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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최후 진술서

최후진술서




최후 진술에 앞서 몇개월에 걸친 기간동안 애써주신 판사님외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최후진술을 시작하겠습니다.


1. 


먼저 혐의 사실 각각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 검찰은 피고가 이적단체인 실천연대에 가입하여 대의원으로 활동한 것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첫째, 피고가 대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실천연대는 이적단체가 아니었습니다. 둘째, 피고는 수많은 대의원 중 한 사람이었을 뿐, 정책과 노선의 수립에 별다른 관여를 한 바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재판과정에서 피고도 일관되게 주장했으며, 증인들의 진술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검찰은 다른 수많은 대의원들과 달리 왜 유독 피고의 가입과 활동만 문제가 되는지 분명하게 입증하지 않고 있습니다.


(2) 검찰은 피고의 실천연대 4기, 5기 대의원대회 참가가 찬양.고무.선전.동조라고 주장합니다. 이 또한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첫째, 피고는 대의원 중 한 사람으로써 단순히 참가했을 뿐입니다. 둘째, 총노선과 특별결의문의 내용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습니다. 셋째, 총노선과 특별결의문을 채택할 당시 찬성투표 혹은 동조발언 등의 적극적인 행위를 한 사실이 없습니다. 검찰은 개최자도, 정책 입안자도 아닌 피고에 대해서 유독 혐의를 적용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3) 북한의 핵실험을 지지.옹호하는 행위도 한 바 없습니다. 긴급회동은 아예 참가하지도 않았고, 2기 1차 대표자회의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라 참가했을 뿐입니다. 회의에서 현안에 대한 토론을 했을 뿐, 이 자리에서 북핵실험을 지지옹호하는 활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는 검찰의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피고와 증인들의 진술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검찰은 회의를 했다는 것 말고는 실제로 어떤 결의를 했는지, 향후 어떤 활동을 했는지 전혀 입증하고 있지 못합니다. 오히려 수사기록(3379쪽)은 피고와 가극단 미래가 북핵실험 관련한 어떤 활동도 계획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4) 피고가 연출한 반미문예실천단 공연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옹호하는 공연이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닙니다. 재판과정에서 피고는 피고의 미학적 입장, 구성연출의 특성 등을 들어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반미문예실천단의 공연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옹호하는 공연이라고 주장만 할 뿐,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입증하지 않고 있습니다.


(5) 전사 김양무 작품이 이적표현물이 아니라는 점도 재판과정에서 다 말씀드렸습니다. 게다가 노래가사와 대사들도 본인의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라는 점도 말씀드렸습니다. 공소내용과 같이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아 선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김양무 열사의 삶을 스케치하듯 그렸을 뿐입니다. 극렬한 공산주의자였던 체게바라의 평전도 불티나게 팔리는 세상입니다. 하물며 20분짜리 단막극에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검찰의 인식이 이상할 따름입니다.


(6) 2006.12.26자, 2007.4.32자 등 이메일 수신을 이적표현물 취득이라고 하는 것은 코메디에 가깝습니다. 누군가 내 메일주소로 발신하면 무조건 수신하게 되어있는데, 어떻게 골라받고 가려받을 수 있습니까. 게다가 발신한 사람이 아니라 수신한 사람을 처벌하겠다니요. 그리고 공소내용에도 기재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들은 피고 개인 메일로 수신된 것이 아니라 가극단 미래 메일로 수신된 것입니다.


(7) 연구목적으로 취득, 보관한 것들에 대한 해명도 다 말씀드렸습니다. 주체극문학의 새기원이라는 문건의 경우 출처(이용웅 교수의 북한문화예술연구소 다음 까페)까지 다 밝혔고, 연구가 목적이었다는 것도 증명(피고의 연구물-북한 극예술의 서사적 특징)했습니다. 피고가 블로그를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수사기관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결국 검찰은 피고가 "대의원이었다, 회의에 참가했다, 메일을 수신했다"는 등의 사실만 나열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2. 


얼마 전, 한국 대사관들이 교민들과 여행객들에게 평양냉면 먹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에는 북한팀 응원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인지 묻는 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사태가 이지경이면 국가보안법이 거의 도로교통법 수준이 되는 겁니다. 국가보안법의 권위를 도로교통법 수준으로 떨어뜨린 당사자는 무리한 기소를 남발하는 검찰과 수사기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정말 합리적인 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적용은 엄격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법을 준수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현재와 같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 남발은 법의 권위를 바닥으로 떨어지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검찰이 기소를 남발하여 공포감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충분히 효과가 있는 듯 합니다. 


첫째, 피고는 공포감 때문에 예술연구와 창작의 범위를 스스로 제한시키고 있습니다. 대학교수가 아닌 다음에야 어떠한 연구도 보장 될 수 없는 것인가 싶어 연구활동에 회의가 들곤 합니다. 또한 창작의 소재와 내용 등에 대한 자기 검열이 극심하여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우를 맡아 공연을 할 때조차 제게 주어진 대사를 따져보며 조심스러워 합니다.


둘째, 3년간에 걸친 통신제한조치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생활전체가 불안에 쌓여 있습니다. 누군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말입니다. 범죄행위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도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울 겁니다.


셋째, 피고의 주변인들도 충분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하는 어떤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 이후로 저와의 만남을 자꾸 꺼리게 된다는 고백을 하더군요. 제 블로그에 한참 들락거리던 후배도 이번 일 이후로는 안 들어온다더군요. 자기도 감시받고 있을까봐 무섭다 했습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입니다.


이번 일로 인해 피고는 상당한 곤욕을 치르고 있으며, 혹시라도 본의 아니게 국가보안법을 또 어기게 될까봐 무서워 조심 또 조심합니다. 그러나 공포감으로 유지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는 아닐 것입니다. 광대들에게 마음껏 체제 비판을 하도록 마당판까지 열어준 조선시대 양반들의 여유가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사회가 몇 백년에 걸쳐 유지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3.


부족한 변론 끝까지 경청해주신 재판장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최후진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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