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지
2011년 일지
-2011년 계획이 잘 안 세워지는 이유는 뭘까? 생활을 추스르지 못하는 건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마음의 문제. 모든 것이 지루해지고 허망해지는 요즈음. 왜?
-반드시 해야 할 일. 하면 좋지만 하지 않아도 될 일. 해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지만 하면 안 되는 일.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
-예술이론은 창조작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론가가 훌륭한 창작자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예술가는 창조작업에서 오직 자신의 창조성을 무기로 작업해야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론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 작업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다방면적이고 깊이있는 예술이론의 학습은 꼭 필요하다. 단, 목적과 효용이 어디에 있는지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창조작업의 관점이랄까? 객관의 포로가 되지도 말며, 주관의 늪에 빠져 들지도 말아야 한다. 객관과 주관의 통합. 주체.
-다만, 훌륭해져야 할 뿐이다.
-연기를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연기의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주체적 관점을 획득할 때, 연기가 성장한다.
-예술이 일상이 되었으면, 작업하는 것이, 무대에 서 있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이 되었으면.
-“창작기량을 향상시킨답시고 문장론이나 수사학이라든가 문예이론서적 따위를 일부러 읽은 적은 없다. 정평이 난 고전을 읽음으로써 시작의 도움 같은 것을 얻곤 한다. 그리고 나는 표현능력, 기발한 발상법, 완벽한 형식 따위가 문학작품을 생산해내는 기본적인 요인이라든가 시적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내는 유일한 길은 위대한 삶이다...김남주 평전 중 234p
-“나는 시라는 것을 내가 헤쳐가야 할 길을 위한 무기 이외의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다면 내 시에서 소위 서정성을 빼버리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썼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내가 제거하려고 했던 서정성은 소시민적 서정성, 자유주의적 서정성, 봉건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고리타분한 무당굿이라든가, 판소리 가락에 묻어나오는 골계적, 해학적, 한적 서정성이었습니다....김남주 평전 중 240p
-진보적 연극운동의 한계
1. 연극운동론이 없다. 사상, 이론, 방법, 정책, 노선이 없다.
2. 조직이 없다. 연극운동을 떠밀고 갈 추동력이 없다.
3. 진보적 연기론, 연출론 등 우리식 방법론에 대한 연구가 미약하며, 실천과 괴리되어 있다.
4. 작품의 보급과 유동이 제한적이고 소극적이다. 어설프게 제도권 흉내를 내는데 머물거나, 진보연극의 보급 유통에서의 전형, 모범이 미약하다.
5. 기록과 축적이 없어 역사화 되지 못한다. 있더라도 단위내에서 그치므로 전체를 조망하기 어렵다.
-진보적 연극운동의 과제
1. 연구하고 공부하는 기운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모임을 통해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3. 실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빨리 해내는 것이 좋다. 대본집의 경우가 그렇다.
4. 모범, 사례들이 공유되고, 정형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단합, 소통, 연대의식이 자라나야 한다. 단위본위주의에서 벗어나 전체를 조망하도록.
-사실, 그렇게 힘빠질 일은 아니다. 실망할 일도 아니다. 차라리 반성을 해야 한다. 치밀하고 세심하지 못했다. 준비가 부족한 일은 결국 벽에 부딪히게 된다. 게다가, 운명을 다루고,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더 많은 노력이, 더 치밀한 계획이, 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전방위적으로 접근할 것.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할 것.
-재판에 성실하게 임할 것. 이것은 또 하나의 투쟁.
-작품 000은, 자연주의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작가들의 자기치유, 실력향상 등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유주의적 예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창조는 직관과 영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논리적 사고는 여전히 준요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직관과 영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적 상상력은 논리적 사고에 의해 검증될 필요가 있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창조적 상상력에 의해 깨달았지만,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가 필요했다. 극작, 연기도 마찬가지다. 직관과 영감에 의지해 창조작업을 하되, 그것은 다시 논리적 사고에 의해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둘은 순차적 작업도 아니다. 상호교차하며, 시너지를 일으키는 작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직관과 영감이란 것조차도 학습되고 전파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노리적 해설, 논증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어쩌면, 현대사회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논리적 사고 대신, 형상적 사유가 발달하는 사회에서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현재는 불교의 禪 개념 등에서만 찾아볼 수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현대에 살고 있고, 창조와 지식을 전파하고 공유하는 매개로서의 논리적 사고는 여전히 유력한 것이다. 셋째, 스타니 슬랍스키가 말했듯, 영감은 이성적 노력에 의해서 불러들일 수 있다.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은, 양질 전화가 본질이 아닐까.
-공연을 많이 볼 수 없다면, 책과 영화라도 자주 보자. 양에 매몰되는 것을 피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면 2독하고, 3독하고, 주석을 달고, 리뷰까지 작성할 것.
-우리 모두의 과제
1. 공연 사업의 활성화
2. 자기 주도성을 높일 것
3. 교육, 훈련 프로그램의 도입 및 지속
4. 중장기 전망에 대한 사색, 도출
5. 모범, 성과의 공유. 일반화. 전파. 자기 적용
-나는 필요없는 고민, 호응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기성, 지속성을 가지는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할 것. 그러려면 첫째, 가치와 명분이 분명하고, 실익이 있는 내용으로 짜여져야 할 것이다. 둘째, 또한 책임있게 역할을 수행할 주체가 마련되어야 하고, 셋째, 날짜, 시간, 장소, 재정 등, 실무적 문제들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며, 넷째, 완강함이 필요하다. 부침이 있더라도 들뜨거나 흔들리는 법이 없어야 한다.
-연극동아리가 지속적으로 운영되려면, 대본확보와 연습커리큘럼이 관건이다. 단막극을 연습커리큘럼으로 삼는 것이 적합할 것. 또한 10-20분가량의 꽁트를 레파토리화하고, 3개 정도를 묶어서 정기공연으로 올리는 것. 대본의 경우, 직접 쓸 수 있도록. 생활속 에피소드, 수필 등을 수집하고 축적한 후, 이를 즉흥극 작업, 대본 작업을 통해 극화시킬 것. 상반기 동안 자생력을 갖추도록 도움을 줄 것.
-연휴. 구상, 결정, 계획하라.
