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후기-메이드 인 개성
공연 개요
작품명 : 뮤지컬 메이드 인 개성
공연일시 및 장소 : 8월 14일 자정 시청광장 자주통일문화제
러닝타임 : 20분
출연 : 전희련, 차준호, 정수석, 박종욱, 전세훈, 김규남, 손기주, 이준규, 김형익, 이정아, 정윤희, 오혜진, 김지영, 유정숙, 오현경, 문의영, 박수진, 615합창단
개작 및 연출 : 류 성
작곡 및 편곡 : 박기태
가창 음악감독 : 이정아
안무 및 움직임 : 이은하
조연출 : 홍서정
원작 : 박은정, 임은정, 류 성
원작 연출 : 김진휘
원작 음악 작편곡 : 최경숙
1. 촛불의 힘
8월 6일, 그러니까 공연을 올리기까지 딱 일주일 남은 날. “경험과 상상파티”에 글을 올렸다. 8월 14일 자정에 열릴 자주통일문화제에서 공연할 작품의 배우와 스태프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글은 올렸지만 솔직히 10명이나 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애초에 의심스러웠던 이유는 기간의 촉박함만은 아니다. 톡 깨놓고 말하자. 첫째, 815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 8월 일정을 비워놓고 대기하는 예술단체, 예술인들은 몇 되지 않는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815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 자부심 넘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둘째, 연합공연에 대한 불신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활발했던 대규모 연합공연은 많은 성과도 남겼지만 그보다 더 많은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 어려워진 경제적 여건까지 겹치면서, 대규모 연합공연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한 현상들이 왜 생기게 된 건지, 뭐가 문제인 건지 기타 등등 그런 건 따로 얘기하자. 어쨌든 그렇게 되었고,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의심의 벽은 무너졌다. 우리는 무너진 벽을 넘어 더 멀리 나아갔다. 아마 공연에 참가한 우리들 중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서울, 인천, 성남, 안산을 비롯, 멀리는 횡성과 여주에서까지 달려올 줄은. 배우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615합창단까지 결합해서 결국엔 50명의 인원이 함께 공연을 만들게 될 줄은.
이건 또 어째서일까. 각개전투에 매진하던 우리 예술가들을 한데 끌어당긴 가장 근원적인 힘, 그것은 촛불의 힘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성공단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촛불의 힘”이라고 말하듯, 우리를 결집시킨 힘도 이것이다. 좀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시대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2013년, 예년과는 다른 새로운 기운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느낀다. 예술운동에도 마찬가지다. 전쟁위기가 고조되자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반전평화예술몸빵> 공연을 열었다. 국정원 게이트가 터지자 음악인들은 한달동안 KGB(국정원 게이트 버스킹) 공연을 지속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버티기’를 했다면 이젠 ‘반격’을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메이드 인 개성 공연의 성사는 바로 이러한 흐름의 연속에 있다.
2. 하나가 되는 연습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연습실. 두툼한 악보가 주어졌다. 통성명만 간단히 나눈 채, 바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7곡의 노래와 대사, 그리고 춤까지. 주어진 시간은 공연일 포함해서 단 사흘. 연습은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다들 노래와 춤을 익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투하듯 보낸 그 사흘간, 우리는 즐거웠고 더없이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흥분을 가져다 주었다. 새로운 후배들이 신선함을 주었고, 오랜 선배들이 든든함이 되어 우리는 서로를 자극하고 또 이끌었다. 50대의 나이 지긋한 형님들과 20대의 젊은 친구들이, 집회무대의 “선수”들과 “초짜”들이 함께 어울렸다.
원작을 썼던 임은정 작가는 아이스크림을 사다 나르며 응원했다. 사정이 있어 함께 하지 못한 극단 꾼 동지들은 연 이틀에 걸쳐 그 많은 인원의 식사를 만들어주었다. 자체 공연중이라 함께하지 못해 내내 아쉬워하던 걸판 동지들은 공연날 우루루 몰려와 응원했다. 그 외에 많은 동료들이 마음으로 함께 했다.
각자 다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우리들 중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고, 어렵고 힘든 사정에 빠진 단체도 있었고, 정치적 혹은 인간적으로 서로 껄끄러운 관계들도 있었다. 우리들은 이 모든 것들을 때로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때로는 자연스럽게 극복하며 이번 공연을 만들었다.
세대의 차이, 경험의 차이, 사소한 앙금들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각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헌신했고, 또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배우면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갔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종종 가장 뜨거웠고 순수했던 시절의 느낌이 떠올랐다. 너무나 그리웠던.
3. 사흘의 기적
우리들의 공연 준비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표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보다 더 많은 걱정과 우려도 들었다. 2-3일 연습해서 과연 좋은 공연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아마도 연출팀과 출연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긴 했지만, 나 또한 커다란 부담감에 시달렸다.
