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슬랍스키와 그의 연기이론
***연극공부모임 2차 세미나 자료 중 일부
-류 성-
당대 최고의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의 삶과 이론, 실천에 대해 스스로도 많은 글을 남겼지만, 후대의 연극인들이 그의 삶과 이른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에 대해 해석한 글들은 몇 십배로 방대한 수준이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추종자들도 많거니와 반대자들도 그만큼 많았는데, 브레히트, 메이어홀드, 박탄코프, 그로토프스키, 스즈키, 리스트라버그, 피터브룩 등 그가 스타니슬랍스키의 추종자이건 반대자이건 20세기 연극사에 족적을 남긴 연극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스타니슬랍스키에 대한 언급을 결코 빼놓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20세기에 출현한 연기 시스템들은 모두 스타니슬랍스키의 업적을 발전시키거나 반대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러므로 어느 학자는 연극의 역사를 스타니슬랍스키 이전 시대와 스타니슬랍스키 이후 시대로 구분할 정도다.
스타니슬랍스키는 현대 연극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예술가이며 그런만큼 그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 두 가지를 말해볼 수 있다.
첫째 스타니슬랍스키는 '연기'에 대해 전면적이고 과학적인 해명을 시도했다.
스타니슬랍스키 이전시기까지 연기는 과학적이고 전면적으로 해명되지 못한 분야였으며, 거의 선천적인 재능과 신비한 영감에 의한 것으로 믿어져 왔다. 그러나 스타니슬랍스키는 인간이 예술적 영감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는 예술의 창조에서 신비로운 영감의 존재를 인정했으나,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영감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언제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했다. 의식적인 방법으로 무의식적인 창조세계에 도달하려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사고는 예술 창조에서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과 당대배우들의 실천적 경험을 토대로 하고, 성악, 무용 등의 인접예술에 대한 연구와 유물론적 미학, 자연과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등의 도움에 의해 '연기'에 대해 과학적인 해명을 시도했다. 이후 그가 밝혀낸 것들에 대해 대해 반론도 많이 나왔지만 현대 연기예술의 근간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타니슬랍스키의 탐구에 의해 연기의 성과는 이제 더 이상 우연적이거나 선천적인 것, 신비한 것이 아니라 배우의 이성과 의지에 의해, 과학적인 방법론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그는 이미 밝혀낸 것을 고집하거나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려 평생에 걸쳐 투쟁했다.
그는 자신의 시스템이 세계적인 극찬을 받고 제자가 되고자하는 이들이 각국에서 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스템을 만국공통의 불변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 나라와 자기 시대에 맞는 메소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얼리즘 연극의 전통에 서있었지만 자신의 제자인 박탄코프가 자신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의 공연을 올렸을 때도 전폭적으로 인정했으며, 또한 자신과 전혀 다른 길을 가려는 제자 메이에르홀드의 실험을 원조하기 위해 연극연구소를 개설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기가 밝혀낸 이론들을 다시 허물어버리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작업했던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배우들이 종종 혼란에 빠지기도 했을만큼 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이 세운 이론을 스스로 부정하고 거듭 수정해나갔다.
그로토프스키가 '그(스타니슬랍스키)의 연구가 신체행동의 메소드에서 중단된 것은 배우라는 직업의 가장 위대한 진리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이 미래의 연구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듯이, 그는 권위를 점하고 그에 안주하려는 예술가가 아니라 연기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떠난 예술가였다.
기술했듯 스타니슬랍스키는 끊임없이 자신이 세운 이론을 뒤집어가며 새로운 길을 밝혀내려 애썼고, 때문에 그의 연기론은 평생에 걸쳐 몇 번의 변화를 거친다. 그 변화의 궤적을 따라감으로써 스타니슬랍스키의 삶과 연기론의 또 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배우였던 스타니슬랍스키는 초기에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배우에게 보여주고 세부적인 몸짓과 억양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도록 반복시켰다. 작품의 분석력과 창조성이 있는 극소수의 배우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배우들은 그가 보여준 것을 외적으로 모방하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그는 '나는 나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했다. 그때 대부분의 배우들은 나의 연출지시를 감정으로 이해할 정도로 성장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외면적으로만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다른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스타니슬랍스키 자신도 외면적 특징으로부터 역할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자주 사용했고 이것이 종종 좋은 성과를 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타니슬랍스키는 한계를 느끼며 '이러한 방법이 가장 좋은 창조의 길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단지 외면만을 모방하는 배우들은 역할의 내적인 측면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당연히 외적인 표현에 묻어 나오지도 못했다.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기계적이고 낡은 연기를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의 연출법이 배우로 하여금 창조과정을 무시하고 최종결과만 손에 넣으려고 하는 위험에 빠뜨릴 수 있으며, 그것이 배우의 창조적 자주성을 압박함으로써 오히려 예술성을 해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제 정반대의 길을 택하는데 그것은 내면에서 외면으로, 감정상태에서 행동으로, 역할의 체험에서 구현으로 향하는 연기접근법이다. 그는 배우들이 내면을 구축하는 방법을 탐구했으며 이를 도와줄 여러가지 기술을 개발했다.
