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연기 10 연극적 행동
-류 성-
연기란 역할의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는 단순하지만 명료하고, 무엇보다 유익하다. 연기에 대해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역할은 주어진 상황속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인다. 즉 행동한다. 연기란 역할의 행동을 정리하고, 이를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해 무대위에 구현하는 것이다.
연극적 행동은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행동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목적이 있는 행위만을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물을 마시거나 벽에 못을 박는 간단한 움직임조차 반드시 어떤 목적이 전제되어 있기 마련이다.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행동은 달라진다. 벽에 못을 박는다고 하자. 못을 튼튼히 박는 것이 목적인 경우, 빨리 작업을 끝내려는 것이 목적인 경우, 상대를 위협하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있다. 세 경우 모두 벽에 못을 박는 행위지만, 각각의 목적에 따라 완전히 다른 행동이 된다. 목적을 간파해야 배우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연극은 목적이 없는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연극의 의미는 갈등을 통해 드러나고, 갈등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행동에 의해 발생한다. 만약 배우가 행동의 목적을 간파하지 못했을 때, 배우의 연기는 내적인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고 겉만 흉내내는데 머물게 된다.
행동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목적이 있는 행동이라고 곧 연극적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목적이란 이루어지면 좋고 안 이루어져도 그만인 소망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무엇이다. 그래서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동에는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뒷받침된다.
의지는 강력해야 한다. 의지가 약한 행동은 연극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연기의 에너지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목표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강력할 수록 배우는 에너지 넘치는 연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의지가 약하면 극적 갈등은 무뎌진다. 갈드은 대립하는 힘의 크기가 대등할때 비로소 발생한다. 어느 한쪽이 약하면 갈등은 아예 성립되지 않거나 금방 맥이 풀려 버린다. 강한 의지를 가진 행동이라야 극적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낼 수 있다.
행동은 충동을 필요로 한다. 충동은 진실한 연기를 창조하는데 관건적인 요소다. 순서에 따라 내뱉는 말과 움직임은 기계적이고 뻔하지만, 내적 충동에 의해 내뱉는 말과 움직임은 생동하다.
사람은 목적없이 행동하지도 않지만, 목적이 있다고 아무때나 행동하지 않는 법이다. 일정한 계기와 조건에 의해서 내적인 충동이 발생해야 비로소 행동한다. 연기도 이와 같은 매커니즘을 반영해야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충동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연극에서는 조금 복잡한 과정을 거져야 한다. 텍스트의 분석을 통해 행동을 정리해야 하고, 다음으로 그 행동이 나올만한 충동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연기를 하다보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충동이 자연스럽게 생성될 때가 있다. 불행하게도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배우는 충동을 생산할 줄 알아야 한다.
행동은 논리적인 것이어야 한다. 연극적 행동은 극적 상황, 역할의 성격 등에 비추어 타당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논리적이지 않은 행동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고, 무대를 믿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논리적 행동은 배우로 하여금 내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집중을 용이하게 하고, 자기 연기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여 설득력 있는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그러나 논리적이지 않은 행동은 배우의 내적 정당성을 해침으로써 결국에는 연기를 위축시킨다.
즉흥작업은 살아있는 행동을 발견하는데 유용한 방법이지만, 여기에서 발견한 모든 행동이 정당한 것은 아니며, 논리에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논리적이지 못하다면, 아무리 인상깊고 특별하다 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다.
행동은 인상깊은 것이어야 한다. 앞서 말한 모든 요소들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연극적 행동이라 부를 수 없다. 연극이 삶에 기초하지만 삶 그 자체는 아니듯, 연극적 행동 또한 일상의 그것이 아니다. 비범하고, 특별하며, 인상깊은 행동이 연극이 요구하는 행동이다. 연극은 예술이기 때문이다.
진부하고 평범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극을 지루하게 만들 뿐이지만, 인상깊은 행동은 관객을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배우의 사고와 정서를 자극하고 고양시켜준다. 그때 비로소 연기는 예술이 되고, 무대는 활기에 넘친다.
일견 논리적인 것과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실제로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논리를 부여하려는 노력은 종종 진부하고 평범한 행동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이는 배우의 실력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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