최근 815 전야제 무대에 올라오는 공연은 지역이나 부문에서 준비한 공연과 몇몇 섭외된 개별 예술단체의 공연-노래나 춤-으로 이루어졌다. 매년 추진본부 회의에서 메이드 인 개성과 같은 연합공연에 대한 제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번번히 통과되지 못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그것은 비용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과연 잘 준비할 수 있느냐는 그런 믿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면 섭섭하지만, 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옳은 판단이든 그른 판단이든 어쨌든 대중을 책임지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런 믿음을 주지 못한 우리 예술가들의 몫도 분명히 있는 것이니까. 누구도 의도하지는 않았고, 누구도 나쁜 마음을 갖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황은 가슴 아프다.
그러고 보면 사실 이번 공연은 모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만약 공연이 별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향후 몇 년간 8.15 대회에서 연합공연은 말도 못 꺼낼 상황이 될 게 뻔했다. 다행히 공연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특히 2-3일만에 그 정도 수준의 공연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공연을 만든 우리들도 그랬다. 물론 크고 작은 아쉬움이 없기야 하겠냐만, 우리들 스스로의 힘에 놀라고 또 감동했다. ‘사흘의 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갖게 해준 서로에게 깊이 고마워했다. 공연을 끝낸 다음날부터 서로를 그리워했다.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일에 기적이란 없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다. 배우들은 쉬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최선을 다해 작업했다. 연출진들은 배우들 한명 한명의 기량이 잘 짜이고 조화되도록 애를 썼다. 조연출은 작업이 시간낭비 없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갖은 실무적 문제를 빈틈없이 진행했다. 사흘의 기적은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함으로써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흘의 기적이 가능했던 이유는 또 한 가지는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연습하는 동안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공연 영상에도 다 드러나지는 않는다. 무대에서 또다시 왈칵 솟구치는 눈물, 붉게 충혈된 눈, 격정에 휩싸인 호흡, 터질 듯한 가슴. 우리 배우들은 기술로 꾸며낸 연기가 아니라 진정성으로 연기했다. 오래 연습해서 익숙하지만 죽어있는 연기가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있는 연기를 했다.
이런 연기는 오래 연습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랜 경력을 가졌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돈도 권력도 이름도 주지 못하는 이 척박한 예술운동이 뭐라고 묵묵히 지켜가는 사람들. 종종 동지라는 사람들에게조차 무시당하고 상처 받으면서 그래도 그래도 이 곳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 이들의 굳세고 깨끗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다.
4. 또다시 기적이 일어나길
다시 또 공연할 계획이 없느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지 않겠냐고. 8.15대회에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이 보고 중고등학생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나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 같다. 애써 만든 공연을 한 번 하고 끝내길 누가 바라겠는가. 기왕이면 더 자주 공연하고 싶다. 더 다듬고 더 잘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그날 8.14일 시청에서의 공연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공연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50명에 달하는 인원이나 비용 때문이 아니다. 인원과 비용은 줄이고 극복하면 된다.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는 이렇다. 공연할 기회 그 자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통일운동은 어렵다. 시군구 통일한마당이 열리고 골목길에도 단일기 휘날렸던 10년전과는 달리, 이제 6.15행사와 8.15외에 통일행사는 거의 열리지 않는다. 한 때 통일 주제의 작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던 예술가들도 많이 지쳐버렸다. 통일 주제의 작품은 창작해봐야 쓰일데도 없고, 자체로 공연해도 사람들이 보러오지 않을거란 생각이 팽배하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간절히 바란다. 불가능한 현실을 뚫는 기적이 일어나주길. 메이드 인 개성, 이 작품이 통일운동을 활성화하는 하나의 힘이 될 수 있기를. 거리에서 광장에서 자꾸자꾸 공연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만날 수 있기를. 북녘 동포들, 해외동포들도 만날 수 있기를.
5. 감사합니다
-좋은 원작이 있어서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임은정, 박은정, 김진휘, 최경숙, 그 외에 원작을 만든 배우들과 스태프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공연이 성사되도록 물심양면 애썼던 8.15 추진본부 일꾼 여러분들, 그리고 8.15 행사 연출팀 분들, 음향 및 조명, 영상 스태프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615합창단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아우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너무 든든했습니다. 앞으로 또 함께 작업할 수 있기를.
-현장중계에 공연영상 녹화, 유튜브 등록까지. 진보미디어 청춘, 주권방송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연출이랍시고 잘난 척한 것, 꼬장 부린 것, 싸가지 없는 것, 그 모든 걸 다 받아준 형님들과 누님들, 그리고 후배님들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무엇보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 그립습니다.
