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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리어왕 읽기> 4 갈등의 해석


<리어왕 읽기> 4  갈등의 해석

-류 성-


리건, 거너릴, 에드먼드는 리어, 글로스터가 늙고 노쇠하며, 어리석고, 고집스러우며,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재산과 권력을 자신들에게 이양해야 한다. “자식이 충분히 성숙하고 아버지가 노쇠하였을 때, 아버지는 아들의 보호를 받고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거너릴과 리건은 “권력을 여전히 휘두르려” 하기 때문에 리어를 견제한다.

반대로, 리어와 글로스터의 입장에서 젊은이들이란 경솔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하다. 그러므로 젊은이들 중 늙은 자신을 보호해주고 부양할 자, 즉 “인간 본연의 의무에 대해, 부모 자식의 인연에 대해, 예의범절의 중요성과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 잘 따르는 자를 골라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리어와 글로스터는 현명하지 못하여 실패한다. 그 댓가로 “새끼를 키웠더니 새끼에게 자기 머리통을 뜯겨 먹히는” 신세로 전락한다.

문학예술작품이 인간과 삶의 반영이듯, 작품 속의 갈등을 현실세계의 갈등에 비추어 해석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가정적 차원이다. 독선과 아집, 호령을 일삼는 리어의 모습은 가부장제하의 어느 가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자식에게 버림받고 광야를 헤메는 리어와 글로스터의 모습은 골방에서 죽어가는 독거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가정적 차원을 넘어 좀 더 확장시키면 세대 간의 문제, 즉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의 갈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젊은이들과 늙은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대개의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을 고리타분하고 답답하다고 여기고, 대개의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이 경솔하고 예의를 모른다고 여긴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확장시킬 수 있다. 편의상 구세력과 신세력간의 갈등이라고 부르자. 이 때, 갈등의 대상인 재산과 권력은 체제질서로 치환할 수 있다. 구세력은 기존의 체제질서와 가치를 고수하려 한다. 기존 체제의 지배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세력은 기존의 체제질서와 가치를 개혁하거나 아예 전복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 한다. 기존체제의 지배권에서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익스피어 당시 영국은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왕정체제였다. 그러나 얼마 후 왕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의회가 지배하는 공화국 체제로 바뀌게 된다. 추론하자면, 세익스피어는 왕정을 지키려는 세력과 왕정에 불만을 느끼고 전복하려는 세력 간의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는 시기에 살고 있었으며 당대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 리어왕에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시 세익스피어의 세계관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보수적 가치관을 지녔을 것이다. 충과 효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인물들이 선한 인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충과 효가 그 자체로 보수적 가치인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인물들이 절대군주 리어의 왕권회복을 위해 투쟁한다는 점이다. 둘째, 보수적이지만 기존 체제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리어와 글로스터가 황야에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셋째로, 기존체제의 몰락을 막을 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리어의 왕권을 회복하는 일이 실패하는 것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넷째, 다음에 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왕국의 결말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론일 뿐이다. 작품세계의 갈등이 현실세계의 갈등의 반영이라면, 갈등의 조성과 해결방식에 작가의 세계관이 어떤 식으로든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