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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이야기

나이팅게일의 슬픔


작년 12월이었습니다.

아들놈 감기가 잘 낫지 않더니 이제 기침소리가 매우 심상치 않습니다. 아침일찍 동네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빨리 입원시키라더군요. 결국 또 폐렴으로 번져버린 것입니다.

또 입원시키기 싫어서 두세곳의 병원을 더 돌아다녀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더군요. 소견서와 엑스레이 사진을 들고, 아이를 안고, 입원용 물품을 메고 인천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갔습니다.

시간은 오후 3시. 접수하는 데스크에서 환자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정을 이야기하며 부탁을 했습니다. 데스크의 아가씨는 소아과로 가서 간호원들한테 직접 이야기하라고 하더라구요.

돌아서는 등 뒤로 "딩동"하는 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아과로 갔더니 난리도 아닙니다. 복도에 마련된 대기실에 사람은 미어터지는데 겨우 2-3명의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일합니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틈을 찾았습니다.

"저기요,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

그렇지만 설명은 단 10초도 못했습니다. 간호사들은 내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전화받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에 바쁩니다. 틈을 찾아 다시 한번 부탁해보지만 환자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말만 돌아옵니다.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서 환자 안받는다는데 보내면 어떡하냐고 항의까지 합니다. 그걸 보는 저는 아주 당황스럽고 민망해집니다.

그런데 아이의 기침 소리가 자꾸 커집니다. 아이의 눈에 눈물까지 맺히는 걸 보니 민망함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아예 한 간호사를 쫒아다니며 부탁합니다. 애가 꼭 입원을 해야 된다는데 이럴 땐 어떡해야 하는지, 무슨 방법이 없겠는지 물어봅니다.

바쁜 간호사는 자기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한마디 던집니다.

이제 아이는 제 기침에 못이겨 자지러지더니 제 목을 꽉 부여잡고 울어댑니다. 그러면 인천에 소아과 입원실이 있는 다른 병원 전화번호라도 가르쳐 줄 수 없겠냐고 물었더니 간호사가 짜증을 확 냅니다.

"그건 아기 아버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그 말을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뻗칩니다. 우는 아이를 내려놓고 간호사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이게 병원인가? 이 아이가 뭘로 보이냐? 그래, 환자로 보이지 않아도 좋다. 최소한 돈으로라도 보이냐? 고객이라고 생각은 하냐? 그러면 당신이 이럴 순 없다. 아이가 아파서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당신은 도대체 뭐냐?"

시끌벅적하던 병원이 일순간 조용해집니다. 병원복도의 모든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아빠의 큰 소리에 놀란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아이가 부들부들 떨리는 내 손가락을 꽉 붙잡습니다.

이내 다른 간호사들이 달려왔습니다. 한 간호사가 접수해드리겠으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그 중 한 간호사가 아이를 만지려합니다. 나는 또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손 치워라. 책임지지도 않을 그 손 내 아이에게 갖다대지 마라."

나는 아이를 안아올리고 병원복도를 걸어갑니다. 아이는 늘 하던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빠이빠이하며 손을 흔들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습니다. 소견서와 엑스레이 사진을 병원 복도에 집어던져버립니다.

그날 밤, 나는 매우 착찹한 심경이었습니다. 아마 그 간호사들도 그랬을 겁니다. 사실 그 간호사들이 원래 심성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니, 그들은 나이팅게일의 꿈을 꾸었던 가장 인간다운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병원들에서 규정을 어겨가며 인력을 계속 줄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이젠 동남아 간호사들을 수입해서 쓰려고 하는 곳도 있답니다.

저비용 고효율이란 망령이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간호사들의 '인간다움'을 거세시키고 있습니다. '나이팅게일을 닮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꿈'을 빼앗고 그 자리에 '짜증과 피로감'을 채워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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