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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산모와 배우

 

산모와 배우



-류 성-


여러 측면에서 배우는 산모와 매우 닮았습니다.

첫째, 산모가 아이를 낳듯이, 배우는 연기를 낳습니다. 산모와 태아가 태교를 거치며 하나가 되듯, 배우와 역인물도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둘째, 어떤 사람은 매우 쉽게 낳지만 어떤 사람은 매우 고통스럽게 낳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타깝게도 끝내 실패하고 맙니다.

셋째, 산모에게 좋은 산파가 있다면, 배우에게 좋은 연출가가 있다면 좀 더 쉽게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파가 없어도 산모가 아이를 낳을 수 있듯이, 연출이 없더라도 배우만 존재하면 연극은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전혀 다른 점도 있습니다. 산모는 어떤 경우라도 자기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배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산모와 달리 배우는 스스로의 힘으로 낳지 않고도 연기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연출가의 지시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일 수도 있고, 남이 창조해낸 것을 끌어다 흉내 낼 수도 있습니다. 이 점이 배우 산모와 배우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연기를 창조하지 않은 배우는 아이를 낳은 척 하는 산모와 같습니다. 만약 산모가 아이를 낳지 않고 끝까지 낳은 척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때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는 결국 뱃속에서 죽어버립니다. 죽어버린 아이는 독이 되어 산모를 위험한 상태로 빠뜨릴 것입니다. 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예술적 생명은 위험해집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신의 예술적 생명을 위해서라도 연기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며 주체성과 창조성을 한 순간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독불장군처럼 제 멋대로 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겠지요. 산모가 산파를 믿고 의지하듯이 배우는 연출가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연출가는 배우와의 작업에서 자신을 산파로 생각하고 조산술을 사용해야 합니다. 산파가 아이를 낳을 수 없듯 연출가가 연기를 낳을 수는 없습니다.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우치도록 만들어주었던 소크라테스는 “신은 내게 산파의 역할을 주었을 뿐, 내가 해산하는 것을 금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연출가가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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