공연 개요
작품명 : 뮤지컬 메이드 인 개성
공연일시 및 장소 : 8월 14일 자정 시청광장 자주통일문화제
러닝타임 : 20분
출연 : 전희련, 차준호, 정수석, 박종욱, 전세훈, 김규남, 손기주, 이준규, 김형익, 이정아, 정윤희, 오혜진, 김지영, 유정숙, 오현경, 문의영, 박수진, 615합창단
개작 및 연출 : 류 성
작곡 및 편곡 : 박기태
가창 음악감독 : 이정아
안무 및 움직임 : 이은하
조연출 : 홍서정
원작 : 박은정, 임은정, 류 성
원작 연출 : 김진휘
원작 음악 작편곡 : 최경숙
1. 촛불의 힘
8월 6일, 그러니까 공연을 올리기까지 딱 일주일 남은 날. “경험과 상상파티”에 글을 올렸다. 8월 14일 자정에 열릴 자주통일문화제에서 공연할 작품의 배우와 스태프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글은 올렸지만 솔직히 10명이나 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애초에 의심스러웠던 이유는 기간의 촉박함만은 아니다. 톡 깨놓고 말하자. 첫째, 815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 8월 일정을 비워놓고 대기하는 예술단체, 예술인들은 몇 되지 않는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815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 자부심 넘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둘째, 연합공연에 대한 불신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활발했던 대규모 연합공연은 많은 성과도 남겼지만 그보다 더 많은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 어려워진 경제적 여건까지 겹치면서, 대규모 연합공연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한 현상들이 왜 생기게 된 건지, 뭐가 문제인 건지 기타 등등 그런 건 따로 얘기하자. 어쨌든 그렇게 되었고,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의심의 벽은 무너졌다. 우리는 무너진 벽을 넘어 더 멀리 나아갔다. 아마 공연에 참가한 우리들 중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서울, 인천, 성남, 안산을 비롯, 멀리는 횡성과 여주에서까지 달려올 줄은. 배우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615합창단까지 결합해서 결국엔 50명의 인원이 함께 공연을 만들게 될 줄은.
이건 또 어째서일까. 각개전투에 매진하던 우리 예술가들을 한데 끌어당긴 가장 근원적인 힘, 그것은 촛불의 힘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성공단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촛불의 힘”이라고 말하듯, 우리를 결집시킨 힘도 이것이다. 좀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시대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2013년, 예년과는 다른 새로운 기운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느낀다. 예술운동에도 마찬가지다. 전쟁위기가 고조되자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힘을 합쳐 <반전평화예술몸빵> 공연을 열었다. 국정원 게이트가 터지자 음악인들은 한달동안 KGB(국정원 게이트 버스킹) 공연을 지속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버티기’를 했다면 이젠 ‘반격’을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메이드 인 개성 공연의 성사는 바로 이러한 흐름의 연속에 있다.
2. 하나가 되는 연습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연습실. 두툼한 악보가 주어졌다. 통성명만 간단히 나눈 채, 바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7곡의 노래와 대사, 그리고 춤까지. 주어진 시간은 공연일 포함해서 단 사흘. 연습은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다들 노래와 춤을 익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투하듯 보낸 그 사흘간, 우리는 즐거웠고 더없이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흥분을 가져다 주었다. 새로운 후배들이 신선함을 주었고, 오랜 선배들이 든든함이 되어 우리는 서로를 자극하고 또 이끌었다. 50대의 나이 지긋한 형님들과 20대의 젊은 친구들이, 집회무대의 “선수”들과 “초짜”들이 함께 어울렸다.
원작을 썼던 임은정 작가는 아이스크림을 사다 나르며 응원했다. 사정이 있어 함께 하지 못한 극단 꾼 동지들은 연 이틀에 걸쳐 그 많은 인원의 식사를 만들어주었다. 자체 공연중이라 함께하지 못해 내내 아쉬워하던 걸판 동지들은 공연날 우루루 몰려와 응원했다. 그 외에 많은 동료들이 마음으로 함께 했다.
각자 다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우리들 중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고, 어렵고 힘든 사정에 빠진 단체도 있었고, 정치적 혹은 인간적으로 서로 껄끄러운 관계들도 있었다. 우리들은 이 모든 것들을 때로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때로는 자연스럽게 극복하며 이번 공연을 만들었다.
세대의 차이, 경험의 차이, 사소한 앙금들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각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헌신했고, 또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배우면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갔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종종 가장 뜨거웠고 순수했던 시절의 느낌이 떠올랐다. 너무나 그리웠던.
3. 사흘의 기적
우리들의 공연 준비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표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보다 더 많은 걱정과 우려도 들었다. 2-3일 연습해서 과연 좋은 공연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아마도 연출팀과 출연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긴 했지만, 나 또한 커다란 부담감에 시달렸다.
