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연기 12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다
-류 성-
대사를 실수 없이 유창하게, 혹은 감정을 한껏 넣어서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거기에 힘을 쏟을수록 실수가 많아지고, 부자연스러워진다. 오히려 발화의 계기와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배우에게 말하는 능력만큼 또한 중요한 것이 듣는 능력이다. 배우는 연기할 때 무엇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자기의 대사와 행동을 하는데 필요한 충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사람은 항상 충동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한다. 연극에서도 상대의 말을 실제로 듣고 반응해야 즉흥적이고 살아있는 리액션이 가능하며 말의 리듬과 뉘앙스도 살아난다. 그러나 연극의 세계는 허구의 세계이며, 배우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은 미리 정해져 있다. 따라서 충동에 따라 말을 하기가 어렵게 되는데, 충동이 약하거나 없는 채로 말과 행동을 하면 곧 기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게 된다.
배우는 충동을 생산해 낼 줄 알아야 살아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 충동을 생산해내는데 가장 강력한 원천은 역시 상대배우의 말과 행동이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충분히 집중하면 자신의 연기에 대한 강한 충동을 획득할 수 있다. 게다가 상대를 향해 눈과 귀가 열려 있으면 긴장이 제거되고 극적 상황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져 보다 유연하고 정확한 연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상대에게 집중하지 않는 배우들은 조금이라도 다른 자극이 오게 되면 쉽게 당황하며 긴장상태에 빠진다. 호흡과 발성이 어색해지고 결국 실수를 저지른다.
또한 배우는 자신의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말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무대에 서는 배우는 들으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첫째, 조절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무대 화술은 특별하다. 리듬과 템포가 있어야 하고, 공명이 있어야 하고,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이는 배우의 조절력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조절력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가장 토대가 되는 것은 바로 자신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물론 듣는 능력 자체가 조절력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듣지 못하고는 조절 자체를 기대할 수조차 없다.
둘째, 충동을 생성시키기 위해서다. 상대배우의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말과 행동 또한 충동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다. 자기 말을 들을 줄 알면, 자신의 말을 충동의 원천으로 삼아 보다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기하는 동안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절력을 크게 발휘해야 할 때, 충동을 필요로 할 때는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자신의 음성, 리듬, 템포, 뉘앙스 등에 주의를 기울이고, 조절력을 발휘하며 말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무대에서의 적응도 쉬울 것이다.
2012년 4월 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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