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다큐 ‘벽’ 영화음악감독 백자 1st 소품집
걸음의 이유 리뷰
-류 성-
세상이 온통 뒤숭숭하다. 살겠다고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이 불에 타죽었고, 강호순이란 희대의 살인범이 잡혔고, 국회는 여전히 난장판이다. 세상이 뒤숭숭해서 그럴까, 아내와 나도 자주 다투고, 아이와 아내도 부쩍 자주 다툰다. 거리 곳곳에서 시비에 휩싸인 사람들을 예사로 본다.
그런중에 이 음반을 접했다. 이틀을 듣고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새벽에 집 밖으로 나간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중얼거렸다. “어쩌자고 이런 시대에 이런 노래를 냈지?”
내가 느끼는 이 시대의 모습은 이러하다. 철거민들이 불에 타 죽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는 커녕 철거민들 탓을 한다. 잘못했다며 사과하는 놈이 없다. 강호순 같은 살인범이 왜 자꾸 나타나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다. 그저 그놈이 죽일 놈이라고 소리치는데 전력을 다한다. 국회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나 또한 남 탓 하는데 아주 익숙해져 있다. 심지어 엄마와 다투는 4살짜리 아들 녀석도 결국 ‘엄마 때문에’다. 서슴없이 남을 탓하는 시대다.
걸음의 이유는 이런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음반이다. 여기에 담긴 노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관심을 돌린다. 남 탓을 하거나, 남에게 명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세상을 신랄하게 풍자하지도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그저 자신을 성찰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물론 자신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여러 컨텐츠가 이미 많이 쏟아져 나왔다. 서점에 가면 그런 종류의 책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 책들은 사실 독자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마라’고 하는 것들이다. 결국은 남들에게 성찰하라고 명령하거나 선동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자기 성찰을 해보니 자기가 잘났더라고 주장하는 책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그러나 걸음의 이유 음반 속의 화자는 정말 자신을 성찰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게다가 그 성찰은 뭔가 깨달았거나 그래서 어떤 용기를 얻은 자의 성찰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바라고 어디로 가는지조차 잘 모르는 자의 성찰이다. 용기는 커녕 매순간 흔들리고 비틀거리는 자의 그것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자의 그것이 아니라 실수도 많고 후회도 많은 자의 그것이다. 잘 난 자의 그것이 아니라 못난 자의 그것이다.
모두들 남 탓하느라 정신없고 남에게 명령하고 선동하기 바쁜 시대에 그는 바보같이 자기를 돌아본다. 조금이라도 가진 자들이라면 저마다 자기가 옳고 자기가 잘났다고 설쳐대는 시대에 그는 바보 같고 쪽팔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의 자기 성찰을 듣고 있노라면 종종 마음이 무겁고 때로는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참 묘하다. 이 음반 들을수록 마음이 젖는다. 듣다보면 그의 얘기인지 나의 얘기인지 모를 만큼 그 경계가 무너져 버릴 때가 온다. 그 때는 황급히 방어벽을 친다. 그의 것이 나의 것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것은 내가 친 벽의 틈새를 타고 금새 흘러 들어오고, 어느새 나의 것과 그의 것은 경계도 없이 뒤섞여 버리고 만다. 그 산악다큐 영화 제목이 '벽'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후비는 듯 아픔이 찾아오는데, 그 아픔은 은근히 중독성이 강하다.
걸음의 이유라는 음반은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르는 이 시대에 자기 성찰을 구하는 음반이다. ‘난 너무 예뻐요’라고 골빈 소리를 늘어놓아야 반겨주는 이 시대와는 참 안 어울리는 음반이다. 그러니 이 음반,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듯 한데, 노래도 참 좋다. 많이 팔리기를 바란다는 바램은 별로 의미없을 듯 하다. 어차피 아주 적게 찍었다니까.
음반 구할 수 있는 곳 www.100j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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