-배우와 연출가의 의견이 다를 때가 종종 있다. A라는 배우는 전혀 마찰이 없다. 그는 연출의 의견에 그대로 따른다. 그러나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진짜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B라는 배우는 주견이 강해 종종 마찰을 일으킨다. 그런데, 사실 그는 연출의 의견을 숙고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고집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C라는 배우는 의견을 피력하지만, 결국 연출의 의견을 따른다. 그런데 불만스럽게, 툴툴대고, 뒷소리를 한다. 배우는 집단의 작업을 위해 헌신적으로 임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출만큼 전체 작품들에 대해 사색하고 책임지려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 단지 자신이 맡은 배역과 연기 자체에 머물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의 일부이며 그러므로 전체에 대한 사색 속에서, 그 기초위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생각의 탄생. 좀 더 일찍 읽었어야 하는 책. 빌려주기 싫은 책.
-나는 나의 예술을 기술을 이용해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예술은 결코 나의 사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기술은 화장과 같을 뿐이다. 때로 그것은 과도한 나머지 추악해 보이기도 한다. 투명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포장을 걷어버리고, 나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것. 또한 나의 사상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 다른 길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신기루일 것이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사상은 그렇게 내려가야 한다. 머릿속의 지식이 심장의 거센 고동으로 내려갔다 하더라도, 아직 사상으로 된 것은 아니다. 발이 움직일 때라야 비로소 사상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거리는 얼마나 멀고, 또 얼마나 가까운가?
-실천 속에서 해답을 얻는다는 말은 놀라운 진리다. 과학과 논리가 충분히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숱한 경험 속에서 체득되는 삶의 진리라 할 수 있다. 몸으로 생각하기!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큰일을 하겠다고 나선다. 이런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역사를 뒤흔들었던 인물 중 많은 이들은 그의 업적에 비해 가정생활, 친분관계 등은 보잘 것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물론 그들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수신과 제가, 치국과 평천하는 순차적으로 이룰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고 종합적으로 이뤄나가야 하는 것이다. 평천하를 이룬 자라도 수신은 끝까지 제기되는 과제다.
-000의 연기는 에너지가 넘친다, 연극적이다. 이런 평이 주를 이루는데, 나는 말하자면 취향이 다른 듯 하다. 불필요한 힘이 바짝 들어가 있는 듯 느껴지고, 과잉되어 보이며,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연극 연기는 그렇게 밖에 출로를 찾을 수 없는 것인가? 무대에서 에너지의 과잉으로 꽉 들어차있을 때, 나는 사색이 마비된다. 빈틈없이 꽉 짜여져 긴박하게 돌아갈 때, 나의 사고는 멈춰 버린다.
-연기전략의 부재라고 할까. 000는 초중반에 보여주었던 것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불안과 광기는 갈수록 심심해 보였다.
-연출의도는 잘 구현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초반의 성애 장면이다. 성적 욕망은 그들이 가진 야망의 표현으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000의 현대적인 가치는 이중성에 있다. 자신의 충성심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야심을 주체못하는. 현대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점잔을 빼면서도 욕망을 부리는.
-예술에서 보편성 획득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계급, 계층, 직업,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감동을 창조할 때, 예술은 진정한 자기 가치를 획득한다. 그러나 예술에서 보편성이란 오히려 구체적일 때 획득된다.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며 구체성을 삭제한다면, 오히려 보편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란 과학의 신비요, 원리다. 덧붙이자면, 관객, 즉 대중에 대한 믿음 또한 중요하다. 대중은 편협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다. 타인의 삶을 경청하고, 자신을 비추어보고,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예술을 대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려고 극장에 오는 것이다. 은행노동자 이야기라고 해서 금속 노동자가 공감할 수 없을까봐 걱정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어떤 소재를 잡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풀어냈느냐, 무엇이 심어져 있느냐가 문제다.
-아무것도 아니며, 동시에 모든 것인 사람.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느 곳에도 있는 사람.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사람.
-모든 것을 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듯 살자. 어디에나 있어도 어디에도 없는 듯 살자.
-포장하지 말자. 언제나 진실하자.
-최선을 다해 땀흘려 일하자. 필요한만큼만 가지자. 조금 일하고 필요이상으로 취하는 것은 죄악이다. 신자유주의를 내면화 하는 것을 경계하자.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위해 노동하는 것이다. 사실, 노동과 돈은 대가로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와, 자신을 위해 노동하는 것이며, 사회는 구성원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므로 일한 만큼 가져가는 것은 착취사회에서는 진보적인 생각이지만, 착취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후진적인 생각일 것이다.
-연극 작업에서 몇가지 문제.
작품-작업의 결과-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작업-과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의 연극작업에서 구현되어야 할 원칙, 방법론은 무엇인가?
1. 집단작업의 본질을 구현해야 한다. 집단적인 힘과 지혜는 연출가의 독재보다 위대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 대한 연구, 실천적 경험은 부족하다.
2. 배우들끼리의 작업. 배우들끼리의 작업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3. 리딩-블로킹-디테일이라는 단계는 적절한가? 만약, 그렇다면 각 단계의 목표는 무엇이고, 예술가들은 각기 단계에서 어떤 목표와 윤리를 가지고 임해야 하는가? 아니라면, 어떤 단계가 있는가?
4. 신체훈련은 과연 유효한가? 공연양식과 관련없이 행해지는 신체훈련은 체력단련에 지나지 않는다. 공연양식적 요구에 따른 신체훈련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문제.
5. 작품분석의 방법론은 무엇인가? 분석의 목표는? 아마도 작품의 본질, 주제를 이해하고, 이에 공감함으로써 집단의 창조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또는 주체적 입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일상에서는 연기를 하고, 무대에서만 진실한지도 모른다. 가면을 벗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이다.
-관객은, 배우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온다. 플롯은 널려 있고, 미술도 널려있다. 배우가 아니라면, 극장에 올 이유가 별로 없다. 또한 관객은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를 통해 감동받는다. “치열한 투쟁을 하는 인간의 형상”은 작품 속에도 있지만, 무대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에게도 찾을 수 있으며, 이것이 관객을 고양시킨다. 배우는 연기 기술자가 아니라, 스스로 투쟁하는 인간전형, 투사이자 전사이다.
-좋아서 하는 연극보다, 사회적 보람을 느끼는 연극을 하자. 대중에게 인정받기보다, 대중을 위한 연극을 하자.
