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있었다
-류 성-
새가 있었다
어느 날 새는 날개가 꺾였다
추락하는 동안 새는 생각했다
상승할 때는 아플 정도로 날개 죽지를 움직여야 했지만
추락할 때는 아무런 노력이 없어도 더 빠르다는 것을
순간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 꽂혔다
아팠다
새는 다시 날지 않으려 했다
날개가 꺾일 때 생긴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추락의 기억은 꿈에서도 생생하여 고통스러웠다
날아오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두려웠다
날지 않는 새가 되기로 했다
날지 않는 새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나
새는 날개의 흔적조차 없애버리려 했다.
날지 않는 새들은 언젠가 날아갈 것을 꿈꾸었으나
새는 날았다는 기억조차 지워버리려고 했다.
새는 한동안 날지 않았다
그러나 새는 부정할 수 없었다
발은 땅에 붙이고 있지만 눈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음을
흔적조차 희미한 날개 죽지가 저도 모르게 자꾸만 움찔거리는 것을
추락의 기억이 상승의 꿈으로 치환되고 있는 것을
새는 다시 날고 싶었다
기왕이면 더 높이 날고 싶었다
그러나 꿈이 달콤할수록 현실은 참혹하다는 것을
날개는 사라졌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있음을
그 몸통조차 땅에서의 생활에 맞게 진화해 버렸음을
새는 잘 알고 있었다
냉정한 현실은 허황된 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고
아름다운 꿈은 구질구질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꿈과 현실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했다
새는 혼란스러웠다
어떤 이는 안쓰러워하며 되물었다
날아오르면 언젠가 추락하기 마련인데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느냐
날지 않는 새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웃으며 격려했다
새의 본질은 나는 것이므로 언젠가 새로운 날개가 솟아오를테니
차분히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라고 했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조심스럽게 충고했다
꼭 제 날개를 가져야만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제 몸을 해체하여 다른 새의 날개가 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아직도 제발을 땅에 붙이고 있으나
눈은 하늘로 향한 채
흔적뿐인 날개 죽지를
움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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