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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리어왕 읽기-2 비극의 원인


리어왕 읽기-2   

비극의 원인

- 류 성 -

세익스피어는 원래 해피엔딩이었던 리어왕 이야기를 완전한 비극으로 뒤집어 놓는다. 절대군주였던 리어는 순식간에 헐벗고 굶주린 채로 황야에 버려진다. 그는 주검이 된 코딜리어를 안고 울부짖다가 결국 죽는다. 리어뿐만은 아니다. 극중 주요등장인물 중 누구도 행복해지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파멸하여 죽음에 이른다. 살아남은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조차 행복하지 않다. 올버니는 “이 피투성이의 나라를 함께 지켜주시오”라고 부탁하지만, 에드거는 답을 못하고, 켄트는 “내 주인이 부르십니다.”며 자살에 대한 암시를 한다. 살아남은 그들의 운명은 암울하다. 사악한 자들은 모두 죽었고, 전쟁에서도 승리했지만 왕국의 앞날은 예측불가능하다. 이런 비극은 왜 일어났을까? 그 함의는 무엇인가?

리어는 자신에 대한 딸의 사랑을 시험하려든다. 자식들의 사랑을 시험할 만큼 리어는 오만한 인물이다. 거너릴과 리건은 갖은 수사를 동원하여 아첨하지만, 코딜리어는 “자식의 도리에 따른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한다. 리어는 어리석게도 아첨에 속고 진실은 알아보지 못한다. 게다가 조폭하고 경솔하다. 분노한 리어는 막내딸에게 저주를 퍼붓고 홧김에 모든 재산과 모든 권력을 거너릴과 리건에게 줘버린다. 비극적 사건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오만함, 조폭함, 경솔함 등 리어의 성격, 혹은 성격적 결함은 이 비극의 출발점이다. 사실 거너릴과 리건이 자신의 아버지를 황야로 내몰았던 것은 그들의 악한 성격 탓도 있지만, 리어의 조폭함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리건은 “켄트가 쫓겨 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걱정하고, 거너릴은 “당할까봐 내내 걱정하기보다 걱정스러운 해악을 제거”하려고 든다.

글로스터 일가의 비극도 성격에서 비롯된다. 글로스터가 쾌락을 탐했던 것은 비극의 근원을 제공한다. 글로스터는 켄트에게 에드먼드롤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녀석의 어미는 예뻤지요. 만드는 동안 즐거웠으니....” 에드거의 대사도 의미심장하다. “신들은 공정하다. 우리가 탐닉하는 악덕을 이용하여 우리를 병들게 한다. 너를 잉태한 그 어둡고 사악한 장소가 아버지의 눈을 빼앗아 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리어처럼 경솔하고 어리석다. 에드먼드의 계략에 빠진 글로스터는 그는 진위를 확인하기도 전에 에드거를 악당이라고 부르며 저주를 퍼붓는다. 에드거도 에드먼드의 농간에 순진하게 넘어간다. “잘 속는 아버지에 고결한 형님, 남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성격, 아무 의심이 없구나. 그들의 어리석은 정직함을 내 계략으로 편안하게 올라타는 거야.”라는 에드먼드의 대사는 그들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거너릴과 리건, 에드먼드, 콘월 등 악(惡)을 상징하는 인물들은 사악하고 탐욕스럽다. 선(善)하다고 믿어지는 인물들도 이 비극적 사건에 책임이 있다. 코딜리어는 왕궁의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인 왕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충신의 상징인 켄트도 과격하고 직설적이다. 켄트는 리어에게 “내가 무례한 것은 리어가 미쳤기 때문입니다! 무슨 짓을 하십니까, 다 늙어서!...이 가증스러운 경솔함을 멈추”라고 소리친다. 그의 과격한 직언은 분노한 리어를 더 분노하게 만든다. 올버니는 신중해보이지만 우유부단하다. 그는 거너릴의 행동에 문제의식을 가지지만 “상황을 지켜보자”며 미룬다. 거너릴의 말을 빌자면 올버니는 “당신은 위험천만한 온화함으로 분별력이 모자란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서로 치차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비극적 결말을 향해 굴러간다. 비극의 원인은 그들의 성격에 있다. 세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도 유사하게 해석할 수 있다. <맥베쓰>의 경우, 맥베쓰와 그의 부인이 가진 야심을 비극의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오셀로>의 경우, 이아고의 악마적 성격과 오셀로의 질투심이 비극의 원인으로 된다. 성격, 혹은 성격적 결함이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연극이 현실세계의 거울이라고 할 때, 비극은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비극적 사건들에 대한 탐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극에는 ‘인간은 왜 고통을 겪어야 하며, 참혹하고 비참한 사건들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사고가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다. 세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인간의 성격’이 원인라고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당대사회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함의를 좀 더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다른 시대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고대사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오이디푸스왕>은 비극의 원인을 “신이 내린 운명”에서 찾고 있다. 신은 그에게 저주스러운 운명을 던져 주었고, 오이디푸스는 그 운명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신은 인간에게 참혹하고 비참한 운명을 지워주었고, 그것이 결국 비극적 사건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고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자신들의 운명이 그렇고, 팔자가 그렇고,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대사회가 생각했던 신은 인간과 비슷했다. 신들은 변덕스럽고, 실수도 하고, 나쁜 짓도 일삼는다. 하지만 중세를 거치며 신은 유일하고 완전해진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은 원죄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현실의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고대와는 달리 고통스러운 삶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생겼다. 유일신을 믿고 회개하여 천국을 가는 것이다. 죽어서야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된 근대사회의 세계관은 이전 시대와 현격한 차이를 가지게 된다. 신을 부정하지 않지만, 인간중심의 관점과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인간사회의 고통과 비극적 사건은 피할 수 없는 운명, 혹은 원죄 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리어왕>에 나오는 에드먼드의 대사는 당대의 사고를 반영해 준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나쁜 운명에 처할 때, 그것이 대개는 우리 자신의 탓이건만, 해나 달, 별의 탓으로 돌리다니....신의 강요에 의해 사악해지기라도 한다는 듯 말이야.” 이전 사회에 비해 대단히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비극의 근원은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 시대적 한계 때문이다. 비극의 근원을 사회적 차원에서 찾고, 그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는 관점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가능해진다. 역사는 그렇게 진보를 향해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