-비록 나의 예술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나의 예술에 세상의 전형을 담아내려고 노력할 것. 변화하는 시대를 담아내기 위해 분투할 것. 시대를 선도하지 못할지라도, 시대의 선두에 있는 인간들의 삶과 투쟁을 그릴 것.
-아이디어. 전쟁이 필요해진 두 장군. 일단 전쟁을 일으키고, 협의. 처음에는 찔끔찔끔. 전쟁을 할 의사가 없으니까. 다음에는 한번씩 져주기. 상대에게 대승의 소식이 필요할 때, 크게 져주기. 그 와중에 죽어가는 사람들.
-끌어내주면 잘하는 배우는 보통 실력이다. 끌어내 주어도 안 되는 배우는 낮은 실력이다. 스스로 끌어내는 배우는 고수다.
-이것저것 널어놓은 채로 자꾸 꾸물대지 말라. 하나라도 시작하면, 그 다음은 연속적으로 따라 나올 것이다. 이만하면 충분히 생각했다. 막힌다면 그 때 다시 고민해봐도 늦지 않는다.
-정체성. 오랜 세월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파괴되거나, 변형된다면 이름이 같아도, 형태가 같아도 전혀 다른 것이 된다. 1. 창작, 연행집단. 2. 사회의 진보에 복무. 3. 코미디. 이 세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본질을 이룬다. 단원들은 모두 공히 위의 세가지를 염두에 두고,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사업은 위의 세기지에 입각해서 검토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50권의 책을 읽고, 50편의 영화를 보고, 50편의 글을 쓰고, 50편의 희곡을 읽을 것.
-바람은 차고 햇살은 따스하다. 내 마음 닮은 이 봄날 오후. 느릿느릿 그저 흘러간다. 그러니 다 괜찮을거다.
-변화된 조건이라면, 수세와 피동에 빠지지 말고 그 조건을 이용하여 타고 올라서도록 하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마음먹기 나름이고 작전력을 발휘하면 된다.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생활을 다 잡을 것. 계획과 자기점검에 충실하고, 시간을 아껴 쓸 것.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
-리어왕 연구글 구성. 명작 탄생의 비밀. 2. 비극의 원인. 3. 사회변혁의 가능성. 4. 비극의 효용가치. 5. 홍길동과 에드먼드. 6. 광대의 운명. 7. 신구의 갈등.
-예술의 기능. 인식교양적 기능 / 심미적 기능 / 오락적 기능.
인식교양적 기능. 예술은 객관세계 속에서 발견한 진실을 담아내는 것. 그러므로 인식교양적 기능을 가지게 됨. 통상, 교훈, 지식의 전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함. 작품의 풍격과 가치를 규정하는 첫 번째 요인으로 작용. 주제 사상적 측면. 사상성과 직접 관련됨. 예술가의 세계관이 결정적 작용. 진실을 발견하고 구분하는 눈. 안목. 사회적 의의성이 커다란 것일수록 높은 가치를 지님. 사회적 의의성-인간은 개인적 존재가 아닌 사회적 존재. 절대화 할 경우, 예술의 본성을 해치고 설교로 전락.
심미적 기능. 심미. 미와 추를 구분함. 부각함. 감정과 정서의 고양. 사상에 의해 규정됨. 사실주의는 미와 추를 모두 그려낸다. 미는 미로, 추는 추로. 형식, 예술적 완성도 등의 측면. 예술성과 직접 관련. 예술성이 높아야 심미적 기능이 높아짐. 인식교양적 기능과 상호작용. 절대화할 경우, 예술지상주의, 형식주의로 전락함. 관념적 경향. 예술의 본성에도 맞지 않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도 할 수 없음. 높은 사상성은 높은 예술성에 의해 빛을 발한다. 높은 예술성은 높은 사상성에 근원을 둔다. 이로써 예술은 사회발전과 인간발전의 무기가 된다.
오락적 기능. 쾌락적 기능과 유사. 대중성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 카타르시스 이론을 근거로 삼음. 관객의 반응 그 자체에만 집중한 편협한 견해. 반응은 내용과 형식에 대한 것. 허상이라고 볼 수 있음. 쾌감, 오락, 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 아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 감정정서의 고양이 주는 쾌감. 인식교양과 심미기능의 조화에 의해 구현되는 것. 폐해. 말초적으로 자극하는 기술 횡행. 반응 그 자체를 노리는 기술 횡행. 예술의 사회적 역할 무시. 인간 발전을 저해.
-극작 과정을 단순하게 공정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소재구하기 2. 종자, 전제, 초목표, 관통선, 의미, 메시지, 주제. 3. 이야기 줄거리 만들기. 4. 구성하기. 5. 대사쓰기. 6. 퇴고. 굳이 기술이 적용되는 부분을 찾자면 3-6까지다. 물론 그 과정조차 기술이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있으므로 어느정도는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문제는 1-2의 과정이다. 여기에는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없다. 그러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좋은 예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 과정에는 흔히, 자질, 안목, 관점, 발상 등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작용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천부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1-2의 과정이야말로 예술창조의 출발이며 핵심이고, 여기서 작용하는 능력는 가르치고 배울 수 없는 것들이기에, 예술적 능력은 타고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듯 할 수는 없지만, 우회하는 길은 있다. 관찰력, 상상력, 사고력 등은 발전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다. 직접 경험을 간접경험으로 보충할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기술에 관한 책과 이론은 넘치도록 많지만, 자질, 안목, 관점, 발상을 길러주는 책과 이론, 방법론은 너무나 부족하다. 생각의 탄생은 중대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점에서 소중한 책이다.
-기술보다 소양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기술에 매달린다.
-분석. 텍스트를 분할하는 것은 유용한 도구다. 분할하면 구조가 드러나고, 이를 통해 배우는 연기의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전체적인 구조가 드러나면, 배우는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연기할지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고, 이를 연결하여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분할을 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오래되고 흔한 방법은 프렌치 씬이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인물의 등퇴장을 기준으로 한다. 등장과 퇴장에 따라 극의 변화가 발생한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매우 객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맹점도 있는데, 그 전제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행동의 변화를 기준으로 나누는 방법도 있고, 심리변화를 기준으로 나눌 수도 있고, 분위기의 변화를 기준으로 할 수도 있다. 객관성은 떨어진다.
