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 읽기1 - 명작탄생의 비밀
-류 성-
18세기 낭만주의자들은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컬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극예술”이라고 칭송했다. 굳이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리어왕>이 세계명작의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세익스피어는 어떻게 이런 명작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세익스피어의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리어왕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전해 내려왔던 전설이며, 이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출간되기도 했다. 세익스피어는 <브리튼 왕 열전>, <연대기>, <리어왕과 그의 세 딸에 대한 진정한 연대기 사극>, <요정여왕> 등에서 이야기의 줄거리와 소재, 인물 등 거의 대부분을 빌려왔다. 리어왕의 두 번째 플롯인 글로스터와 그의 두 아들 이야기도 <아카디아>라는 산문집에 실려있는 이야기를 빌려와 변형시킨 것이다.
학자들은 세익스피어가 새뮤얼 하스넷의 <지독한 가톨릭교 사기선언>, 미셀 드 몽테뉴의 <수상록> 등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여기에 나오는 표현들을 다수 이용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탁월한 문체, 괴기하고 새로운 표현, 이로써 만들어내는 독특한 스타일 등도 어느 정도는 빌려온 것들이다.
사실, 리어왕 뿐만이 아니라 <맥베쓰>, <햄릿>, <오셀로> 등 세익스피어가 창작한 명작들은 모두 빌려온 이야기다. 맥베쓰는 11세기 스코틀랜드에 실재했던 인물로 앞서 언급한 <연대기>에 실려있는 이야기며, 덴마크 왕자 햄릿의 이야기도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12세기 즈음에 활자화되어 출간되었다. 오셀로는 <헤카토미시>라는 이야기 모음집에 있는 이야기를 빌려온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이렇게 빌려온 이야기들에 변형을 가했을 뿐, 실제로 이야기 자체를 지어낸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변형을 가했다는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이미 존재하던 리어왕 이야기에 보다 심각한 문제들, 즉, 사회구조와 지배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정의와 평등의 호소, 新-舊의 갈등과 같은 문제들을 심어놓는다. 이 문제들은 근대사회가 안고 있는 절실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들이다. 그래서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명작의 반열에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하는데, 어떤 문제를 심어놓았는가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규정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작가의 철학과 관련된다. 물론 세익스피어는 극작술도 훌륭했다. 그러나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에게는 사회와 인간에 대해 보다 깊은 차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세익스피어가 절실하고 의의있는 문제들이 아니라 사사로운 문제들을 심어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리어왕 이야기를 단순히 극작술적인 차원에서나 이야기를 변형하고 재구성했다면? 세익스피어는 당대에 재주있는 작가 중 한 사람에 그쳤을 것이며,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그렇고 그런 가정멜로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의 재능이란 기술과 철학을 동시에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명작이란 개인의 창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세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쓸 때, 줄거리, 주요등장인물, 표현 등을 빌려왔다는 사실은, <리어왕>이란 명작이 오로지 세익스피어의 위대한 재능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축적이 토대가 되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누구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또한, 만약 그의 시대에 중세의 몰락과 르네상스의 도래라는 일련의 사회적 조건들이 형성되지 못했다면 그가 리어왕 전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었을까? 세익스피어가 근원적 문제들을 심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철학과 관점이기도 하겠지만, 근대의 사상적 조류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품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에 대해 좀 더 부언하자. 원래 리어왕은 해피엔딩이었다. 결말에서 리어는 다시 왕위를 되찾고, 왕국의 질서는 회복된다. 그런데 세익스피어는 이를 뒤집어 놓는다. 왕위에서 쫒겨난 리어는 미치고 나서야 자기 왕국의 억압과 모순을 깨닫는다. 그리고 왕과 딸들, 왕의 충신들이 모두 죽는다. 왕의 권위는 파탄나고, 왕국의 질서는 해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40년 후, 찰스1세가 의회에 의해 처형당하고, 왕국은 공화국으로 바뀐다. 이 사실은 <리어왕>에 내포된 사상과 당대 사회의 사상적 조류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다시 왕정복고 시대가 되자,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개작을 당한다. 각종 풍자들은 삭제되고, 리어는 다시 왕국을 되찾고, 충신들은 모두 살아남아 해피엔딩을 맞는다. 개작자인 테이트는 ‘이야기에 부족한 개연성과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왕정’이 ‘복고’되었기 때문이 틀림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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