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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야기

인도의 전통연극에 대한 소고

인도의 전통연극에 대한 소고



-작성자 류 성-



본 연구는 인도연극의 특성에 대해 다룬다. 연구를 위해 참고한 서적들 중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책들은 다음과 같다. 현자 바라타가 저술했다고 알려진 <나티야 샤스트라>, 인도의 연극학자 수레쉬 아와스티가 저술한 <인도연극의 전통과 미학>, 그리고 조동일 교수의 <카타르시스, 라사, 신명풀이>이다.


<나티야 샤스트라>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에 쓰여진 당대 인도연극의 이론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다분히 개념적이고 문학적인 반면 <나티야 샤스트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총 36장에 걸쳐 연극의 기원으로부터 극장의 건축법, 공연예비절차, 연기술, 극작술, 음악과 무용, 상연절차와 무대규약, 악기의 이용과 연주법, 대사치는 법, 공연평가 등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분량을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어 가히 연극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릴만 하다.


<나티야 샤스트라>는 기원전후에 쓰여졌지만 그 미학적 원칙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연극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인도연극학자 수레쉬 아와스티는 인도의 현대 연극 중 가장 혁신적이고 의미있는 작품들의 어법들조차 <나티야 샤스트라>에 규정된 미학적 원칙들과 근본적으로 일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인도연극의 전통과 미학>은 인도의 연극학자 수레쉬 아와스티의 저서로 인도의 전통연극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나열하는 식의 서술을 피하고 연극의 기원, 공연과 관극의 의미, 미학과 실제 등 총 9개 분야의 주제로 나누어 서술함으로써 인도의 연극예술에 내재된 전반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전통에 대한 저자의 사고이다. 저자는 인도의 독립 이후 본격화된 문화적 주체성의 회복노력을 통해 전통예술의 활력과 가치가 재인식되고 있으며, 현대의 진보적인 연극인들이 새로운 형식의 개발을 위해 전통연극의 기법과 요소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전통적 표현기법 및 미학적 원리들을 현대적 감각과 융화시킨 새롭고 독창적인 연극어법을 창안해내고 있다고 본다. 아울러 그들의 이러한 노력이 인도연극을 식민지 시대의 종속상태로부터 구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한다.


<카타르시스, 라사, 신명풀이>는 조동일 교수의 저서로 카타르시스, 라사, 신명풀이가 가장 근원이 되는 미학적 원리이며 다른 것들은 이 세가지 기본원리의 변형이거나 둘 이상의 복합형이라고 간주하고, 고대 그리스 비극인 오이디푸스왕, 중세시기 인도의 사쿤탈라, 우리나라의 봉산탈춤을 각각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선정하여 이들이 가진 작품전개, 언어사용, 관중의 구실,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 등을 비교고찰한다.


나아가 이렇게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세계 연극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카타르시스 연극은 고대연극, 라사 연극은 중세연극, 신명풀이 연극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연극의 본보기이며 이들은 해당문명권의 세계관과 해당 시대성격이 서로 결합함으로써 탄생했다는 것이다. 인도의 경우, 신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하는 인도문명 특유의 세계관과 중세의 시대 성격이 결합함으로써 중세시기에 인도연극의 중흥기가 펼쳐졌다고 해석한다.



1. 기원신화로 보는 인도연극의 특성


인도연극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의 제의 및 종교적 의식에서 발생했다는 설, 대중적인 민속연희에서 발생했다는 설, 인형극이 연극보다 앞서 발생했다는 설 등 여러가지 견해가 제기되고 있으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나티야 샤스트라>에 기록된 신화적 내용이다. 그 신화의 개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들은 창조의 신 브라흐므에게  천민인 슈드라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베다를 청했고, 브라흐마는 기존의 네가지 베다에서 연극의 네 요소인 음송, 가창, 모방적 몸짓, 정취(라사)를 취하여 새로운 베다를 창조했다. 이것을 나티야 베다라고 불렀다. 여기에 쉬바는 무용을 헌증하여 연극에 결합시켰고, 비쉬누는 표현양식을 고안했다.


브라흐마는 신과 마귀와의 투쟁에서 신들이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제의에서 최초의 공연을 했다. 이에 흥분한 마귀들이 난입하여 공연을 방해하려 들었다. 그 내용이 신과 마귀들간의 투쟁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브라흐마와 신들을 마귀들을 제압하고 설득하여 공연을 계속한다.


 이후 브라흐마는 인드라에게 명하여 나티야 베다를 신들에게 가르치게 했다. 그러나 인드라는 천상의 신들이 이해하고 실행할 능력이 없음을 고하였다. 이 새로운 베다를 실천할 수 있는 이들은 기존 베다의 지식을 충분히 갖춘 현자들 뿐이었다. 이에 브라흐마는 현자 바라타를 불러 그의 100명의 아들에게 극을 가르치도록 명하였다.


