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쇼 작업후기
작품명 : 반전평화 단막극 대피쇼
제작 : 예술마당 시우터
극작 : 임은정 박종욱
연출 : 박종욱 류성
음악 및 음향 : 임경진 손승희
출연 : 박종욱 김광중 이준규 박준하 류성 오혜진 박수진
1.
2013년, 벽두부터 시작된 전쟁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뭐라도 해야지 싶었던 예술가들과 스태프들은 사비를 털어가며 <반전평화 예술몸빵>공연을 열었다. 대피쇼 작업은 이 연장선에서 출발했다. 그 출발선에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만들어 놓고도 공연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공연해봐야 무슨 돈이 될 것도 아니라는 걸. 임은정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평화는 공짜로 얻을 수 없다는 걸 절감한다. 그러니 나의 댓가를 치르겠다.”
어떤 이들은 전쟁위기를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하기도 했다. 예컨대 남과 북이 으례히 벌이는 치킨게임이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이 전쟁을 바라지 않으므로 저러다 끝나게 되어 있다는 류의 이야기들. 마치 도사님들처럼. 그러나 나는 믿는다. 지금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한 풀 꺾인 것은 바보같은 이들의 바보같은 노력 때문임을. 그 바보들이 도사님들보다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걸. 세상도 그렇게 바뀌어 간다. 뭐라도 실천하는 이들에 의해서 바뀌어 간다는 걸.
2.
대피쇼는 예술마당 시우터가 제작했지만, 시우터 외의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함께 작업해본 경험이 적다보니 방향에 대한 이견도 있고, 소통의 문제도 발생했다. 게다가 각자 하는 일이 있다보니 연습시간을 맞추는 것, 공연일자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엎치락뒤치락, 지리멸렬, 좌불안석, 예측불허 등의 상태를 겪기도 했다. 몇 번을 엎어지고도 남을만했다. 그러나 귀한 뜻으로 시작해서인지 과정의 우여곡절을 잘 헤쳐나갔다. 밤샘연습과 부상투혼을 발휘하며 5월 18일 새벽, 광주 전남대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첫 공연을 끝낸 후 우리는 꽤나 흥분했다. 그건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음은 공연팀 대장을 맡은 박종욱 대표가 작성한 첫공연 후기 중 일부다.
대본 임은정. 짧은 기간 대본 1, 2, 3고 까지 써내며 기염을 토한, 그야말로 ‘못 먹어도 쓰리고’를 해낸 장본인. 대본 내용 첨삭에 대한 저의 요구로 인해 가장 시달림을 많이 받은 사람. 내용에 대한 충분한 사전 토론 없이 시작된 대본 작업이라 더욱 그러했겠지만 근본 원인은 딸리는 나의 연출 실력과 ...상상력. 나중에 류성 형님과 역할을 바꿔 제가 출연을 하고 류성 형님이 연출을 맡아 임작가님의 대사들을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저는 ‘이야~ 저런 게 실력이야~’ 했음.
연출 류성. 말이 필요 없음. 경험과 상상 파티장으로서 침체된 진보연극을 연대와 협력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수도권 극단 모아 술 먹여 놓고 부담 없이 연대하도록 하는 마법의 전략가. 제가 그동안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무슨 성과가 있겠냐’며 연대 작업의 주동에 서지 못하고 있을 때,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며 지금까지의 분위기 형성을 해 낸 사람. 류성과 함께 하면 뭔가 가치 있고 좋은 일이 생길 거 같다는 생각들이 횡횡(?)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임.
배우 오혜진. 한 가정의 가장 노릇하랴 작품 출연하랴. 고생 많았음. 몸이 안 좋아 걱정했는데 무한 책임감으로 돌파해주어 자랑스러움. 옆에서 이런 저런 코치도 겸해주어 참 좋았음. 존경하는 나의 색시. 이러다 아기 만들기는 다 틀렸음.
배우 박준하. 오랜만에 같이 한 연극 작업. 다른 데서 욕 들어먹으면서 일정 조정하는 모습에 내가 지칠 수가 없었음. 광주 공연 끝나고 새벽에 용인 도착해서 다시 청주를 향해 가는 뒷모습이 짠했음. 지금은 2세를 낳아 그대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해져 오는 전설의 여배우 박정아도 언젠가 같이 작업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배우 박수진. 명랑 소녀.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꽉 찬 연습 일정에 연하 남친 기를 빼앗아 올 겨를도 없었을 텐데... 모두 작업 과정의 에너지를 위한 목적의식적 노력이라 생각하니 울컥. 그대의 섹쉬한 웨이브에 다시 한 번 울컥. 새벽 4시 연습 후 ‘저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했을 때 또 울컥. 광주 내려갈 때 삶은 계란과 과일 바리바리 싸들고 온 거 보고 또 울컥.
