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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연기수업 1차 강의록

연기수업 1차



1. 배우론


최근 구상중인 작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목은 <나는 영웅이다>. 연극배우인 주인공은 한 작품에서 영웅의 역할을 맡아 연기합니다. 웅대한 뜻을 지닌 비범하고 고귀한 인간.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연출가에게 쪼인트 까이기 일쑤고, 상대 배우에게 무시당합니다. 카드값 독촉에 시달리고 알바에 고달프지요. 어머니는 제발 정신 좀 차리라며 저주를 퍼붓고, 여동생은 사람구실 좀 하라고 핀잔을 줍니다. 다음날, 그는 못난 자신의 삶을 뒤로하고 무대에 올라 영웅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예술가들과는 달리, 배우는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도 연기를 해야 합니다. 화가라면, 그날 기분이 울적하거나,  흥이 안 난다거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그날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다릅니다. 약속한 시간에 연습을 해야 하고, 시작종이 울리면 무대로 올라가서 연기라는 예술을 해야 합니다. 그는 우울해서 미칠 것 같은 날에도 무대에 올라가 행복한 표정을 지어야 합니다. 물론 가수나 무용수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수나 무용수는 반주가 도와주기라도 합니다. 그들은 음악에라도 의지할 수 있지만 배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을 건 자기 자신과 상대 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정말 미워하는 상대와 함께 무대에 올라가 사랑을 속삭여야 하는 것이 배우입니다.


사람들은 배우가 무대에서 박수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배우들은 지적받는 사람입니다. 배우처럼 지적을 많이 받는 직업이 또 있을까요? 화려한 무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행복감? 그것이 얼마나 자주, 또 쉽게 두려움으로 변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또, 배우들은 대개 가난합니다. 배우들이 못 가진 것은 돈이고 가진 것은 츄리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가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 자기 작품이라도 남길 수 있습니다. 무명의 시인은 자신의 시 한 편 세상에 남기고 죽을 수 있지만 배우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포스터와 팜플렛에 담긴 자신의 이름 석 자, 그보다 운이 좋으면 신문잡지의 인터뷰나 평가 기사 정도. 연극사를 펼쳐보아도 배우에 대한 분량은 인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왜 하필 배우를 하려고 합니까? 배우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요? 그래도 배우를 하겠다면, 어떤 배우가 되고 싶습니까?


기술자 같은 배우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목소리, 적당한 끼, 신체적 조건 등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 그만일 뿐, 작품의 의미와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 등은 안중에 없거나 그다지 중요한 가치가 아닙니다. 무당같은 배우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빙의현상처럼 잠시 자신의 몸을 빌려줄 뿐입니다. 무대위에서 열정에 찬 연기를 해 보이더라도 정작 무대밖의 자신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런 배우들은 무대밖에서 관객들에게 실망을 줍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어린 시절, 어느 배우의 연기에 감동을 받아 그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 배우는 만취해서 추태를 부렸고 결국 스타니슬랍스키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 또한 자신이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안중에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저는 배우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신의 예술에 대해 좀 더 존엄있게 대하고 진지하게 성찰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배우는 속된 말로 딴따라가 아닙니다. 요즘 유행하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그저 남들을 웃기거나 울리기 위해 무대에서 까불어대는 사람쯤으로 자신을 인식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좋아서요." "단지 무대에 서는 게 좋아서요." "제가 뭘 아는게 있나요." 등등. 저는 이런 말들이 지겹습니다.  너무 겸손 떨지 말고 무식한 체 하는 거, 어쩌면 그것도 죄악이 아닐까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었으면 좋겠고, 예술가로서의 철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정상적인 것 아닌가요? 진정한 예술이 그러하듯 참된 연극은 인간을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고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은 배우에게 있습니다. 관객의 정신은 배우를 통해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그것도 점진적으로가 아니라 비약적으로 이동합니다. 그로토프스키의 연극론을 빌어 말하자면, 배우는 관객을 수직상승시키는 승강기입니다.



2. 호흡과 이완


호흡은 에너지입니다. 일상에서 흉식호흡을 사용하는 이유는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흉식호흡은 빠르고 얕으며 그래서 에너지가 약합니다. 그래도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큰 에너지를 써야 할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복식호흡으로 전환하니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화를 내며 소리지를 때 등등. 무대에서는 항상 커다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일단 말 자체가 일상과는 달라 문장이 길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또 일상어와는 달리 크고, 정확하고, 힘이 넘쳐야 합니다. 