바라타의 아들들은 천상에서 극단을 조직하고 공연을 하던 중 신과 현자들을 풍자한 소극을 상연한 댓가로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신들의 저주를 받은 그들은 천민인 슈드라 계층으로 전락하여 심한 고통과 좌절을 겪었다. 훗날 천상왕국을 건설한 나후샤왕이 바라타에게 연극을 지상으로 전파할 것을 명하였다. 그렇게 연극은 지상에 전래되었다.


이 신화의 몇가지 대목을 주목하여 인도연극의 특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시켜 보자.


첫째, 연극에 쉬바가 무용을 결합시켰다는 대목이다. 인도의 전통연극은 대사가 시적이며 노래와 무용, 악기의 연주 등이 필수적 요소로 결합되어 총체공연적인 특성을 띈다. 특히 극을 뜻하는 나티야라는 용어는 연극과 무용을 함께 포괄하는 용어이며 실제로 대부분의 전통연극에서 무용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만큼 둘은 뗄레야 뗄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진다.


인도전통연극은 대사에 몸짓이 따르면서 장식적 요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아예 대사없이 무용으로만 표현되어 서사를 전개하는 등 무용과 몸을 사용한 상징적 신체언어의 비중이 매우 큰데, 사실적 표현보다는 양식화된 손짓과 자세, 동작을 통해 형상화한다. 꽃을 꺾는다든지, 마차를 타거나 화살을 쏘거나 애무의 전율감을 표현한다든지 하는 등의 행위가 정해진 손짓을 통해 상징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전통연극 중 하나인 카타칼리의 경우 24유형의 기본적인 손짓을 다양한 변환과 조합을 통해 700가지의 관념, 사물, 행동, 감정 등을 표현할 수 있도록 체계화되어 있을만큼 신체언어가 발달해있다.


전통연극의 극본을 읽는데는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공연하는데든 6시간 혹은 6일동안 계속되기도 하는 것은 이러한 특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손짓, 자세, 동작, 걸음새 등 배우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풍부한 조형성에 화려한 분장과 의상이 결합하여 인도연극의 볼거리적 특성은 매우 극대화되어 있다. 시와 노래를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듣는 연극이 아니라 보는 연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연극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며 베다의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대목이다. 베다는 신을 찬미하는 시가로서 지식, 지식의 덩어리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천민인 수드라계급에게는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연극은 신이 창조한 새로운 베다이며 계급을 초월하여 향유되는 것이라고 한다. 연극이 가진 신성성과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베다는 신을 찬미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길, 말하자면 신으로 가는 길이다. 즉, 연극은 신들의 계시수단이자 동시에 인간이 신의 관점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도의 세계관을 짚어 보아야 한다.


고대 인도의 세계관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의 삶은 신들의 손에 달려서 사람을 죽이든 자기네와 같은 경지로 끌어올리든 신들이 하기에 따라 달렸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1세기 경부터 달라졌다. '최고존재의 본질이 사람의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다'고 했다. 신을 믿어야 하지만 사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지만 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한다는 뜻이다. 신은 위대하지만 사람은 못난 죄인이라는 식의 망상을 버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해탈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초기 힌두교 사상의 핵심이다. 불교 또한 같은 사상을 발전시켜 자기자신이 부처임을 아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다.


조동일 교수는 신과 인간에 대한 인도문명권의 철학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과 인간이 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고는 연극작품에서 대립보다는 조화를, 파탄적 결말보다는 원만한 해결에 이르는 결말을 지향하는 것으로 구현되었다. 유럽문명권은 신과 인간이 결코 합치될 수 없고 이로 인해 인간이 불행해진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오이디푸스왕과 같은 비극이 탄생했지만, 인도의 경우 인간이 깨달음을 얻으면 신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어 사쿤탈라와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고 본다.


셋째, 공연을 방해하는 마귀들에게 브라흐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티야 베다는 너희 마귀들이나 우리 신들의 정감을 (한쪽편만 들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연극은 신, 마귀, 인간 세가지 세계의 감정을 나타내고 전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 유희, 이익, 화평, 웃음, 싸움, 애욕, 살육을 갖춘다. 무기력한 이에게는 대담성을, 자기가 용감하다고 여기는 이에게는 정열을, 생각이 모자라는 이에게는 분별을, 배우는 이에게는 지혜를 가져다 준다.'


