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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연기수업 2차 강의록

연기수업 2차



1. 배우론


재미있는 경험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느 공연에서 몇몇은 나의 연기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며 극찬을 했는데, 또다른 몇몇은 나의 연기가 영 어색하고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옳은 것일까요? 제 스스로는 그날 연기를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그날 연기를 잘 한 것인가 못한 것입니까?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영 별로라고 할 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 즉 나는 영 못한 것 같은데 사람들은 오늘 연기 정말 좋았다고 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연기를 잘 했는지 못했는지 스스로도 모를 때 조차도 많습니다. 이렇듯 배우의 예술은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좀처럼 어렵습니다.


배우예술은 좀 특수한 예술입니다. 첫째, 표현의 주체와 표현 수단이 동일합니다. 화가는 캔버스, 붓, 페인트, 기타 재료를 사용하여 자신의 예술을 창조합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바이올린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예술을 창조합니다. 그런데 배우는 배우 자신이 표현 수단이 됩니다. 둘째, 연기는 순간적인 예술입니다. 배우는 순간적으로 창조해야 하고, 그렇게 창조해낸 예술-연기는 바로 그 순간에 존재할 뿐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작가나 화가의 예술과는 달리 배우의 예술은 관객의 기억 속에만 남을 뿐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작가나 화가는 자기의 작품을 다시 재검토합니다. 주체 스스로  결과물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배우는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주체와 수단이 동일하고, 순간적인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배우는 스스로 자기 예술의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배우는 종종 주체성을 잃고 피동에 빠집니다. 피동에 빠진 예술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가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배우는 연출가 혹은 선배연기자가 시키는대로 할 수도 있고, 시범을 보여준대로 따라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 배우는 꼭두각시일 뿐 예술가로서의 배우는 아닙니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얘기해 보겠습니다. 배우예술 자체의 특수성외에도, 배우를 피동적이고 비주체적으로 만드는 요인들이 더 있습니다. 먼저 배우는 고용된다는 점입니다. 배우는 캐스팅 되지 않으면 자신의 예술을 창조할 기회가 없는 예술가입니다. 고용되어야 하는 사회계급적 처지에 있는 배우는 자신을 고용할 사람들에게 예술적으로도 복종하기 쉽습니다.

또 20세기부터 시작된 연출가의 독재현상도 한 요인입니다. 배우를 연출가의 예술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요소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배우가 창조하는 영역은 협소해졌고, 연기에 대한 연출가의 명령은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되었습니다. 작품을 위해서라구요? 아닙니다. 연출가 혼자만의 예술을 위해서 배우의 희생을 강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연극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요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이른바 '신극'이 시작되었는데, 그 주체들은 대개 일본에서 직간접적으로 연극을 경험한 유학생들이었습니다. 국내로 돌아온 그들은 극단을 꾸리고 대개 연출가가 되었고, 연기자들(그들은 처음으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에게 직접 연기를 가르쳤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신극역사가 애초부터 배우는 연출가에게 종속되어 있었고, 배우예술이라는 고유의 영역이 자리잡기 힘들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연기는 배우의 예술이라고 여기는 관점 자체가 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연기란 언제든지 연출가가 개입하거나 뜯어고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지요.


이번엔 연습과정을 봅시다. 많은 연출가나 선배연기자는 쉽게 지적하거나 시범을 보입니다. 그들은 배우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창조할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도와주지 않습니다. 쉽게 지적하고, 꾸짖고, 그래도 안 될 경우 대신 시범을 보입니다. 멋드러지게. 그리고 배우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배우는 파괴되고 맙니다. 지적을 하고 시범을 보이는 사람은 신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실상 지적받는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고 위축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예술에 용감해지지 못하고 지적받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시범을 보이는 것은 더 나쁘다고 봅니다. 결국 내가 해보인 것 처럼 따라하라는 셈인데, 시범을 따라하는 배우는 결코 잘 된 연기를 펼칠 수가 없습니다. 연기는 배우 자신의 내면과 외면이, 내적 정당성과 외적 표현이 통일될 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범을 따라하는 것은 외면만이, 외적표현만을 형식적으로 흉내내고 있을 뿐 내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꼭두각시처럼, 앵무새처럼 따라할 뿐이다.