먼저 코로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코로 들이마시면 입으로 들이마실 때보다 느리지만 깊은 호흡이 가능합니다. 들이마신 호흡은 어디로 갈까요? 배로? 아닙니다. 배로 호흡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됩니다. 느낌이 그럴 뿐이지요. 팽창된 횡경막으로 인해 장기가 바깥으로 밀려나 복부가 팽창하는 것 뿐입니다. 횡경막을 잡아주면서 호흡을 내뱉습니. 그러면 복부는 단단함을 유지합니다. 내뱉자마자 복부가 흐느적 거리며 풀리는 것은 잘 못하고 있는 겁니다. 잡아주면서 길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내뱉아보세요.


누워서 호흡하거나 선채로 상체를 구부려 숨을 쉬어보면 느낌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늑골과 등, 배의 옆과 뒤쪽이 팽창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앞배가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자꾸 자기가 힘을 주어 배를 부풀렸다 오무렸다 하게 되거든요. 선채로도, 움직이면서도 해보세요. 이것은 습관이 되어야 하고 버릇이 되어야 합니다. 습관을 붙이기 위해 평소에 생각날 때마다 의식적으로 복식호흡을 연습해야 합니다. 실제로 연기할 때는 의식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젠 누워봅시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숨을 쉬세요. 호흡이 몸에 붙었으면 자기 몸에서 긴장된 부위를 찾아 보세요. 눈을 감고 주의를 집중하면 긴장된 부분이 느껴질 겁니다.  필요하다면 움직여서 풀어버리세요. 어떤 경우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의지만으로 긴장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긴장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풀면 또 이동합니다. 자꾸 이동하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람이 연체동물이 아닌 이상 몸의 모든 긴장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훈련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한 지각입니다. 긴장된 곳을 찾는 것이 첫번째 목표입니다.


여전히 누워있는 상태입니다. 상상하세요. 따뜻한 모래사장. 물이 차츰 차오릅니다. 발끝에서 발목,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배꼽 등등. 물이 차츰차츰 차올라 몸을 서서히 감싸고 있습니다. 느끼세요. 상상하세요. 마음의 눈으로. 마음의 감각으로. 귓볼을, 뺨을. 끝까지 차오릅니다. 계속 누워있는 상태. 제가 상상의 막대기로 여러분의 몸을 찌릅니다. 느껴보세요. 주의를 집중시켜야 합니다. 상상력을 발휘하고 감각을 열어보세요.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감각으로 느껴보세요. 자, 찌릅니다. 엄지 발가락을 톡톡톡. 무릎을 톡톡톡. 지긋이 누릅니다. 이번엔 단전을 누릅니다. 톡톡톡. 지긋이 누릅니다. 마지막으로 정수리를. 사람마다 다르지만, 아마도 대다수는 정수리에서 느낌이 제일 강하게 올 겁니다.


이젠 앉아서 가부좌, 혹은 반가부좌를 하세요.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면 허리가 곧게 섭니다. 척추가 제자리를 잡고 몸의 장기가 펴집니다. 깊은 호흡을 하기 좋은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에서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합니다. 하나 둘 셋 코로 들이 마시고 하나 둘 잠깐 참았다가 하나둘셋넷다섯 길게 내뱉습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모든 주의를 호흡에만 집중하세요. 그런데 아무런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두뇌는 계속 생각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생각이 들어오면 붙잡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면 됩니다. 대신 호흡에만 집중하세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어느 순간이 되면 호흡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동안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대로 호흡을 유지한 채, 아- 하는 소리를 발사하세요. 가슴공명을 느끼면서 발사해 보세요. 하나 둘 셋. 발사. 한 번 더. 이번에는 좀 더 크게. 발사. 힘없는 소리가 나지요. 이완이 된 상태에서 나오는 소리니까 당연히 힘이 빠진 소리가 나오는 것이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방금 해 본 훈련은 명상과도 비슷한데, 이러한 훈련을 하는  이유는 이완을 유도하는데 있습니다. 이완은 스트레칭과는 다릅니다. 이완은 릴랙스입니다. 무대에 서는 배우는 긴장하게 마련이고 이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호흡이 깊고 안정적이 되면, 정서가 편안해집니다. 편안해진 정서는 몸의 긴장을 제거하고  이완시키는데 도움을 줍니다. 무술하는 사람들도 심호흡을 하여 호흡을 안정시킨 후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을 시작합니다. 호흡이 정서를 안정시키고 나면, 몸은 두뇌가 시키는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일 준비를 갖추는 겁니다..