연극은 도리, 이익, 화평, 웃음, 살육까지 갖춘다고 해서 선과 악 모두를 취급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그 가운데 특정한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는 이에게는 자기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자기와는 반대가 되는 모습을 알려주어 결핍을 보충하기도 한다고 했다. 연극의 양상은 무척 다양하지만 어느 것이든지 자기 발견과 자기 비판의 구실을 수행해서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라는 긍정론을 펴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심미효과와는 맥을 달리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이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켜 마음속에 쌓인 괴로움을 씻어내는 치료효과-카타르시스-를 가지는데 반해, 인도의 연극은 다양하고 풍부한 정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화를 지향하는 인도연극의 미학적 원리인 라사의 특징과 관련이 있는 바 뒤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할 것이다.


넷째, 최초의 공연이 신들의 승리를 기념하는 제의에서 올려졌으며 그 내용이 신과 마귀간의 갈등과 신의 승리를 주제로 한 것이라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연극공연이 제의적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신들에게 바치는 공물의 일종이라는 성격을 시사한다. 연극의 후원자는 야쟈만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공양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연극은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며 공연은 본질상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인도의 연극은 발생초기부터 신들의 거처로 간주되는 사원에 정착하여 공연되었다. 인도에서 사원은 티르타라고 불리우는 종교적 성지에 세워졌는데, 티르타는 통로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즉,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통로를 상징하는 말이며, 사원은 현세와 천상계를 연결하는 매개물이다. 신, 반신반인, 초인적 존재들, 영웅들을 찬미하는 연극에서 현세와 천상계가 공존하는 사원은 가장 적합한 장소로 간주되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원은 지역사회의 삶과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나티야 샤스트라>에는 기도문의 음송, 꽃과 과일의 공양, 신상의 진설과 숭배의식, 인드라신의 깃대에 대한 숭배의식, 성수단지를 깨뜨리는 의식 등 복잡한 공연예비절차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며 이를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또한 연극이 사원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음을 보여준다.



2. 라사


카타르시스가 고대 그리스 비극의 미학적 원리라면, 라사는 인도의 연극과 예술일반의 미학적 원리를 일컫는다고 말할 수 있다. 라사는 직역하면 수액, 정수, 향취, 맛, 풍미 등을 의미하며 미학적인 측면에서 정취, 정조, 심미적 체험 등을 뜻한다. 라사의 개념은 처음에는 연극에만 적용되었으나 후대로 오면서 시는 물론 그밖의 공연예술과 조형예술분야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적용되었고, 인도미학의 핵심적 원리로 정립되었다.


라사는 관객들을 '정신적으로 고양시키는 효과'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카타르시스가 관객이 연극관람을 통해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환기시킴으로써 정화를 체험하는 작용을 설명하는 용어라면, 라사는 관객이 연극관란을 통해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체험을 설명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관극 중에 관객들이 느끼는 어떤 바람직한 미감을 느끼고 그로 하여 관객이 감정과 이성이 모두 고양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을 라사와 라사의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나티야 샤스트라>에는 '라사를 불러일으키는데 연극의 본질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도연극의 주제와 이야기구조, 기법과 형상수단, 표현방법 등은 라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조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이 카타르시스를 위해  심각한 갈등, 발견과 급전, 비탄과 연설조의 대사 등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몰입을 유도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에 대해서는 뒷 부분에서 사쿤탈라를 예로 들어 인도연극의 특성과 라사와의 관계를 설명하며 더 보충한다.


라사의 발생은 배우와 관객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에 의존하는데, 때문에 관객의 자질이 중요한 요건으로 된다. 라사는 배우의 표현력과 감수성이 관객의 이해력 및 감수성과 조화된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데는 숙련된 요리사가 필요하지만 훌륭한 음식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예민한 감각을 지닌 미식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의 자질과 함께 관객의 자질은 매우 중요하며 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라사가 발생할 수 있게 된다.



3. 샤쿤탈라와 인도연극의 특성


인도의 대표적인 작품인 샤쿤탈라를 통해 인도연극의 특징들을 좀 더 고찰해본다.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언급이 자주 뒤따를 것이다. 사쿤탈라는 인도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칼라다사의 희곡으로 인도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두시안타왕은 사냥 나갔다가 산중에서 천녀의 딸 샤쿤탈라를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눈다. 왕은 기념으로 반지를 남기고 수도로 돌아온다. 그런데 샤쿤탈라가 사랑에 들뜬 탓에 그녀를 찾아온 수도사를 허술히 대접하여 주술에 걸린다. (인도에서 수도사는 신과 같은 성스러운 존재이며 이는 샤쿤탈라가 속세에 빠져 신성을 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후 왕의 아이를 임신한 샤쿤탈라가 왕을 찾아 왕도에 오나, 도중에서 반지를 잃어버리고 왕 또한 샤쿤탈라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는 슬픔에 잠겨 천계로 떠난다. 그로부터 몇년 후 물고기의 뱃속에서 반지가 발견되어 왕은 반지를 되찾고 기억이 되살아난다. 왕은 천계의 악마를 정벌하고 샤쿤탈라와 재회하고 신들의 축복을 받는다.