먼저 크게 분할하고, 좀 더 작게, 좀 더 작게 분할해 들어간다. 분할한 각 장면에 적절한 표현을 적어 둘 수 있다. 형용사를 적을 수도 있고 색깔을 표시할 수도 있다. 길고 지루한 서술형 표현보다는 직관적이고 간명한 표현을 쓰는 것이 유익하다. 직관적이고 간명한 표현을 쓰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비본질적인 것이 제거되고 본질적인 것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술형보다 영감을 자극하기 좋다. 게다가 서술형은 전략을 세우기 어렵게 만든다. 직관적이고 간명한 표현들로만 순서대로 모아보면 전략을 효과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분할을 하는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통일성, 관통선, 초목표를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 분할을 통해 연기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통일성, 관통선, 초목표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이라야 의미가 있다. 분석작업 후에는 반드시 재구성 작업을 통해 관통선을 구축해야 한다. 분석작업의 최종 목표는 각 장면의 연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관통선을 구축하는데까지 나가야 한다.
-연기 접근법은 다양하다. 원칙적인 것들도 있으나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배우의 특성에 따라 다르고, 텍스트의 특성에 따라 다르고, 연출의 특성에 따라 다르고, 공연제작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문제는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접근법도 도구들이다. 배우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 상황과 필요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나는 일면 모순적인 교육을 한다. 계산된 연기를 피하고 순간적, 측발적인 연기를 강조하지만, 반대로 분석작업을 통해 전략을 세울 것을 요구한다.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모순적인 것은 아니다. 두가지 방식은 결국은 배우를 통해 통합된다. 즉흥작업과 연구작업, 의외성과 개연성. 모순의 통합. 변증법이 연기가 창조되는 과정을 지배한다.
-명료하라, 분명하라는 요구는 정확히 얘기하면 본질적인 것을 부각하고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하라는 말이다. 이는 관객을 위해서고, 사실주의의 원칙이기도 하다. 여백으로 가득한 동양화를 떠올려보자. 모호하고 복잡한 것은 본질을 걷어쥐지 못했다는 것이다. 본질을 걷어지면, 단하나의 문장, 혹은 단 하나의 단어 등으로 간명하게 표현 가능해진다.
-왜 내가 현실과 한패가 되어 나를 조롱해야 한다는 말이냐?-전태일-
-르네상스. 중세의 몰락.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이동. 신고전주의. 질서, 이상화. 사실. 도덕성. 박진성. 본질. 유형화하는 경향. 낭만주의. 개성. 불합리. 열정. 개성. 실제를 미화, 왜곡하는 경향. 혁명운동 영향. 레미제라블. 진보적인 것만은 아님. 나폴레옹을 찬양. 허무주의. 욕정 등. 불건전한 경향도. 사실주의. 미와 추. 미는 미로, 추는 추로, 왜곡 반대. 주관이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 본질과 개성의 통일. 전형.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병폐 만연. 비판적 사실주의. 자연주의와는 달리 사회구조적 모순을 밝히고 비판적 입장에서 묘사. 감찰관. 보이체크 등. 자연주의. 다윈의 진화론 영향. 유전학적 요인 강조. 환경적 요인 강조. 인간은 유전과 환경에 의해 결정.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전망의 제시. 고리끼. 어머니.
-정말 꿈이었나. 해질녘 깜빡잠 같은 꿈. 철없는 아이처럼.
-강의요약. 예술은 삶을 반영한다. 또한 예술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삶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이것이 근본적 문제. 어떤 삶 : 인간 전형, 생활전형. 어떻게? 진실. 어떤 영향을 어떻게 미치는가? 내용, 크기. 전자가 강화되고 후자가 약화되면 예술은 존재의 의미가 흐려진다. 열심히 반영하지만 영향력 그 자체가 없다. 반영의 내용과 형식이 잘 못 되었거나, 사회구조적 문제거나. 전자가 약화되고 후자만 강화될 때, 삶은 위험해진다. 예술이 삶을 반영하지 못한다. 관념, 추상. 진실의 외면. 왜곡된 진실.
-연기 워크샵 개요. 1. 목표와 행동. 2. 몰입하기와 서사하기. 3. 캐릭터-가면, 동물. 4. 중립가면으로 표정의 제거. 몸연기의 극대화. 인간의 일반적, 보편적 속성 탐구. 표현. 5. 낭송훈련. 시낭송. 순간의 감정 극대화. 공명, 발음, 발성 훈련. 드라마틱한 구성. 구성력. 극적 구성력 강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누군가의 편안한 발이 되어주고 있다. 장애인 정책의 핵심은 자립이다.
-여성노동자. 이중의 굴레.
-소외효과. 소격효과. 낯설게 하기.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 특히 사실주의는 현실을 생동한 모습 그대로 그려낼 것을 요구. 그런데 평범한 현실은 재미가 없다? 예술은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뉴튼, 사과는 땅으로 떨어진다. 유레카! 욕조의 물이 넘치는 것. 부피 개념. 당연하게,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생활을 전혀 새롭게 깨닫는 것, 다르게 보여주는 것이 예술. 이것이 브레히트 서사극의 목표. 거리두기는 유용한 전략의 하나. 나와 역할. 배우의 연기에서도 적용가능. 중요한 것은 본질, 진실의 부각. 전형의 창조.
-사회에 대한 분석, 철학. 그 자체를 형상화하지 말 것. 예술은 삶과 인간을 형상. 분석과 철학은 그 바탕이지, 그 자체가 아니다. 필연적으로 도식에 빠지게 된다.
-애정없는 비판은 설사 그것이 진실이라 해도 욕설이나 다름없다.
-진실을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제거하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것은 대단한 용기와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한다.
-여전히 성급하고 말이 많다. 의미없는 만남은 경계해야 하지만, 신중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이른 아침. 몸은 무겁지만 의욕은 솟는다. 그러나 아직은 열정일 뿐. 그리움이 되지는 못했다. 오랜 기간과 정성이 필요할 것이다. 000 가는 길.
-내 얼굴에 묻은 때는 내 눈으로 볼 수 없다. 자신의 병집을 먼저 스스로 찾을 것. 이를 동료들 앞에서 밝히고 인정할 것. 당사자가 밝힌 문제를 중심으로 비판할 것. 근본적 문제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 공격하거나 반박하지 말 것.
