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 이야기

극장에 대하여

극장에 대하여


-작성자 류 성-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극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수천년에 이르는 연극의 역사가 증명해주듯 극장이 없어도 연극은 가능하다. 오히려 극장은 사회적인 의미와 역할에서 필수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등의 유럽에서 극장을 일컬어 ‘시민의 학교’라고 불렀던 것은 극장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극장에서 집단적인 예술체험을 하는 것은 사람의 사상과 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이에 따라 극장을 ‘학교’라고 불렀던 것이다. 비록 전시성이긴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극장 혹은 예술회관 등을 의무적으로 건립하거나 지원하는 것은 극장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한 때, 진보적인 연극인들은 극장을 혐오하기도 했다. 컴컴한 극장에 갇혀 세상도 모르고 자위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극장은 부유한 사람들의 사교장 혹은 여대생의 고급취미생활 정도 의미밖에 못 가졌고, 연극인들도 민중의 삶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작품들을 공연하며 자기 도취에 빠져들었다. 하기에 당시에 제기된 극장을 박차고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선진적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극단이 극장을 박차고 나가기는 쉽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과거에 비해 극장은 많아졌으나 의미가 거의 없다. 관에서 세운 극장들은 거대한 시설, 그에 따른 엄청난 관리비를 소모하지만 정작 운영비는 턱없이 적은 액수다. 전시효과에 지나지 않으므로 효율성이 거의 없다. 대다수의 민간극장들은 부동산 임대업의 일환일 뿐이다. 용산전자상가처럼 대학로에 몰려들어 상업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극단은 대관료에 밀려 자유롭고 창조적인 예술작업을 할 수 없다.


 대중들의 피해를 언급하자. 관객개발이란 이름하에 작품은 획일화되어 관객의 예술체험은 편식경향에 빠져버린다. 무엇보다 공연 관람을 위해 극장에 가는 것은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우스개 소리지만 대학로의 관객은 딱 두 종류 밖에 없다고 한다. 연극 매니아거나 처음 연극 보러 온 사람이거나.


 그러나 새로운 움직임도 있다.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흐름이지만, 지역극장, 동네극장, 마을 극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지역극장은 사회운동상으로도, 예술운동상으로도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사회운동 단체들도 지역사회와의 결합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진보적인 예술가들 중에서도 지역을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멀지 않은 시기에, 지역극장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운동과 예술운동이 혼연일체가 되어 발전하는 사례도 속출할 것이다.


 물론 극장이 사회적인 의미와 역할만 있는 것은 아니며 극단에게도 유의미하다. “우리는 전국의 축제를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퀄리티를 높이려면 극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극장을 세웠다.”라는 00극단 대표의 이야기도 그러하거니와 만약 극단이 자기주도형, 현장생산형, 주체성장형으로 전환하고자 한다면, 극장은 보다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다.


 현재와 같은 환경에서는 극장을 만드는데 극단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극장은 극단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소유로 되어야 한다. 극장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와 역할에서도 그러하며, 극장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많은 극장들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극단이 극장을 자기의 소유로 여기면서 배타적이고 독점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극장들은 사회의 지지와 엄호를 받지 못하므로 발전할 수 없고 만약 쓰러질 위기에 처하더라도 아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건설할 때부터 지역시민사회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동했던 소풍의 사례는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일단 건설되고 나면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 학교, 심지어 관공서 등과도 적극적으로 관계해야 한다. 지역 인사들과 함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지역의 문화예술단체, 예술동아리 등에게도 개방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극장이 아니어야 한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의논도 하고, 지역에서 공연사업도 여러 차례 진행하면서 극장이 만들어진다는 입소문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해야 한다. 연습실을 간단하게 개조해 소박하나마 작은 공연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오는 일이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산책을 가는 듯 쉽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극장의 위치가 커다란 작용을 하는데 가능한 주거 밀집 지역에 위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관람료의 책정도 중요하다. 극장의 탄생과 존재 뿐만 아니라 언제 무슨 공연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홍보도 해야 한다.


 극장을 운영하는데 기획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질의 예술작품을 확보하고 좋은 예술사업들을 구상하여 그것이 지역대중과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극장에서 필요한 기획력이다. 극장은 대관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자체의 기획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질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칫 여기에 매몰되어 지역사회의 인심을 잃어버리는 것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극장은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가깝고 소중한 무엇이어야 한다.


 극장은 극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극장이 극단의 사정과 계획에 따라 종속적으로 운영된다면 극장은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잃어버린다. 극단에도 좋지 않다. 극장을 운영하느라 극단의 본질적 임무인 창작과 공연을 등한시하게 된다. 극단은 극장을 모태로 삼아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써야 하며, 그 작품을 들고 먼 여행을 떠날 수도 있어야 한다.


2010년 작성

'예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디오 대본 멘트 모음  (3) 2012.03.30
종합-3대전환, 극단의 혁신, 극장  (0) 2012.03.30
극단의 혁신  (0) 2012.03.30
예술운동의 3대전환  (0) 2012.03.30
최후 진술서  (0) 201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