배우 이준규. 체력전의 선봉 막둥이. 시종일관 피티 체조에, 운전에, 소품 구입에 회계정리에... 무엇보다 일생 일대 첫 연극 출연. 축하 축하. 다음엔 삽질도 맘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음.
음향 스텝 임경진. 진행비 줄이려다 보니 같이 못할 뻔 했는데. 같이 광주 갈 수 있어서 다행. 연습도 많이 못해 큐 맞추기 힘들었을 텐데 하늘에서 내린 그대의 감각에 감탄. 연습 더 해서 음향도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으면 좋겠쥐. 조금 여유 생기면 지역 특산물 많이 먹자. 하하하.
비타민 손승희. 하하하. 이번에는 음악 관련 역할이 별루 없었지만 수송 역할, 네비게이션 역할, 관객역할, 옆에서 뭐라도 챙기려하고 항상 밝은 모습에 감동. 우연히 들른 여수에서 잠시 의기소침해지긴 했지만.... 작품 준비 기간 동안 5분 대기조로 있으면서 민중가요 모두 섭렵했다는 후일담에 또 감동. 여수에서도 공연 섭외 들어오면 정말 좋을 텐데...
연습장소와 의상 소품 빌려준 희망새와 걸판. 응원해주고 궁금해 해준 경상파티원 분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대작 하나 끝낸 거 같은 공연 후기... 쿄쿄... 하지만 뭐... 마음이 그런데 이게 무슨 흠이 될라구...
3.
예상했던 대로 공연 횟수는 많지 않았다. 공연문의가 예산문제로 불발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고, 잡혔던 공연히 주최측 사정으로 엎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우리 사정으로 공연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에게 공연을 적극 홍보하고 조직할 실력이 없는 문제다. 부끄럽지만, 우리들의 작품이 유통되는 방식은 이렇다. 아는 인맥의 누군가가 판을 열어놓고 불러주는 것. 그렇지 않으면 공연이 성사되기 어렵다. 그러니 많은 작품들이 아는 인맥의 수준에서 몇 번 공연되다가 결국 사장되곤 한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으나 스스로의 한계를 돌아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두렵지만 분명한 것은, 예술가들이 작품 만들기에만 전념하면 되는 시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품뿐만 아니라 어떻게 대중들과 더 많이 만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특히 작품에 상업성이라곤 없는 우리들은 이 방면에서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비록 공연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유의미한 몇가지 성과들도 있다. 7월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주 1회씩 모임을 갖고 연기수업을 했다. 연기수업을 위한 비용은 시우터가 부담했다. 연기수업은 내가 맡았는데, 대다수가 연기경력이 많지 않으므로 수업은 기본훈련에 집중되었다. 알차게 준비하지 못한 나의 겸연쩍음을 무시하고 얘기하자면, 수업의 내용과 질에 상관없이 몇 가지 유익한 효과를 가져왔다. 간헐적으로 잡히는 공연 스케쥴만 따라가면 팀이 너무 느슨해질 수 있는데, 우리는 매주 한 번꼴로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더 깊어지고 친해졌다. 그 기간 동안 있었던 생일잔치들과 뒷풀이 자리는 따뜻하고 즐거웠다. 또한 함께 정기적으로 연기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점검하고 단련하는데 일종의 자극제가 되었다. 아울러 시우터의 연극적 역량을 강화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시우터 공연의 특성을 확립하는데 좋은 열쇠도 얻었다. 각 단체마다 자신만의 독특함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시우터의 경우에는 대동놀이가 그 열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 몇 차례의 공연에서 대피쇼 연극에 이어서 시우터의 장기인 대동놀이를 연속적으로 진행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이런 방식이 아주 새롭거나 한 것은 아니다. 많은 마당극 공연이 공연의 말미에 풍물을 치면서 관객들을 끌어내어 어깨춤을 들썩이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판에 들어가 노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많아 구경꾼이 되기 쉽다. 그러나 시우터의 대동놀이는 모든 관객들이 함께 놀 수 있도록 진행된다. 앞으로도 여러가지 대동놀이를 개발하여 공연과 적절하게 연결시킨다면, 시우터만의 매력적인 공연양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5월에 시작했던 작업은 8월에 일단락되었다. 마지막 공연을 끝낸 후 쫑파티 자리는 소박하지만 따뜻했다. 이제 헤어진다는 느낌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지난 4개월간 함께 했던 경험들과 여러 기억들이 우리들에게 오래오래 남아 주기를. 더 새롭고 더 단단한 만남의 씨앗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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