-재판에 관성적인 태도를 깨고 주동적, 공격적 자세와 관점을 취할 것.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비본질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본질을 부각하는 섬세함을 가져야 한다.
-남을 다치게 하는 열정, 재능, 신념. 진정한 열정은 주변의 심장을 달구고, 진정한 재능은 주변을 기쁘게 하며, 진정한 신념은 주변을 믿고 따르게 할 뿐이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공로가 있어야 한다.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시간, 공간, 플롯을 압축하는 것은 불편한 만큼 강력한 극을 만들 수 있다.
-글쓰기, 읽기, 사색하기. 매일매일 빼놓지 말 것.. 하루이틀 손 놓으면 뇌가 더디게 돌아간다. 반대로,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뇌의 근육을 늘려라.
-판단하는 것은 쉽다. 어려운 것은 설득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판단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지 말자. 대개의 경우, 최선과 최악의 간극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최선의 선택이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과정, 소통, 공감이 최고의 결과를 만든다.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다.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조차 감당해야 할 몫이다.
-전진이 아니면 후퇴다. 적어도 사상정신상태의 측면에서, 현상유지란 없다. 그것은 후퇴의 다른 이름이다.
-사고하는 방법, 생각하는 법, 접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직관과 돈오의 창조적 힘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 대개 무시하고 있거나, 과정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워크샵의 주요목표는 연기력의 향상이다. 이것이 전제지만 1. 가장 주안점을 둘 것은 배우의 주체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상관점의 확립, 이론적 지식, 기술의 습득 등 모든 것이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2. 연기의 방법론을 세우는 것이다. 실제적인 방법론을 개발하고, 워크샵을 통해 검증하고, 체계적인 이론화까지 시도해야 한다. 방법론의 개발, 검증, 이론화 모두 1의 전제하에 있어야 한다. 3. 전문화를 경계하고 종합적, 전면적, 통섭적인 워크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철학, 과학, 역사 등과 연계시키고, 연극사, 극작, 연출, 예술론과 결부해야. 4. 팀별 처지와 조건, 전망과 스타일 등을 고려해야 한다. 공통적용할 것과 개별적용 할 것을 구분하고 준비해야.
-주체가 될 때 성과가 높다. 주체가 되려면, 무엇보다 목적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창조적인 방법론도 세울 수 있다. 훈련, 연습, 학습, 사업 등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중간에 목적을 상실하는 경우도 흔하므로 수시로 점검되어야 한다. 목적을 상실하면 관성에 빠지거나, 꼭두각시가 된다. 가르칠 때도 목적에 대해 수시로 인식시키고 강조해야 한다.
-1. 강연. 사실주의의 진실 개념. 2. 연기훈련. 관찰과 집중. 3. 극작수업. 검토, 돌려읽기. 소리내어. 숙제. 인물 부각하기. 성격화하기. 새로운 장면 추가. 분량을 늘리기. 4. 장면. 에너지의 고양.
-너무 많은 일을 벌려놓고 있는 것 아닌가. 하나라도 실속있게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쫓기는 느낌이다. 늘 계획하고, 점검하고, 무엇보다 안정감을 가지고 일하자.
-비판은 첫째, 애정에 기초해야 한다.(출발) 둘째, 현상이 아니라 근원을 짚어야 한다.(내용) 셋째, 호통, 비난, 모호성, 관념, 추상 등을 경계하고, 정확하고 따뜻해야 한다.(형식)
-술자리를 피하고, 모임을 집중하고, 일할 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것. 체력관리, 가정생활에 신경 쓸 것. 일주일 중 하루는 비워두고 예비로 남겨둘 것. 어렵지만, 파이팅 할 것!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거냐? 열심히만 하고 있는 건 아니냐?
-배우는 관객에게 극의 의미를 드러내야 한다. 또한 배우는 관객에게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열정, 투지, 정신력, 육체, 헌신, 신념 등이 배우 그 자체에서 흘러나올 때, 그것이 관객의 가슴에 가닿을 때 연기란 위대한 예술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로토프스키가 말한 승강기라는 개념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깊은 뜻을 간명하게 표현할 것. 창작, 연출, 연기, 강의, 연구, 사업, 대화 등, 모든 부분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틀을 깨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기존의 것이 자유로운 창조를 구속한다. 무엇을 강화하고 무엇을 혁신할 것인지 판단하고 찾아내기란 어렵다. 연극에서 대본이란, 정말로 보조적인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아니, 그렇게 여겨야하는 것 아닐까?
-강의할 때, 객관성의 유혹을 경계하자. 나는 학자, 연구자가 아니라 실천가이며 나의 신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강연은 공연이며, 강연하는 나는 배우다. 자기 신념도 없는 배우가 어떤 연기를 창조할 수 있겠는가. 또한 강연은 지식의 전달뿐만이 아니라 정서적 감화력도 함께 주게 마련이다. 감동적인 강연을 해야지, 메마르고 건조한 강연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보약은 입에 쓰다. 아프고 쓰린 만큼 스스로를 잘 돌이켜 보고, 혁신하기 위해 노력하자.
-내 스스로에 대한 검토. / 모든 것은 사상관점 사업방법과 작풍의 문제. 처세의 변화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 / 애정을 가지고 대하며, 섣부른 비판과 지적을 삼가고, 경솔함을 경계하고, 말과 행동에 신중함을 기하고, 되도록 말을 삼갈 것. / 조급성은 신념이 약하기 때문이다. / 나는 종종 결과에 치우쳐 있다. /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며,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 일감은 객관에서 찾고 원인은 주체에게서 찾을 것. / 인내성, 인내성, 인내성. 과정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어떠한 결과도 겸허히 수용하고 다음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 것 / 온정이 아니라 인정을 발휘할 것 / 원칙을 고수하되 구현은 세련되게 할 것 / 오직 주체를 세울 것 /
-예술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며, 사회적 보람을 찾고 있다. 감사하자. 그리고 나의 역할, 나의 소명을 찾자.
-차근차근 준비하고, 항상 계획하고 검토하면, 마음의 평정과 긴장을 조화롭게 한다면, 쫓기는게 아니라 끌고 갈 수 있다. 문제는 가능한 예비를 찾아내고 동원하는데 달려있다. 후퇴하지 말고 전진하자.
