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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배우와 연기-1 배우의 자주성과 창조성

 

배우와 연기-1


배우의 자주성과 창조성


-류 성-
 

 예술은 분명히 기술이란 영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하나같이 엄격한 기술을 전제로 한다. 기술이 모자란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듣기 싫은 소음일 뿐이다.


 그렇다고 예술을 기술과 등치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진짜와 똑같은 모조품을 만드는 화가, 기가 막히게 모창을 잘 하는 가수를 진정한 예술가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술이 기술을 포함하지만 기술 그 자체는 아님을 말해준다. 예술가는 반드시 훌륭한 기술을 가져야 하지만, 훌륭한 기술이 있다고 그가 예술가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가를 규정하는 보다 본질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창조성과 자주성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를 기술자로부터 구별해내는 징표다.


 배우는 창조적이어야 한다. 연기는 창조적일 때 가치가 있다. 


 배우가 연기의 기술을 세련하고 발휘하는 것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연기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 이미 창조해낸 연기를 답습하거나, 낡고 진부한 연기를 몇번이고 반복한다면 그는 더 이상 예술가란 의미에서의 배우로 불리울 수는 없다.


 나는 과거에 A라는 배우의 연기에 감동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A는 언제부턴가 이미 보유한 몇가지 패턴 중 적당한 것을 골라 역할에 적용시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매번 새로운 역할을 맡았지만 그의 연기는 전혀 새롭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예술가라고 부르기는 곤란하다는 것을 느꼈다.


 반면, 나는 어느 배우 때문에 아주 피곤했던 적이 있다. 그는 매번 연습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들고와 보여주었고, 한 밤중에라도 전화를 걸어 자신이 발견해낸 것에 대해 상의했다. 초보 배우였던 그가 보여준 것은 늘 퇴짜를 맞기 일쑤였고, 당시에는 귀찮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예술가다운 태도는 높이 평가해야 했다.


 또한 배우는 자주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연기에 대해 주인다운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며,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이다. 꼭두각시처럼 그저 연출가의 장단에 놀아나는 배우를 예술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주적 입장을 갖는 것은 연기의 성과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가의 창조성이란 것도 자주성에 기반하여 발휘되는 것이며, 그 수준과 깊이에 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배우로부터 다음과 같은 제기를 받은 적이 있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네요. 직접 시범을 좀 보여주세요.' 그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아주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시범을 보여주었고, 그는 내가 보여준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창조적 연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무대에서 실수 하지 않기만을 바랬다.


 관객의 반응에 끌려다니는 배우도 자주적이지 못하다. 앞서 이야기한 배우 A의 경우, 관객의 반응이 좋았던 것들만 골라썼고, 그때부터 그의 연기는 패턴이 박혀버렸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관객을 존중한다는 것과 관객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예술가다운 배우보다 좋은 신체와 깊이있는 목소리, 남다른 끼와 재주를 갖춘 배우를 더 환영할 때가 많다. 예술가다운 철학과 자존심, 열정으로 무장한 배우를 오히려 기피하기도 한다. 사실 자주성과 창조성이 결여되었더라도 배우는 연기생활을 지속 할 수 있으며, 설령 그것이 없더라도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진정한 예술가로 살고 싶은 배우라면,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오히려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그는 기술적 의미에서 좋은 연기를 펼칠 뿐, 예술적 의미에서 좋은 연기를 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기 자체는 기술이지 예술은 아니다. 그러나 배우는 자주성과 창조성을 발휘하여 연기를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 때 비로소 배우는 예술가가 된다.



2009년 6월 2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