첫째, 오이디푸스왕과 같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마는 비극의 공식과는 전혀다른 전개를 가지고 있다. 우호적인 인물들간에 차질이 빚어져 시련을 겪다가 결국 시련을 이기고 조화를 이루어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것이다. 흔히 적대적인 인물간의 갈등을 극의 필수적 요소로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작품의 긴장과 흥미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호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생기는 차이, 실수로 비롯된 시련 등도 충분히 작품의 긴장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호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생기는 차질 때문에 조성된 작은 갈등을 극복하고, 부귀를 얻고 승리를 구가하는데 이르는 작품은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 한국에서도 예를 들자면 <구운몽>이 거기에 해당하는데, 구운몽도 라사의 원리를 구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고대 그리스 비극은 고귀한 혈통을 가진 주인공이 비극적 결말을 맞는 것을 특징으로 하지만, <나티야 샤스트라>는 숭고극이란 개념을 언급하며, '존경받는 유명인물인 그 주인공이 고귀한 혈통을 지닌 왕가에서 태어나서 일생동안 이룩한 위업을 신들과 관련된 일화를 곁들여서 다룬다.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하는 것과, 여인과 쾌락을 나눈 일, 그리고 (악한의 방해 같은) 사소한 사건을 곁들인다. 그런 사건을 몇개의 기본 장면 및 연결장면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다룬다'고 한다.


앞서도 지적했듯 이러한 구조를 사용하는 근저에는 '대결'보다는 조화를, '승패'보다는 '해결'하는 지향하는 사고가 깔려있으며, 라사를 구현하려는 목적과도 상통해있다.


둘째, 샤쿤탈라에는 시나 노래를 자주 삽입하여 느낌과 심리상태를 서정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한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이 사람의 손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 위해 노력한 반면, 인도의 조각에서는 손을 보고 연꽃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이디푸스왕처럼 투쟁이 패배에 이른 사건의 경과와 그 의미는 웅변적인 대사를 통해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어울리듯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은 암시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그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어울린다. 이렇게 서정적이고 암시적인 표현수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바로 다음에 언급될 관객의 태도를 형성하는데서도 영향을 주는데, 차분하고 세말하게 관찰해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밀한 의미의 영역을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와 노래들을 이용하여 시간과 공간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여기 한무리의 별들을 시종처럼 거느린 채 왕도를 비추는 등잔불 같은, 사랑스런 여인의 뺨처럼 새하얀 달이 떠오른다. 마치 메마른 진흙위로 번지는 우유처럼 그 하얀 빛줄기가 암흑속으로 흘러내린다.', '왕도는 적막하고 경비병들만이 야경을 돌고 있구나. 밤은 죄악으로 충만하니 유혹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지어다'와 같은 식이다. 배경을 전달하지만 재현이 목적이 아니라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행동과 사건의 사실적인 제시와 재현보다 라사의 환기를 중시하는 인도연극의 미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셋째, 관객에게도 주목해야 한다. <나티야 샤스트라>에서는 이상적인 관객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감각이 흐트러지지 않고, 순수하고 정직하며 좋고 나쁜 것을 가리는데 식견이 있으면서, 결점은 덮어두고 장점을 사랑하는 사람.' '즐거운 것을 보고 즐거움을, 슬픈 일에서 슬픔을, 분노할 일에서 분노를, 두려운 일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이상적인 관객이라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왕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어 깨우칠 것을 의도한다고 볼 수 있지만, 샤쿤탈라와 같은 연극은 관객은 이미 깨어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조용하게 완상하는 자세로 연극에서 보여주는 느낌을 충분히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좋다는 것이다.


특히 인도의 전통극들은 관객들에게 매우 친숙한 줄거리인데, 때문에 관객들은 줄거리와 사건 자체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기량 자체를 주목하고 그것이 주는 느낌자체를 즐기도록 한다. 카타르시스를 의도하는 연극은 관객에게 줄거리와 사건이 이미 노출된다면 그 효과가 떨어지지만 라사를 의도하는 인도연극은 전혀 다른 관극태도와 관극 초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왕과 같은 비극은 스토리와 사건, 등장인물이 관객을 압도해야 카타르시스에 이를 수 있다면, 샤쿤탈라는 등장인물과 관객이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라사에 이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도의 전통무용인 카타칼리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