-뱃사공처럼, 그 오랜 시간을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후배들이 곳곳에 있었다. 대견함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잊지 말 것.
-다른 강연에 비해 예술강연은 객관성, 설득력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삶과 정신에 관한 것이므로 수치화, 통계화한 자료를 제시할 수도 없으며, 그것은 총체화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엄청난 발전을 시작했다. 자유로워진 두 손은 보다 정교한 노동을 하게 됐고, 이는 뇌의 발달로 이어졌다. 발에게 감사해야 한다. 발은 인간의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
-2012년 이후는 어떤 세상이 올 것인가?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시대의 격변과 승리의 신념 기타 등등 그 모든 것은, 나의 역할을 찾았을 때라야 비로소 의미있는 것.
-내 작품이 아니라 집단의 작품이 되게 하라. 집단의 작품에서 관객의 작품이 되게 하라. 나아가 시대의 작품이 되게 하라. 그러기 위해 나를 버리고 주체가 되라.
-생활비. 3-4개월은 버틸 수 있다. 남은 기간은 어떻게 할까? 약속은 약속이니까.
-수치심은 공동체가 살아있을 때 기능한다. 공동체가 무너지면 수치심-사회적인 것이다-도 사라진다.
-사람의 성격, 재능, 사상 등에 대해 쉽게 판단하거나 유형화시키려 들어서는 안 된다. 열 길 물속보다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몇 차례 본 것으로 판단하면 편견을 가지게 된다. 편견의 힘은 너무 강력해서 사실조차 외곡해서 보여준다. 다른 것을 분류하고 같은 것을 묶는 것은 유용한 사고방식이지만, 그 대상이 사람일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된다.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를 보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때라야 비로소 내 사람이 된다.
-할일이 많아짐에 따라 독서와 공부에 게을러지고 있다. 인풋이 없는데 아웃풋이 있을리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색이 얕아지고, 메모에는 깊이가 없다. 필력도 딸리고, 담화도 내용이 없어진다. 일에 밀려서 독서와 공부를 소홀히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부끄럽게 여기고 반성해야 한다. 깊이 없는 글은 자원의 낭비밖에 안 되고, 쓸데없는 말은 괜한 소란에 지나지 않는다.
-뽀뽀라고 하면 볼을 내밀던 태은이가, 이제 입술을 내민다. 먼저 해줄 때도 있고. 태영이는 눈을 한 쪽으로 돌렸는데, 태은이는 똑바로 쳐다본다. 내년부터는 천사들을 자주 데리고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태영이 초등학교 가기 전에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줘야지.
-장애란 불가능이 아니라 불편함일 뿐이다. 문제는 장애라는 불편함을 불가능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구조적 모순에 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지 불편해 질 수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당신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어쩌면 내겐, 극단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샌가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 생각은, 소유욕, 혹은 답답함, 원풀이 등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연극운동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인가? 전자였든, 후자였든 두렵고 동시에 매력적인 일이다.
-태영아.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할 때는 단순하게 생각하렴.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렴. “나라고 못할게 뭐야.” 그러면, 대부분 해결 할 수 있단다. 잘 하지는 못해도, 남들만큼은 할 수 있고, 남들만큼 못해도,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된단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게 된단다.
-소외효과. 거리두기. 낯설게 하기. 이것은 예술의 기본원리로서 대상-인간, 삶-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브레히트가 이론화했으나, 브레히트가 발명한 것은 아니며, 예술의 오래되고 기본적인 원리이다. 사실주의에서 전형이라는 개념, 연기에서 인상깊은 행동이라는 개념 등과 같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문장은 이 원리의 구현과 효과에 대해 정확시 설명해준다. 사랑한다는 것은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럼으로써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는 것. 문제는 예술가가 대상을 새롭게, 다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깊게 들여다 보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주체성’을 견지하는 것이다. 남의 시선과 사고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목과 실천적 노력으로 재발견해 낸 것만이 가치있는 것이 된다.
-전형이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특별하고 희한한 것”도 아니며, 오직 “본질을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보편성과 개성을 동시에 획득한다.
-두 작품 이상을 쓰고 있으라. 하나가 막히면, 다른 하나를 쓰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은 6개월. 내게는 세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열심히 활동할 것. 둘째, 잘 결속 지을 것. 셋째, 준비할 것. 무엇하나 쉽지 않을테고, 무엇하나 놓칠 수 없다. 중심고리를 잡아라.
-자존심이 강한 것은 방해가 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본인 스스로의 깨달음과 본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강압하고, 몰아붙이고, 창피를 주는 방법은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무너뜨린다. 일을 더 어렵게 만들고, 상대를 곤란에 빠뜨릴 뿐이다. 강압으로 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특히 사람에 관한 일은.
-불철저함. 모순에 빠져들기. 비겁함. 오락가락. 이것들은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매력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매력이 없다. 흔들림을 극복하는데서 인간의 위대함이 발견된다. 흔들리고 아파하자. 부끄러울 것 없다. 나는 인간이다.
-드라큘라의 서사방식은 콜라쥬적이다. 각각 인물들의 일기, 편지, 비망록 등의 형식들로 서사된다.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점도 있고, 논리적 비약도 있지만 꽤 독특하고 효과적인 방식이다. 특히, 짬날 때마다 작품을 쓰기에는 좋다. 그런데, 드라큘라, 지킬앤하이드, 프랑켄슈타인 등의 작품들이 동시대에 출현한 이유는 뭘까?
-000은 현장과 엄청난 친화력을 기반으로 하는 노래를 한다. 가사, 몸짓, 무대매너. 그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그러하다.
-그러고보면 가장 중요한 일은 재정비다. 정신없이 일을 해치우는 동안 희생시킨 것들을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번주에는 특히 할 일이 많다. 잘 안풀리는 일들이 겹쳐있다. 이럴 때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게을러지고 나태해진다. 정신 바짝 차리고 치열하게 살자.
-000 인터뷰를 잘 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평이한 수준에 그쳤다. 사실 어떻게 하는게 잘 해드리는 건지 잘 모르겠다.
-대본초고를 완료했다. 일을 끝낸 홀가분함과,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대본을 쓴 것에 대한 기쁨. 참 좋다. 이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000.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에서 문득문득 베어나오는 열정. 그렇게 발휘되는 열정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그에 비해 나는 과시하고, 포장하며, 거만하다. 그것은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고, 그저 혼자만 불태우는 열정, 아니 자기도취일 뿐이다.