희곡에 대한 치밀하고 심리적인 분석, 장면의 과제, 정서적인 느낌과 톤의 설정, 감정상태의 규정 등을 강조하고 정서기억법으로 유사한 체험을 불러일으키는데 노력했다. 배우는 움직이기 전에 책상앞에 앉아서 역할의 정신과 심리를 파악하는 것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는 배우가 등장인물의 심리와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체험하게 되면 외적인 구현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천에서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었으며 이것 또한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이 방법으로도 물론 무언가 중요한 것이 배우의 마음속에 투입되어 그것이 창조 상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불필요한, 계획적인 정보, 생각, 감정이 마음속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것은 배우의 얼굴이나 마음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배우를 위협하고, 자유로운 창조를 방해할 뿐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책상 앞에서 체험하는 버릇이 있는 배우는 무대에 나가서도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행동하는 대신에 자신의 체험속에 그저 머물고 있게 되고, 그 결과 체험 자체의 진짜 같은 외면 묘사라는 새로운 타입의 틀에 박힌 연기가 만들어져 버린 것이다.
또 다시 탐구를 거듭하던 스타니슬랍스키는 구체적인 행동없이 창조적 감정상태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자신의 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포착하기 힘들고 정착시키기 어려운 내면의 영역에 있기보다 신체적 행동의 영역에 있는 편이 낫다'고 결론을 내리며 '신체적 행동법'이라는 메소드를 개발한다.
현실생활에서도 심리적 과정은 홀로 생성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에 의한 자극의 영향으로 생겨나거나 발달한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즉, 배우의 내면은 구체적인 신체행동을 통해 자극되어 효과적으로 생성될 수 있으며, 이것이 역할을 창조하는 더 좋은 접근법이라는 것이다.
이 무렵 그는 역할에 대한 작업을 희곡을 아예 읽지 말고 행동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기까지 하는데, 지금까지 일관되게 대본의 치밀한 분석과 이해에 대해 강조해왔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스스로 밝혀낸 모든 근간을 뒤집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무렵에 이전에 자신이 탐구한 결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했고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배우들은 커다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다음은 브레히트의 '스타니슬랍스키 연구' 중 <특히 스타니슬랍스키 연극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와는 전혀 다른 연극을 하려 했던 브레히트의 언급을 들어보는 것도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작품의 시적 특성에 대한 감각.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이 시대의 기호에 따라 연기해야 했던 자연주의 작품 자체에도 연출은 시적 특성을 부여하였다. 스타니슬랍스키 연극은 결코 무의미한 르포르타주로 빠지지 않았다. 우리 독일의 경우는 고전주의 작품들조차 종종 빛을 얻지 못한다.
둘째, 사회에 대한 책임감.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들에게 연극의 사회적 의미를 가르쳤다. 그에게 예술은 목적 자체가 아니었으나 그는 극장에서 예술을 통하지 않고는 목적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셋째, 스타의 앙상블 연기.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에는 크든 작든 스타만 존재했다. 그는 배우 각각의 연기가 공연 연기를 통해서만 완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넷째, 굵은 선과 세무묘사의 중요성.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모든 작품에 깊은 생각으로 이루어진 구상과 정교하게 만들어진 세부묘사를 가득 부여했다. 이 두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가 없다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다섯째, 진실에 대한 의무.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라면 자기 자신과 자기가 묘사하려는 인간을 아주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어느 하나는 다른 것에서 유래한다는 점을 가르쳤다. 배우가 관찰을 통해 가져온 것이 아니라면, 또는 관찰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느 것도 관객이 관찰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여섯째, 자연스러움과 양식의 조화.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극에서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커다란 의미와 짝을 이룬다. 그는 사실주의자로서 추한것을 묘사하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추한 것 까지도 우아하게 묘사했다.
일곱째, 모순이 가득찬 것으로서의 현실묘사. 스타니슬랍스키는 사회적 삶의 복잡함과 상이함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그 복잡함과 상이함을 묘사할 줄 알았다. 그 결과 그의 모든 공연은 의미를 얻는다.
여덟째, 인간의 중요성. 스타니슬랍스키는 확고한 휴머니스트였고, 바로 그러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연극을 사회주의를 향한 길로 이끌었다.
아홉째, 예술의 끊임없는 발전이 갖는 의미.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결코 자신의 월계관 위에서 잠자지 않았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모든 공연마다 새로운 예술수단을 발전시켰다. 그의 극장에서는 박탄코프와 같은 자기 스승의 예술을 자기 나름대로 완전히 자유롭게 계속 발전시키는 의미있는 예술가들이 배출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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