지적과 시범 속에서 성장한 배우는 어떻게 될까요? 당장 코앞에 둔 공연을 만들 때, 지적과 시범이 어느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배우의 모자란 기술을 감출 수도 있고, 그래서 관객의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성장한 배우는 장래에 상상력이 빈약하고, 유연성도 취약해집니다. 그는 답답한 연기, 죽은 연기만 하게 됩니다. 게다가, 지적이나 시범을 보이는 사람의 객관성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들의 지적은 예술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그들의 시범이 예술적으로 더 나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잘못된 지적이거나, 잘못된 시범일 가능성은? 무엇이 더 예술적인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지적이나 시범이 무용하고 유해롭다는 것이 아닙니다. 유용한 때도 있고,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강조하는 것은 결국 연기라는 예술이 배우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볼 때 배우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배우가 어리고 경험이 얕다고 해도, 남의 예술에 함부로 끼어들어서 제 입맛대로 난도질 하는 것은 틀려먹은 짓입니다. 동시에 연기가 자신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기의 힘과 지혜로 창조하려는 노력은 않고, 남에게 쉽게 의존하는 배우도 결코 예술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배우 또한 예술가라면, 배우작업의 본질도 창조에 있습니다. 무대에서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게 배우의 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연기가 배우의 고유한 예술이라는 관점이 확실히 서야 합니다. 또한 연기교육방법도, 연습과정도 배우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고무하도록 혁신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배우가 예술가다운 자존심과 철학을 가지고,  스스로의 능력을 높여야 합니다. 자존심도, 능력도 없는 사람은 결국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작품분석도 제대로 못하는 배우에게 어떻게 안심하고 전적으로 맡길 수 있겠습니까? 초보적인 기술조차 모자란 배우에게 예술의 창조를 어떻게 기대하겠습니까? 게다가 시간마저 촉박하다면 도저히 참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배우들이 독재적인 연출가들에게 분노하지만, 많은 연출가들은 무능하고 노력하지 않는 배우들에게 분노합니다.



2. 호흡


전 시간처럼 호흡훈련을 하겠습니다. 누워서 하는 과정은 넘어가고, 앉은 자세를 취하십시오. 호흡을 잘 하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집중과 이완을 위한 훈련입니다. 저번 시간에도 이야기했듯, 배우는 긴장할 수 밖에 없고, 이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신체적 이완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가부좌 자세로 깊은 호흡을 하세요. 머리속에 들어오는 생각을 붙잡지 말고 그저 흘려보내세요. 대신 호흡 자체에만 집중하세요.


시간이 한동안 흘렀습니다. 복식호흡을 계속 유지하고, 눈을 감은 채로 상상하세요. 마음의 눈으로 보세요. 오늘은 앞에 흰 벽이 있습니다. 색깔을 하나 고르세요. 보라색,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주황색, 노란색 등. 회색이나 흰색, 검은색은 말고. 자신이 고른 색깔을 소리로 만들어 흰 벽에 발사하세요. 흰 벽 전체가 다 칠해질때까지 소리를 길게 발사하세요. 동시에 다 같이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준비되면 알아서 시작하세요. 자, 호흡을 안정시키고, 발사.


날숨을 한계까지 내뱉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약간의 호흡을 남겨 두세요. 숨이 전부 다 빠져나가버리면 몸이 긴장하고 사고가 멈춥니다. 약간의 호흡을 머금으세요. 이 훈련은 폐활량을 늘이기 위한 훈련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들숨이 들어오고, 자연스럽게 날숨이 나가도록 하세요.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이 스스로 들어왔다가 나간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야 긴장을 제거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습니다.


날숨을 쉴 때, 한 숨을 쉬 듯 한 번에 호흡이 빠져나가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잘 못된 것입니다. 고르게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호흡이 고르게 나가기 위해서는 복부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들숨을 쉬고 잠깐 멈출 때, 그 순간 복부는 단단해집니다. 날숨을 쉴 때 이 단단함이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즉, 지지되어야 합니다. 이 상태가 되어야 호흡을 고르게 내뱉기 용이합니다. 몸 내부에서 보자면, 횡경막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이 느낌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음 수업부터 여러차례 설명할 것입니다. 일단은 날숨을 고르게 내 쉬려고 노력해보세요.