-사람은 매일 꿈을 꾼다. 꿈을 꾸지 않는 날에도, 나는 꿈을 꾸었다. 단지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해 두고 있다고 한다. 의식의 차원에서 불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나는 매일 꿈을 꾸고 있고, 그 꿈은 뇌의 어느 차원에 저장되어 있다. 잊어버린 꿈을 불러내라. 꿈을 꾸고, 꿈을 살아라.
-한 인간의 어깨 위에는 사회와, 역사의 모순과 질곡이 얹혀져 있다. 이를 형상으로 밝혀 내는 것이 예술가의 할 일이다.
-지도자가 아닌 연출가는 기술자, 장사꾼, 중개업자, 마름, 독재자 밖에 되지 못한다.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전문가”는 협업을 할 수 없다. 전문성은 총체성에 기반할 때라야 비로소 빛을 낼 수 있다.
-친구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존경받는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그리고 다시 친구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이 순서가 뒤섞이거나, 무엇하나 빠지는 일 없기를.
-의사라는 인물을 상상에서만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취재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상상력이 닿을 수 없었을 것. 상상은 실제라는 나무 위에서 날개를 편다.
-4계절 프로젝트 사업이 좌초되거나, 기본목표를 달성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관건은 3차를 해내는데 달려있다. 3차의 성사여부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시간이 없다.
-큰 뜻을 품고, 구체적인 실천을 하자. 반대의 경우는, 부끄러운 짓이다.
-예술은 투쟁하는 인간을 그리는 것이다. 운명에 맞서거나, 신과 맞서거나, 어떤 힘, 사회구조와 제도에 맞서거나, 편견에 맞서거나. 그것들과 투쟁하는 인간을 다룬다. 인간속에 내재된 위대성이 발현되는 그 순간이야 말로 극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플롯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무대에 선 배우의 존재로도 드러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감동을 일으킨다.
-창작과 연습, 공연과정에서 샘솟는 열정. 불길. 눈물이 소시민적인 그것이 아니길. 개인주의, 이기주의, 공명심 등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그것으로 오염되지 않기를. 만약 그렇다고 할지라도 빨리 깨닫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모든 것이 언발에 오줌누기 같을 때, 내 자신이 작고 초라하고, 무능력하다고 느껴질 때, 아무런 성과도 기대하지 못하며, 잘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 전태일의 심정이 그런 것이었을까?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이 그런 걸까? 밤은 자꾸 깊어가는데, 마음은 어지럽기만 하다. 도피성 잠에 빠져들고 싶은 밤.
-최소한 내 경우에는 풍자, 비판, 폭로는 창작적 희열을 그리 크게 주지 못한다. 또한, 슬픔, 애잔함 등이 아니라 인간의 위대성이 발휘되는 그 순간-그것은 꼭 엄청난 사건에 결연하게 맞서는 그런 것만은 아니며,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순간을 포함한다-에 커다란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내 이야기는 실제 사례나, 인물에 뿌리를 더 깊이 박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픽션을 가하는 것에도 원칙과 기준을 세울 수 있을 듯 하다. 극적 재미를 위해 픽션을 가할 때, 나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책과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본질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예술적으로 정당한 것이다.
-방향을 잃은 분노는 주변과 내 자신을 다치게 할 뿐이다. 그렇다고 그저 참으면 홧병이 될 뿐이지만, 사색하고 검토한다면 내 자신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운동이란,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머무르는 운동은 쉽게 변질되고 결국 파탄에 이른다. 학습과 토론, 자기검토, 상호비판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는 경험주의, 보신주의, 이기주의 등이 파고든다. 건강했던 사람도 나중에는 수치를 모르게 된다.
-생계 걱정이 없다면, 노동의 댓가를 착취당하지 않는다면, 공평한 분배로 모두가 충분히 누릴 수 있다면, 하이에나처럼 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가장 가치있는 것은 사회적 명예와 보람이 될 것이고, 사람들은 위대함을 발휘할 것이다. 곳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수많은 위인들이 탄생할 것이다.
-000의 목소리. 노래 참 좋다. 아프고, 슬프지만 그 속에 깃든 생명력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라이브. 거기다가 육성으로.
-진보를 표방하는 것이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진보를 프리미엄으로 이용하려 드는 것은 저열하고 비겁하다. 진보는 진보일 뿐, 프리미엄도 아니고, 차별화 전략 같은 것도 아니고, 괜찮은 포장도 아니며, 예술적 게으름의 방패막이도 아니다. 메피스토의 주인공 핸드릭 회프겐을 기억하라.
-남들이 어떻게 보든간에 나는 내가 어떤 일을 왜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면 된다. 평가는 역사와 대중이 하는 것이고, 나는 내 할 일을, 그것도 최선을 다하면 그 뿐이다. 비록 작고 사소한 일을 할 지언정, 대의를 잊지 말고, 욕망에 포로되지 말며, 꿋꿋이 걸어가면 된다. 힘내라. 나는 나를 응원한다.
-거의 모든 사업에서, 완강하고 지속적으로 전개하려는 의지가 없다. 치타처럼 빠르기만 할 뿐, 장기적, 정기적, 지속적인 맛이 없다. 일을 통해 혁신하자.
-연극이란 무엇인가? 연극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근본적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몇 번째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대답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평생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범위를 축소시키는 위험을 감수하고, 질문을 새롭게 하자. 나는 어떤 연극을 원하는가? 할 수 있는 것, 자신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연극을 원하는가?
-내년을 준비한다는 것이 이제야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올해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비록 내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때로는 남의 장단에 춤을 추겠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조금 답답할 뿐이다.
-연극은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드러내고자 해서는 안 된다. 멋있게 보이려고, 잘 하는 척 하려고, 칭찬을 받으려고 등등을 위해 웃기고 울리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웃기고 울리기 위해 오히려 “나”를 버려야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을 위한 연극을 하라.
