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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배우와 연기-6 연습에 대하여

 배우와 연기 6

연습에 대하여


-류 성-


배우는 자신의 예술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다른 예술가와는 달리 혼자서 작업하고 혼자서 완성시킬 수 없다. 작곡자는 혼자서 작업하여 곡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배우는 다른 배우와 함께 작업해야만 한다. 배우가 창조해내는 역할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배우는 다른 배우가 창조하는 역할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역할을 완성해간다.  배우는 혼자서 연구하고 사색하는 시간도 가져야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배우들과 함께 하는 연습-일상적인 훈련이 아니라 공연을 준비하는-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배우에게 연습이란 작품을 창조함과 동시에 자신의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연습은 자기의 대사와 동선을 외우고, 상대역과의 약속을 맞춰보고, 이 모든 것들을 반복해서 익히는 과정으로 되어 버린다. 물론 이것들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만약 이것이 전부라면 연극은 조립된 공산품에 불과하고 연습은 조립 공정에 불과하다. 이것을 과연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형적으로 진행되는 연습은 작품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배우에게는 아주 불행한 일이다. 배우도 다른 예술가들처럼 창조 과정속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형적인 연습관행은 배우가 성장할 기회를 말살한다.

기형화된 연습은 혁신되어야 하지만 혁신의 임무가 연출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배우를 포함한 모두의 책임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배우가 앞장서야 한다. 배우는 연습이 자신의 예술을 창조하는 귀중한 과정임을 알고 누구보다 예술가답게 연습에 임해야 한다.


배우는 연습과정을 역할에 대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배우에게 주어진 대본에는 역할의 10%밖에 제시되어 있지 않다. 나머지 90%는 배우의 창조적 상상력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배우는 연습과정에서 다른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며 역할에 대한 것들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연습할 때 같은 장면의 연기를 몇번이고 반복하는 목적은 대사와 동선을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 위해서다.


훌륭한 배우들은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종종 작가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어 역할의 전모를 생생하게 완성해낸다. 그런 배우들은 반복되는 연습을 지겨워하지 않으며 항상 연습시간이 모자라다고 느낀다. 그들은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역할을 창조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배우들은 작가가 대본에 써 놓은 것조차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역할을 앙상하게 만들어낸다. 그런 배우들은 반복되는 연습을 지루해한다. 그들은 반복할때마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는 커녕 자꾸 기계적으로 연기를 한다. 그런 배우들로 연극을 만들어야 할 때는 연습 횟수를 최소화하여 공연을 올리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 실수할까봐 긴장이라도 하기 때문에 그나마 생생함이 덜 훼손되기 때문이다.


배우는 매 연습시마다 성의를 다해 적극적으로 연기해야 한다.연기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 기억된다. 배우가 공연 중에 연기를 한다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고 기억하여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연습과정에서 몸이 기억한 것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연습할 때 대충대충 연기하면 몸은 그것을 기억하고 공연에서 그대로 풀어놓는다. 몸은 무섭도록 정직하다. 그러므로 연습때마다 언제나 몸을 활발하게 쓰고, 표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매 연습마다 성의있게 연기해야  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역시 연극이 집단작업이기 때문이다. 연습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동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모든 배우는 자신의 연기를 홀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배우들과의 호흡 속에서 완성한다. 상대가 어떻게 연기 하느냐에 따라 나의 연기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배우는 연습중에 동료와 집단의 창조작업을 돕기 위해서라도 성의를 다해 연기해야 한다. 집단작업의 원칙은 간단하다. 하나는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하나를 위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연극이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다.


어떤 배우는 연습중에 자꾸만 자기 연기를 대충하고 다음 장면으로 재빨리 넘겼다. 나는 왜 자꾸 그러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아주 미안해하며 '아직 내 연기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연습을 방해하면 안 되잖아요. 나중에 따로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엔 제대로 할게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첫째, 우리는 연습중이다. 우리는 창조하는 과정에 있다. 결과를 보여주고 검사받는 자리가 아니다. 연습시간이니 마음껏 연습을 하자. 연습에 정말로 방해가 되는 것은 대충 연습하는 것이다. 둘째, 나중에 혼자서 따로 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함께 연기하라. 그래야 다른 배우들도 자신이 어떻게 연기해야 할 지 알 수 있다. 당신도 혼자 있을 때 어떤 작업을 해야할지 알 수 있을 거다.


2009년 7월 1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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