최근 815 전야제 무대에 올라오는 공연은 지역이나 부문에서 준비한 공연과 몇몇 섭외된 개별 예술단체의 공연-노래나 춤-으로 이루어졌다. 매년 추진본부 회의에서 메이드 인 개성과 같은 연합공연에 대한 제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번번히 통과되지 못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그것은 비용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과연 잘 준비할 수 있느냐는 그런 믿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면 섭섭하지만, 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옳은 판단이든 그른 판단이든 어쨌든 대중을 책임지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런 믿음을 주지 못한 우리 예술가들의 몫도 분명히 있는 것이니까. 누구도 의도하지는 않았고, 누구도 나쁜 마음을 갖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황은 가슴 아프다.
그러고 보면 사실 이번 공연은 모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만약 공연이 별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향후 몇 년간 8.15 대회에서 연합공연은 말도 못 꺼낼 상황이 될 게 뻔했다. 다행히 공연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특히 2-3일만에 그 정도 수준의 공연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공연을 만든 우리들도 그랬다. 물론 크고 작은 아쉬움이 없기야 하겠냐만, 우리들 스스로의 힘에 놀라고 또 감동했다. ‘사흘의 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갖게 해준 서로에게 깊이 고마워했다. 공연을 끝낸 다음날부터 서로를 그리워했다.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일에 기적이란 없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다. 배우들은 쉬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최선을 다해 작업했다. 연출진들은 배우들 한명 한명의 기량이 잘 짜이고 조화되도록 애를 썼다. 조연출은 작업이 시간낭비 없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갖은 실무적 문제를 빈틈없이 진행했다. 사흘의 기적은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함으로써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흘의 기적이 가능했던 이유는 또 한 가지는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연습하는 동안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공연 영상에도 다 드러나지는 않는다. 무대에서 또다시 왈칵 솟구치는 눈물, 붉게 충혈된 눈, 격정에 휩싸인 호흡, 터질 듯한 가슴. 우리 배우들은 기술로 꾸며낸 연기가 아니라 진정성으로 연기했다. 오래 연습해서 익숙하지만 죽어있는 연기가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있는 연기를 했다.
이런 연기는 오래 연습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랜 경력을 가졌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돈도 권력도 이름도 주지 못하는 이 척박한 예술운동이 뭐라고 묵묵히 지켜가는 사람들. 종종 동지라는 사람들에게조차 무시당하고 상처 받으면서 그래도 그래도 이 곳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 이들의 굳세고 깨끗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다.
4. 또다시 기적이 일어나길
다시 또 공연할 계획이 없느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지 않겠냐고. 8.15대회에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이 보고 중고등학생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나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 같다. 애써 만든 공연을 한 번 하고 끝내길 누가 바라겠는가. 기왕이면 더 자주 공연하고 싶다. 더 다듬고 더 잘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안타깝게도 그날 8.14일 시청에서의 공연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공연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50명에 달하는 인원이나 비용 때문이 아니다. 인원과 비용은 줄이고 극복하면 된다.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는 이렇다. 공연할 기회 그 자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통일운동은 어렵다. 시군구 통일한마당이 열리고 골목길에도 단일기 휘날렸던 10년전과는 달리, 이제 6.15행사와 8.15외에 통일행사는 거의 열리지 않는다. 한 때 통일 주제의 작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던 예술가들도 많이 지쳐버렸다. 통일 주제의 작품은 창작해봐야 쓰일데도 없고, 자체로 공연해도 사람들이 보러오지 않을거란 생각이 팽배하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간절히 바란다. 불가능한 현실을 뚫는 기적이 일어나주길. 메이드 인 개성, 이 작품이 통일운동을 활성화하는 하나의 힘이 될 수 있기를. 거리에서 광장에서 자꾸자꾸 공연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만날 수 있기를. 북녘 동포들, 해외동포들도 만날 수 있기를.
5. 감사합니다
-좋은 원작이 있어서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임은정, 박은정, 김진휘, 최경숙, 그 외에 원작을 만든 배우들과 스태프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공연이 성사되도록 물심양면 애썼던 8.15 추진본부 일꾼 여러분들, 그리고 8.15 행사 연출팀 분들, 음향 및 조명, 영상 스태프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615합창단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아우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너무 든든했습니다. 앞으로 또 함께 작업할 수 있기를.
-현장중계에 공연영상 녹화, 유튜브 등록까지. 진보미디어 청춘, 주권방송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연출이랍시고 잘난 척한 것, 꼬장 부린 것, 싸가지 없는 것, 그 모든 걸 다 받아준 형님들과 누님들, 그리고 후배님들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무엇보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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