3. 말이 안 들리는 이유


배우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말입니다. 몸연극, 비언어극 등이 있지만 실험적인 것일뿐, 그래도 연극에서 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말은 전달하기 위해 합니다. 말은 두 가지를 종합적으로 전달하는데 그 중 하나가 표면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가 내면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가령, 그 애 참 이쁘더라라는 말이 있다면,. 표면적인 내용은 글자 그대로 그 애 참 이쁘더라지만, 화자의 상태, 주어진 상황 등에 따라 내면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쁘긴 뭐가 예뻐. 역시 니 수준이 그렇지 뭐. 라는 식이지요.


전자를 텍스트, 후자를 서브텍스트라고 합니다. 배우는 이 두 가지를 다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단 한동안은 텍스트의 전달만을 다뤄볼 겁니다. 서브텍스트는 둘째치고라도 말 자체가 일단 관객들에게 들려야 하니까요. 그런데 종종 말이 안 들리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말이 안 들리는 이유를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소리 크기가 약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의 공연이 소극장에서 이루어지거나, 중극장 규모만 되어도 와이어리스를 착용하지요. 때문에 소리크기가 문제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단, 발성이 좋으면 표현력이 풍부해지고, 음향기기를 사용하더라도 덜 왜곡된 소리를 만들기 좋은 것은 사실이므로 배우들은 발성 훈련을 잘 해두면 좋겠지요. 차차 설명하겠지만 소리 크기 자체를 키우려는 노력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무리하게 피치만 올리려고 하면 긴장을 일으켜 오히려 소리가 작아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다. 듣기도 싫습니다. 차라리 에너지가 넘치는 소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는게 좋습니다. 


둘째, 발음이 안 좋은 것입니다. 실제로 혀가 짧다든지, 치아상태 등 구강구조의 문제로 발음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드물고 오히려 평소습관에 따른 영향이 많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일부러 발음을 똑똑히 하지 않아도 대개 무리없이 의사전달이 됩니다. 그래서 잘못된 발음이 습관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잘못된 발음은 말을 할 때 신경을 쓰면 고칠 수 있습니다. 말을 할 때 그냥 내뱉는 것이 아니라 자기 귀로 들으면서 내뱉는 습관만 들여만 해도 많이 고쳐집니다.  


셋째, 공명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같은 음량이라도 공명이 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귀에 잘 들어옵니다. 음향기계를 통해 소리를 실험해보세요. 리버브를 넣을 때와 넣지 않을 때 음량 차이가 더 크게 나는 듯 들립니다. 목욕탕에서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노래를 불러도 더 잘 부르는 것처럼 느껴지고 소리가 더 크고 귀에 잘 들어옵니다. 공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건조하게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 공명을 이용한 소리를 내야 합니다. 특히 가슴공명을 잘 쓰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공명이 되지 않고 나오는 건조한 소리는 아무리 크고 또렷하더라도 관객의 정서에 침투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넷째, 호흡이 짧거나 불안정한 것입니다. 대사는 실생활에서 쓰는 말과는 다릅니다. 대사는 인물과 상황에 대한 정보도 주어야 하고, 인물의 성격도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수식어가 많고 문장 길이 자체가 깁니다. 호흡이 짧거나 안정되지 못하면 대사를 치기가 힘들고, 배우는 애를 쓰며 쥐어짜게 된다. 관객들에게는 대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쥐어짜고 있는 배우의 상태가 먼저 들어오고 결국 그것이 내용전달을 방해한다. 그게 아니면 자꾸 엉뚱한 데서 끊어 읽습니다. 호흡이 짧으면 자연히 긴장하게 마련이고, 그러니 엉뚱한 곳에서 숨을 쉬게 되는 거지요. 역시 관객은 무슨 말이니 못 알아듣습니다.


다섯째, 이게 제일 중요한데, 대사가 배우 자신의 것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말이 아닌 남의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배우이며, 그래서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대사를 외우고 유창하게 말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말을 자신의 말이 되도록, 즉, 대사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 입니다. 배우는 인물의 대사에서 텍스트 자체의 의미 뿐만 아니라 서브텍스트의 의미까지 알아야 하니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부족하여 연습은 기계적이 되기 일쑤입니다. 대사를 외우기 바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내뱉습니다. 결국 말의 뉘앙스도, 강조점도 살리기 어렵습니다. 남의 사고로 이루어진 남의 말을, 더구나 남들 앞에서 보여줘야 하므로 긴장이 발생하여 발성, 발음, 호흡 등의 문제가 생깁니다. 앞서 지적한 여러가지 문제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직 자기 말이 되지 못해서 생깁니다. 자신의 것으로 소화된 후 뱉어내는 말은 자연스럽고, 알아듣기 쉽고, 유창하며, 힘이 있습니다.



