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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리어왕 읽기 5> 에드먼드와 홍길동


<리어왕 읽기 5> 에드먼드와 홍길동

-류 성-


서양의 세익스피어는 1564년에 태어나 1616년에 죽었다. 동양의 허균은 1569년에 태어나 1618년에 죽었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각각 에드먼드와 홍길동이라는 “서자”라는 형상을 내세워 적서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서양과 동양이라는 거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리어왕>과 <홍길동전>에 적서차별의 문제가 다루어졌다는 것은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신분제도가 흔들리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신분제도의 모순이 격화되고 있었으며, 이것이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기에 들어서는 하나의 징표임을 말해준다.

에드먼드는 “그런데 왜 나는 왜 관습의 병폐 안에서 내 것을 강탈하는 까다로운 국법을 참아야 한단 말인가? 그저 형보다 열두달이나 열네달 늦게 났다는 이유만으로? 왜, 서자라서? 그래서 비천해서? 신체는 탄탄하고 정신은 신사처럼 관대한 내 모습은 정실 자식에 견줄만큼 참되지 않던가? 그런데 왜 우리를 천하다고 낙인찍는가? 서출이라고? 천하고 천하다?”라고 한탄한다. 홍길동 또한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공자와 맹자를 본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병법이라도 익혀 대장인을 허리춤에 비스듬히 차고 동서로 정벌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에 빛내는 것이 장부의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나는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외롭고, 아버지와 형이 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니 심장이 터질 지경이라,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한탄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탄하고 있으나 한탄에 그치지 않는다.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신분제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자연이여, 그대는 나의 여신. 나는 그대의 법칙만을 따르겠다.”는 에드먼드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차별을 두는 신분제도가 자연적 근거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인위적인 제도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물이 생겨날 때부터 오직 사람이 귀하게 태어났으나 소인에게는 이런 귀함이 없사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지요?”라는 길동의 말 또한 같은 의미로써 이들은 자신을 옭아맨 관습과 제도를 부정한다. 신분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중세적 사고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다. 에드먼드는 형을 모함하여 쫓겨나도록 만들어 적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어 아버지 글로스터를 몰락시켜 그의 재산과 권력을 차지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거너릴과 리건과 정을 통함으로써 이후에는 왕의 자리까지 오르려고 한다. 그러나 홍길동은 의적이 되어 조정에 맞서는 투쟁을 벌이고, 훗날에는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이상국가를 세운다. 차별받던 에드먼드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싸우다가 결국 죽게 되지만, 홍길동은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렇듯 세익스피어와 허균은 공통적으로 서자라는 형상을 통해 신분제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해결방식은 전혀 달랐다.

이러한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인물형상을 비교해 보면 세익스피어의 에드먼드에 비해 허균의 홍길동이 훨씬 혁명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그래서일까, <리어왕>은 한 때 개작을 당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홍길동전>은 아예 금서가 되어 300년간 출간되지 못했다. 두 작가의 인생행로도 비교해 볼 만한데, 세익스피어는 왕실극단의 작가로 평생을 살았지만, 허균은 역적이 되어 처형되고 만다. 두 사람은 정치적 성향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에드먼드와 홍길동 형상의 차이를 단지 작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만 본다면 더 깊은 함의를 추적해 볼 수 없게 된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설은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의 차이다. 서양이 개인주의를 기본 가치관으로 삼고 발전시켜 온데 반해, 동양은 집단주의를 기본적 가치관으로 삼고 발전시켜 왔다. 서양의 서사가 적대적 갈등이 첨예한 조성과 어느 한쪽이 파멸함으로써 산출하는 카타르시스를 목적으로 한 것은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반면에, 동양의 서사가 비적대적 갈등이 주를 이루고 결말에서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은 집단주의적 가치관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이 에드먼드와 홍길동 두 인물형상의 차이에는 서양과 동양의 가치관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에드먼드의 형상과 관련한 또 하나의 추론도 가능하다. “목적에만 부합한다면 무엇이든 정당화 될 수 있어.”라는 에드먼드의 대사는 당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마키아벨리즘을 연상시킨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인 <군주론>에서 무자비할 정도로 현실적인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당대의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다. 마키아벨리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충성, 진실, 애정 같은 관계에 기초한 사회질서와 체계를 부정했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견해를 사악하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오셀로>에 등장하는 악인 이아고의 성격 또한 에드먼드와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세익스피어는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