앞 배를 의식적으로 수축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도 호흡을 잘 못하는 겁니다. 호흡을 깊이 하면 횡경막이 팽창하여 장기를 밀어내고 따라서 복부전체가 부풀어오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앞 배를 수축시키는 사람들은 복부전체가 아니라 앞 배만 왔다갔다 합니다. 복부전체가, 특히 옆과 뒤가 부풀어올라야 합니다.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것이 아닙니다. 호흡이 스스로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호흡이 스스로 들어왔다 스스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뿐입니다.


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잘 못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완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겠군요. 단, 의식을 놓치면 안 됩니다. 호흡에 집중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전히 잘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호흡이 내려가지 않아 계속 어깨가 들썩이는 사람도 있고, 집중을 잘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 되다가 안 되는 등 기복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간을 너무 짧게 잡아서 그렇기도 합니다. 5분정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수업시간이니 너무 많은 시간을 쓸 수는 없는데,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하면 달라질 것입니다. 매일매일 한다면 더 좋아집니다. 호흡에 집중하고, 이완되고 하는 그 모든 과정을 두뇌가 기억하고, 신경과 세포가 기록합니다. 그래서 자주 한다면 더 빨리 더 쉽게 같은 상태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소리로 흰 벽을 칠하는 상상은 잘 되었는가요? 각자의 느낌을 말해보세요. 색깔, 칠하는 방법, 벽과의 거리 등을 달리 상상하고 해보세요. 각기 소리의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3. 읽기 훈련


간단하게 발음놀이 훈련을 합시다. 그리고  저번 시간에 읽었던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목소리를 왜곡하지 말고 자신의 소리를 낼 것. 둘째, 내용파악을 확실히 할 것. 일단 앉아서 한 사람씩 읽어봅시다.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물어봅시다. 내용파악을 확실히 했습니까? 그렇다면 그 문장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습니까? 요점이 무엇입니까? 예. 좋습니다. 그러면 수식어를 다 빼버리고 핵심만 말해보세요. 중심단어를 말해도 좋습니다. 내용을 확실히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지금 답을 맞추라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요점이 그것입니까? 그렇다면 그걸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계속 강조합니다. 내용파악을 확실히 하고 말을 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지껄이면, 말의 리듬이 파괴되고 엉뚱한 곳을 강조하게 됩니다. 즉 내용을 놓치면 끊어읽기, 찍어읽기, 호흡, 발음 등등이 총체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반대의 경우, 그것들은 미리 계산하지 않아도 대부분은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 이번에는 한 사람씩 서서 읽어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아까 둘러 앉아 읽을 때보다 발음이 꼬이고, 버벅대고. 호흡이 불안정하고, 엉뚱한 데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긴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처음으로 서서 읽는데, 함께 둘러 앉아서 읽을 때보다 훨씬 긴장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남들앞에서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긴장을 일으킵니다.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 배우의 작업 중 가장 큰 일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이야기하겠다. 둘째, 긴장으로 인해 내용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다시 내용에 집중해보세요.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용에 집중할 수록 긴장도 사라집니다.


목소리 왜곡은 없으나 말의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발음도 좋고 끊어읽기, 띄어읽기 등도 정확한 걸 보면, 이젠 내용파악은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전달하려는 의지가 약합니다. 그러니 말의 힘이 없는 것입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말에 힘이 생깁니다.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는데 너무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소리는 자연스러우나 에너지가 빠지면 안 됩니다. 배우의 소리는 자연스럽고 극적 에너지가 넘쳐야 합니다. 소리에 에너지가 없다면 자연히 연기는 맥이 없고, 결국 극은 활기를 잃어버립니다. 쓸데없이 멋을 부리거나 과장하는 소리는 듣기에 거북하지만, 에너지 없는 소리는 지루함과 하품을 유발합니다. 극은 진실해야 하지만 시시하거나 사소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극입니다. 자연스럽고 에너지가 넘치는 소리. 이것이 배우가 추구해야 하는 소리입니다.

이번에는 크게 읽어 보세요. 대부분 공통적으로 소리를 높이려는데만 신경써서 또 내용을 놓쳐버렸습니다. 내용을 놓치니 여러가지가 한꺼번에 망가집니다.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잃어버리거나, 말의 리듬이 파괴됩니다. 소리를 키우려고 애를 썼는데 오히려 소리가 작아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당연하지요. 목소리의 크기만 억지로 높이려고 하면 대개 이런 상태에 빠집니다.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사실 에너지가 넘치는 소리란 단지 소리크기만 높은 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리크기만 높이려고 하면 방금 이야기한 상태에 쉽게 빠져버립니다.


