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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민족극 학교 참가 후기


민족극학교 참가 후기

 

 

민족극학교 연기반

2013년 1월 14일-20일까지

진안 전통문화전수관

 

 

1. 강이 시냇물이 되었다

민족극 한마당, 4.3마당극제 등 여러 차례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민극협 식구들과 그리 쉽게 사귈 수 없었다. 거기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전적으로 나의 소극적인 성격 탓인데, 차려진 밥도 못 먹는 꼴이라고 할까. 그런 점에서 민족극 학교는 내게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함께 먹고 자면서 작업할테니 소극적인 내 마음도 자연스럽게 열리지 않겠는가. 2013년 민족극 학교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도 나는 가슴이 뛰었다. 노트북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있고 싶어서 연기반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밥상이 차려지니 또 소극성이 고개를 쳐들었다. 며칠에 걸쳐 수차례 고민한 끝에 용기를 내고 참가신청서를 작성했다. 학교에 있던 일주일동안 나는 몇 번이고 잘했다고 생각했다. 장기간의 외박을 허락해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맙고, 친밀하게 대해준 선생님들과 동료들에게 고맙고, 용기를 낸 나 자신에게 고마웠다. 생각과 실행의 사이에는 때로는 커다란 강이, 때로는 시냇물이 흐른다.

 

 

2. 더 없이 즐거웠던 시간들

거의 모든 시간이 그러했지만, 연기수업시간은 더 없이 즐거웠다. 박연희 선생님의 수업을 통해 나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고, 알고 있던 것들은 더 새롭게 알게 됐다. 핵심을 콕콕 짚어내는 그 내공에 대해서야 두말할 것도 없겠지만, 내가 특히 큰 감명을 받았던 것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 수업시간 외에도 우리들이 하루 종일 훈련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둘째, 매일 꼼꼼하게 수업을 준비하셨고, 우리들이 막히는 것이 있을 땐 혹여 자신께서 수업을 잘 못 이끈 것은 아닌지 돌아보셨다. 셋째, 우리들의 사고와 창조에 대해 논리로 제압하는 법이 없이 존중하고 토론하셨다. 함께 수업을 받은 동료들에게 배운 것들은 더 많았다. 매일매일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사고방식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창조물들을 보고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더 없이 좋은 연기수업이 되었으며, 동시에 살아있는 극작수업이자 연출수업이 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 자신에 대한 것이다. 첫 수업시간, 선생님은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깨끗해지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익숙한 사고, 익숙한 표현, 익숙한 버릇들이 만들어낸 패턴의 연기를 반복하는 자신을 종종 발견했고, 그럼에도 나는 내려놓지 못했다.

 

 

3. 특강에서 배운 것들

다양한 특강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오월애 다큐영화를 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울컥했다.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그런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나의 근본적인 한계는 어디서 오는지 생각했다. 김태일 감독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멋스럽게 꾸미지 하지 않았다. 삶에 대한 진정성과 용기는 소탈하고 겸손한 태도덕분에 더 없이 빛이 났고 묵직한 감동을 주었다. 최 희 강사님의 마임 수업은 흥미로웠다. 제대로 서고 제대로 걷는 것조차 옳은 훈련방법이 필요하다는 건 경험적으로는 알지만, 과학적인 연구는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사님을 10분이라도 더 붙잡아 배우고 싶었다. 특히 신체훈련을 한답시고 몸에 스트레스-폭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공감했으며, 메이에르홀드의 생체역학 훈련의 이론과 실제 훈련방법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바우솔님의 붓놀림은 예술에 대한 중요한 깨우침 하나를 주었다. 예술이란 오랜 시간 축적된 실력이 순간적으로 발휘될 때 탄생하는 것이었다. 벽 하나하나에 붙은 글귀들을 보며, 사람들의 따뜻하고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팽팽한 긴장 놓지 않는 까치 한 마리가 되고 싶어 나는 굳이 은산철벽이란 글귀를 부탁드렸다. 극단 서울괴담 유영봉 강사님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고와 극단의 작업방식은 놀랍고도 부러웠다. 틀에 박히지 않은, 아니 틀에 박히면 안 되는 거리극 작업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뒷풀이 자리에서 나눴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4. 두렵고 설레는 숙제들

뒷풀이에 참석 못하고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며칠간 겹쌓인 피로 때문에 곯아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잠들 수가 없었다. 많이 배웠고, 많이 즐거웠던 것만큼 한아름의 숙제를 짊어진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다시 뒤적거리고 싶은 몇 권의 연기서적들을 손에 꼽아 보았다. 동료들이 창조해낸 장면들이 자꾸 떠올라 혼자 키득거렸고, 올라가면 그 장면들에 이런저런 살을 붙여보리라 생각했다. 어느새 잊어버렸던 연기와 연극에 대한 화두들을 꺼내어 다시금 정리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커다란 숙제는 인연일 것이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맺어진 이 귀중한 인연의 끈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이미 맺은 사람들과의 인연조차 종종 소홀해지고 마는 내 좁은 그릇이, 이번에 새롭게 맺어진 인연들과 더불어 얼마나 더 커질 수 있을까. 그것은 무척이나 두렵고 설레는 일이었다. 버스는 빠른 속도로 인천을 향해 달리는데, 내 마음은 자꾸만 진안의 뒷풀이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5. 추신.

박세환 선생님, 칭찬7:지적3 이야기 잊지 않겠습니다. 박연희 선생님, 자꾸 나누기해야 한다는 말씀 새기겠습니다. 대식형님, 저도 형님처럼 멋지게 나이 들겠습니다. 광중아, 밤마다 쉬는 시간마다 연습하던 모습 새록새록한다. 뒷풀이하는 사람들을 위해 밤마다 맛난 음식 만들어줬던 경진아 고마워. 집에 오니 우리 아들 얼굴에서 준규 니가 보인다. 오누이처럼 편하고 다정해 보이는 종원씨랑 민이, 그립고 그립다. 차분한 목소리와 성실한 몸가짐, 그리고 예쁜 웃음의 성애씨, 결혼 축하해요. 우리 조카 현경아, 어렵고 힘들어도 꿈을 포기하지 마. 힘내고 힘내. 인제씨, 대구에 좋은 동생 얻은 것 같아 든든해요. 오랜 친구같이 편안한 신욱아, 종친의 연을 이어가자.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탁정아 사무국장님 거듭 감사. 승준아 너도 나도 우리 캔디처럼 꿋꿋이 파이팅하자. 운선씨, 민우씨 두 분 작품 너무 재미있었고 얼른 공연으로 보고 싶네요. 현동씨 앤더슨 박사가 너무 궁금해요. 지환아, 종욱아, 형 잘 챙겨줘서 고마워. 봉희야, 형이 잘 못 챙겨줘서 미안해. 강산아, 너만의 색깔 담긴 너만의 작품 기대할게. 조운정님 이야기 깜짝 놀랄만큼 재미있었어요. 윤영희님, 마주칠때마다 웃어주셔서 고마웠어요. 민극협 사무국장님 동재씨, 묻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은정아,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너 인기 되게 많아. 특히 민이가 광팬이야. 훈성씨, 마지막날 뒷풀이 함께 못해서 나도 너무 속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