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 이야기

배우의 작품 분석

배우의 작품 분석


류 성


작품의 분석은 다음과 같은 3단계를 따른다.


먼저 확실히 제시된 것, 그러니까 텍스트에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는 것을 먼저 분석하는 것이다. 물론 희곡 텍스트에는 골격만 제시되어 있기에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을 수 밖에 없으며 이 공백을 처리하기 위해서 유추와 상상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들을 모아 윤곽을 그려놓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다. 가장 창조적이지 않은 이 작업은 대단히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가장 어려운 작업이다. 대사하나하나와 지문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고 연관시켜가며 치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관련된 자료들도 찾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놓치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고, 놓쳐버린 것들은 반드시 유추와 상상에서 한계로 작용한다. 이 작업이 정확하게 수행될수록 유추와 상상의 기초는 튼튼해진다. 기초가 튼튼해야 창조의 성과가 있다. 발 딛고 있는 대지가 단단해야 더 높이 뛸 수 있는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다음으로 유추의 과정이다. 명백하게 제시된 것들에 기초하면 꽤 많은 것들을 유추해낼 수 있다. 분석이 치밀했다면 유추할 수 있는 양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섣불리 상상을 개입시켜 무리한 유추를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타당한 논리로 유추를 하는 것이지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 아니다. 유추는 철저하게 분석에 기초하여 작업해야 하며 정당한 결론만 정리되어야 한다. 분석과 유추의 과정은 복원 기술에 비유할 수 있다. 분석이 발견된 뼈들을 모아 제 위치에 갖다 맞추는 것이라면, 빠진 뼈들의 모양과 위치를 정리하여 골격을 완성시키는 것이 유추라고 할 수 있다. 분석과 유추는 복원기술처럼  정확성을 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명확한 나머지는 상상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유추가 정당할수록 상상은 힘찬 비상을 할 토대를 갖추게 된다.


다음으로 상상의 과정이다. 희곡에는 사건과 인물에 관한 부분만 제시되어 있을 뿐 모든 것이 밝혀져 있지는 않다. 단면과 순간을 집중적으로 그렸을 뿐 입체적으로, 통시적으로 분명하게 그려져 있지 않다. 분석과 유추를 통해 많은 것을 밝혀냈더라도 여전히 많은 부분이 불확실하며 공백으로 남아 있게 된다. 연출과 배우는 아직도 남은 공백을 메워 최대한 사건과 인물의 전모를 재구성해내야 하며 이때 상상력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분석과 유추의 과정으로 골격을 완성시켰다면 어느 정도의 살집이었고 어떤 피부색이었는지 등을 결정하는 것이 상상이다. 그런데 상상은 너무 자유로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믿기 어렵다. 고삐가 없다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망아지와 같다. 그러나 분석과 유추가 정확하다면 상상이 마구잡이로 튀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상상으로 재구성된 것들이 분석과 유추에서 내린 결론에 위배되는지 검증해보아야 한다. 만약, 위배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매력있는 상상이라도 버려야 한다. 작품의 통일성과 개연성을 해치는 악영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잘 들어맞을수록 좋은 상상이며 큰 힘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것들 중에서도 창조에 실효가 있는 것이 있고, 무익한 것이 있으므로 실효가 있는 것만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상상을 절대시해 분석과 유추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또는 분석과 유추가 상상을 제한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하다. 분석과 유추가 상상력을 제한시키지는 일은 결코 없다. 상상은 분명히 현실에 기초한 것이며 아는 것이 많아야 상상력도 커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하나씩 쌓아올려야 하는 계단과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바, 분석은 유추의 토대를 제공하고, 분석과 유추는 상상의 토대를 제공한다. 상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후의 주인공은 아무런 토대도 없이 허공을 유영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과 유추를 도약대로 삼아 힘차게 비상하는 것이다.


배우는 분석, 유추, 상상이라는 계단을 하나씩 착실하게 밟아 올라감으로써 사건과 인물의 전모를 이해하고 창조적 자극과 열정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작업을 스스로 주인답게 수행하지 않고 연출가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의존하는 그들은 대개 이 계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초보이거나, 비록 알고는 있지만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이 계단을 스스로의 힘으로 오를 의지가 없는 게으름뱅이다. 그들은 연출가를 답답하게 만들어 끝내 연출가가 세부적인 지시까지 내리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를 잽싸게 받아 문다. 그들이 대사를 치고 액션을 취해도 실제로 스스로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은 배우란 연출가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다른 모든 예술가들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하는 예술가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의존하지는 않지만 다른 종류의 나쁜 배우들도 있다. 물론 그들도 계단을 착실히 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먼저 대본을 분석한답시고 대본의 오류와 결점을 찾는데 혈안이 되는 배우들이 있다. 그런 배우들은 대체로 자신의 지성, 혹은 분석력 등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욕심을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실함은 창조의 친구지만 자기과시의 욕구는 창조의 방해자일 뿐이다. 그들은 작품에 참가하기 전에 작품을 존중하는 법과 자신을 낮추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또 제 멋대로, 익숙한대로, 자신의 취향대로 왜곡시켜 연기하는 배우들도 있다. 이런 배우들은 분석하지 않는다. 분석하는 척 할 뿐이다. 그들은 대체로 분석과 유추는 건너뛰고 상상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했더라도 상상력이 막히자마자 다시 돌아오면 다행인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대체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상상조차도 아주 빨리 완결 짓는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자신에게 익숙한 것 등을 다시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술의 생명, 특히 배우의 생명은 언제나 새롭게 창조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008년 12월 1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