로 헐뜯고 싸우는 집안도 볼장 다 본 집안이지만 서로 무시하는 집안도 잘 되긴 어렵다.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이다.



3. 예술가란 작업을 지속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예술가란 멋진 예술작품을 창조한 사람, 즉 어떤 결과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 예술가란 오히려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사람, 즉 과정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술가로 살기가 어려운 까닭은 작품의 창조가 어려운 게 아니라 작업을 지속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이유들이 예술가의 지속적인 작업을 방해한다. 예술가는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며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예술가가 작업을 지속하며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가 특히 중요하다. 첫째, 그의 예술기량이 끊임없이 높아져야 한다. 둘째, 그의 세계관이 끊임없이 높아져야 한다. 셋째, 최소한의 물질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예술가의 지속적인 작업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된다. 예술가들은 활동을 하면서 이 세 가지 문제에 항상 주목을 돌려야 한다.


 예술가와 예술단체는 자신의 예술적 기량과 세계관을 발전시킬 계획과 방법론이 있어야 한다. 재교육과 일상적 훈련이 없으면 예술가는 결국 자신을 소모하는 길로 빠지게 되기 마련이다. 예술기량과 세계관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편향에 빠지지 말고 서로 종합적으로 발전시켜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직성을 띄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내키는대로 배우고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 어느 극단은 구성원들이 각자 개인취향에 따라 누구는 발레를, 누구는 아크로바틱을, 누구는 탈춤을 배우러 다녔다. 그러다보니 일정이 안 맞아 일을 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렇게 몇 달 동안 배운 것들이 그들의 연극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공부를 하든, 훈련을 하든 집단에 필요한 것을 찾고 함께 높여 나가야 한다.


 단체로 하는 공부나 훈련에만 기대서는 높아지기 어렵다. 혼자서도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조직성을 띄어야 한다. 배워서 남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남 주기 위해 배워야 하고 그렇게 배운 것들은 남을 주기 위해 애써야 한다. 집단을 위해 필요한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은 집단의 재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집단을 위해서만 필요한 관점은 아니며 자신의 성장에도 유리하다.


 물질생활적 보장 또한 중요한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해 결국 예술을 포기하고 떠나거나, 개인적인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 우리는 예술을 위해서 이 문제에 충분히 관심을 돌리고 풀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렇다고 이 문제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예술을 지속하기 위해 물질생활적 문제를 풀려는 것이다. 게다가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물질 생활적 문제를 푸는 것 또한 조직성을 띄어야 함은 물론이다.


2010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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