이번에는 상황을 줍니다. 30명 정도 규모의 강의실. 마음의 눈으로 상상해보십시오. 이번에는 50명 정도 규모. 이번에는 100명 정도 규모. 이번에는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각자 동시에 자기 문장을 읽어보세요.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긴장이 좀 제거될 것이고, 주변이 소란스러우니 자동적으로 소리의 에너지도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하면 말의 에너지도 약해집니다.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나의 전달 의지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억지로 목소리의 피치를 높이려고 애를 쓰지 말고, 의지를 강하게 가져 보세요. 내용을 놓치는 순간, 의지도 약화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번에는 각자 동시에 움직이며 읽어보세요. 걸으세요. 계속 걸으면서 하라는 것은 아니고 필요하다면 멈추세요. 강조하기 위해서여도 좋고, 맺기 위해서도 좋습니다. 어떤 움직임이든 충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리 계획하지는 마세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용의 전달입니다. 내용을 놓지지 말고, 전달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유지하세요. 좋습니다. 한 번 더 읽어보세요. 이번에는 제스쳐를 써도 좋고, 표정을 써도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계획하지 말고 충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세요. 전달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쓰라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표정과 제스쳐를 사용합니다. 그렇듯 자연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 미리 계획하거나, 억지로 몸을 쓰려고 하다간 또 내용을 놓칠 겁니다. 절대로 내용을 놓치면 안 됩니다. 내용을 전달하려고 말을 하는 것이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내용을 놓치는 순간, 의지도 약화되고, 말의 리듬도 파괴됩니다. 결국 에너지도 없고, 알아듣기 힘든 말이 됩니다. 전달하려는 의지를 더 강화하고 지속하세요. 한 번 더. 한 번 더. 한 번 더. 반복할 때마다 뭔가 트이는 느낌이 올 것입니다. 그걸 기억하고 몸에 붙이세요.


마무리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각자 한 사람씩 읽어봅시다. 어떤가요? 자신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나는 계속 묻고 있습니다. 자신의 느낌이 어떠했는지, 자신의 평가는 어떠한지.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관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기자의 상태가 그런 것입니다. 역할을 연기하는 자기가 있고, 또 그것을 관찰하고 조절하는 또 하나의 자기가 있는 상태. 그것이 연기자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느낌을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연기자의 주체성도 생깁니다.


대부분은 좋아졌습니다. 이들의 말은 이전과는 달리 확실히 잘 들리고, 특히 내용이 귀에 꽂혀 들어옵니다. 그런데 몇몇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A는 자꾸 자연스러운 소리를 잃어버립니다. 자기 특유의 쪼가 수시로 나옵니다. 항상 신경을 써야 합니다. B와 C는 자꾸 긴장상태에 빠집니다. B는 위축되어 있어 보입니다. 지금 시험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느낌을 관찰하고 평가하면 됩니다. C는 급해서 자꾸만 실수를 합니다. 의욕과잉처럼 보이는데, 이것도 사실 긴장의 한 형태입니다. 힘을 빼세요. 솔직하고 진실하면 됩니다. 


1차 수업의 읽기에는 자연스러운 소리에 대해 강조를 했다면, 오늘 읽기에서는 내용을 파악하는 것, 발화하는데 내용을 놓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긴장을 제거하고, 의지를 강화하여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까지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또다른 훈련들을 통해 계속해서 강조할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한 마디 더. 앞서 이야기 했듯 배우는 자기 자신이 악기입니다. 연주자가 악기를 아끼듯이 자신을 아끼고 배려해야 합니다. 어느 연주자가 자기 악기를 함부로 대하며 연주하겠습니까? 배우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특히 연기에 접근하는데서 무턱대고 해치우듯 덤벼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배우는 목소리가 커야 한다며 일단 무조건 큰 소리로 말하는 것, 내용 파악도 부실한데 표현만 자꾸 하려고 드는 것, 껍질을 깨야 한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며 창피스런 짓거리를 하는 것 등은 너무 폭력적입니다. 배우는 차근차근 세심하게 연기에 접근해야 합니다. 절대로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마세요. 폭력적인 방식으로 예술이 창조되는 일은 드물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