4. 읽기훈련


먼저 책을 한권씩 가져와 한 문단 혹은 3-5개의 문장을 골라보세요. 단, 감정을 배제하고 읽을 수 있는 문장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신문기사 혹은 사회과학서적 등이 좋습니다. 지금 목적은 텍스트의 전달에 관한 연습입니다. 소설, 시, 수필 등 문학작품들은 읽는 중에 내면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감정표현을 유도하므로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5-10분의 시간을 드릴테니 각자 읽어보면서 내용파악을 해보세요. 소리내어 읽어도 보세요. 그러나 끊어읽기, 찍어읽기, 올림과 내림 등의 표시는 하지 마세요. 표시에 얽매여 내용파악에 대한 주의가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읽게 됩니다. 그런 것들은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말을 하면, 대개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려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용을 이해했으면, 이제 소리내어 읽어보세요.


일단 목소리가 왜곡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입장 자체가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이 긴장으로 인해 왜곡된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긴장을 제거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야 합니다. 또 다른 경우는, 소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입니다. 멋있고 매력있는 목소리를 만들려고 꾸미는 것입니다. 강한 꾸밈이 필요한 시절이 있었고, 그 때는  어떤 특정한 음색을 선호 또는 강요하거나, 대사를 치는 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습니다. 요즘 선호하는 목소리는 자연스러운 소리입니다. 자연스러운 소리는 각자의 개성이 충분히 담겨 있고 듣기에 편안합니다. 맞는 목소리와 틀린 목소리는 없습니다. 그저 각자의 소리가 있을 뿐입니다. 편안하게 소리를 내보세요. 게다가 지금은 노인, 아이, 수다쟁이 등 특정한 배역의 소리를 내야 하는 텍스트가 아닙니다. 지금 사회과학 서적이나 신문기사를 이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 목소리를 왜곡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 입니다.


발음이 꼬이거나 버벅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에게 원인을 물어보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어지는 단어가 내가 머리속으로 떠올렸던 단어가 아니었고, 이를 인식한 순간 발음이 꼬여 버벅댔다." 주어진 단어가 자신이 떠올린 단어와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아직 자기 것이 되지 못한 말을 하게 되었을 때, 발음이 꼬이거나 버벅대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발음을 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중간중간에 기침을 계속하는데 정말 가래가 끓어서 그런 것인가요? 제가 보기엔 긴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실수하는 부분과 기침하는 부분이 일치하거나 연속적으로 벌어지는데,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다시 읽어보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을 파악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것입니다. 충분하지 못하면 불안해지고, 긴장이 일어납니다.  


또 몇몇은 너무 빨라서 알아듣기 힘듭니다.  빠르고 유창하게 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관객이 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빠르고 유창하고 실수없이 말을 한다? 이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말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입니다. 내용이 전달이 잘 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몇몇은 호흡이 불안정합니다. 어떤 부분은 잘 알아듣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호흡이 불안정해져서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는군요. 특히 긴 문장을 읽던 중에 이상한 곳에서 호흡을 사용합니다. 발음이 뭉개지지는 않았지만 내용이 얼른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용이 아직 충분히 파악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내용파악이 덜 되었기 때문에 호흡이 정확하게 수행되지 않는 것입니다. 띄어읽기, 끊어읽기, 찍어읽기 등도 내용파악이 충분히 되었다면 대개는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 자신이 알고 하는 말과 모르고 남대신 하는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남의 말을 대신 하면, 강조점이 없어지거나 부정확해지고, 말의 선율, 리듬과 템포 등이 사라집니다. 듣는 재미도 없고, 내용도 전달되지 않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수없이 반복연습하여 기계적으로 맞출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뉘앙스의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을 겁니다.


다음시간에도 오늘 읽었던 문장들을 읽어볼 겁니다. 중요한 점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기 목소리를 왜곡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세요. 자신이 편하게 소리낼 수 있는 음역대를 찾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음역대를 벗어나면 긴장이 발생하고 왜곡이 일어나기 쉬우니까요. 둘째, 내용파악을 충분히 하세요. 무엇을 전달할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끊어읽기, 찍어읽기 등이 자연스럽게 살아납니다. 이것만 되어도 화술의 반 이상은 된 겁니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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