-사소한 목적으로 연극을 만들지 말자. 연극을 만들 때, 고상한 이상과, 역사와 사회에 대한 소명, 진실함을 갖추자. 그것이야말로 수단으로서의 연극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혹시 너무 이상주의적인 생각인가? 그런 이상없이 살면 인생과 연극은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뱃사공조차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 낮은 일을 하고, 드러나지 않으려고 하라. 혹시 그것은 너무 현실적이지 못한 생각인가? 전태일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렇다고 내가 왜 현실과 한 패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냐?”
-뜻을 세우고, 동지를 찾아라. 그의 제갈공명이 되든, 제갈공명을 만난 유비가 되든. 어느쪽이든 좋다.
-000, 000, 000. 세 작품 모두 인간과 삶을 그려낸다. 000은 착취-피착취, 지배자-피지배자 관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본질과 전형을 그리고 있지는 못하다. 000은 극히 자연주의적인 작품이다. 유전, 환경, 이로써 반복되는 운명에 무기력한 인간상을 그려낸다. 그것도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000은 수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지만, 주제사상의 깊이는 얕다. 세작품 모두 공통적인 것은 “인간문제의 깊이”에 관한 것이다.
-2주를 허투루 보낸 느낌. 바쁘게 살았지만, 보람있게 살지는 못한 탓이다.
-000공연이 무산되었다. 이해되지만 동의할 수 없는 과정에 의해서. 고골의 소설이었나? 체홉이었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모욕을 사회가 받은 모욕으로 여긴다.” 무산의 원인은 몇가지다. 첫째, 감정적이 되어 중심을 잃은 것. 둘째, 준비와 사업에 게을렀던 것. 셋째, 과잉된 자의식, 자존심. 넷째, 주체가 되지 못한채 결정된 것이니 그냥 따르는 우리들.
-하청받듯 작업하는 예술활동은 반드시, 분명히, 결단코 혁신되어야 한다. 대안을 실현해갈 때, 혁신은 검증되고 속도가 붙는다. 한탄은 접어두고, 길을 찾아 나서라.
-배우의 텍스트 해석은 머릿속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몸의 실연이 필요하다. 분석과 해석, 상상을 위한 몸의 실연과정에서는 마구 열심히 하면 안 된다. 서사적 관점을 가지고, 슬렁슬렁 해야 한다. 그래야 사고가 가능하다. 단, 슬렁슬렁은 몸에 붙기 쉽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이번에 있었던 일을 반면 교사로 삼아라.
-부당함에 당당하게 저항하는 법을 가르쳐라. 온순한 아이로 키울 것이 아니라 당당한 아이로 키워라. 복종하는 아이가 아니라 정당하게 저항할 줄 아은 아이로 키워라.
-윤리는 결벽증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결벽증에 기초한 윤리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좌절감을 주고, 자기 멸시를 낳고, 패배감에 빠뜨린다. 극과 극이 통하듯 극단적인 결벽증은 오히려 사람을 망가뜨리고 만다. 윤리는 인간애에 기초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기초한 윤리만이 오직 의미있는 것이다. 어쩌면 윤리는 용서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다. 타인을 대할 때도 나 자신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고,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라.
-연습 후 뒷풀이. 뭐니뭐니해도 사람은 보람있게 살아야 사는 맛이 있다.
-배가 고프다. 주책없이. 이소선 어머니 노제 중에.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열린 문을 찾아라. 용감하게 걸어 나가라.
-잘 되면 자기 덕, 잘 못 되면 남 탓하는 건 소인배들이나 할 짓이다. 그것이 설령 정말로 남 탓이라 해도 자기 탓으로 돌릴 줄 알아야 한다.
-이젠 나도 내 연기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연극이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연기에 있어서 내적 진실성, 자감을 제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배우예술의 본질적 속성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진실로 느끼지 못한다면 연기란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 내적 진실성, 자감은 공감을 말한다. 인간은 타인의 정신세계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로써 예술의 창조와 감상이 가능한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 1단계는 나 자신을 추스리는 것, 2단계는 기초를 놓는 것. 3단계는 동지를 찾는 것.
-대단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은 많다. 가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천재들이 세상에 널리고 널려 이젠 천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러니 천재적 예술가는 별로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그러나 혁명적 예술가들은 시대를 초월한 특별함을 가진다. 천재적 예술가는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 하지만, 혁명적 예술가는 민중의 행복을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틈날 때 마다 어슬렁 어슬렁 돌아 다니다 보면 그 분이 오실지도 모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전혀 허황한 말은 아니다.
-사람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말로 드러나는 것은 좀처럼 믿기 어렵다. 그가 해낸 일, 실력이나 업적, 성과로 드러나는 것은 좀 낫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운이 작용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그의 존재 자체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결단코 사사로운 삶은 거부하라.
-밤은 연인을 닮았다. 들뜨면서도 편안한. 그 시간, 너무 짧게 느껴지는. 떠나보내기 싫어 붙잡고만 싶은.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선배도 사람이니 항상 멋질 순 없다만, 지가 괴롭다고 마음 괴로운 후배를 외면해서야 되겠냐? 어깨 툭 치고 씩 웃어줄 수는 있잖아.
-포기하는 게 늘어난다. 하나씩 둘씩. 위험신호.
-예쁜 신발보다 편한 신발이 좋은 건 늙었다는 증거. 예쁘고 편한 신발이 좋으니 아직 내 안의 나는 젊다는 증거. 파이팅이닷!
-할 일 많다. 멍청하게 그러고 있을 시간이 어닸냐? 세상 만사가 마음에 안 들어도 딱 하나 마음 둘 건 있는 법이다. 그러니 또 다시 치열해라.
-스텦들의 평가가 오히려 배우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객관적, 과학적이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배우로 하여금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될 수록 말을 삼가하고, 추상적인 평가는 하지말고, 구체적이고 실속있는 조치를 취할 것.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뒹굴거리기. 후회와 쾌감의 변증법적 통일.
-유명한 작가들 중 몇몇은 사실은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훌륭한 삶을 산 사람치고 독서광이 아닌 사람이 없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일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위해서다.
-우린 왜 "진짜"가 아니라 "진짜 같은 "에 열광하는가?
-결벽증적인 원칙성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존경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데 불과하다. 결벽증은 곧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거나 두렵게 만든다. 너무 맑은 물에 고기가 살지 않는 것과 같다. 적당히 때도 묻고 실수도 하고 그렇게 좀 인간적이어야 많은 사람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무엇보다 결벽증의 위험성은 결국 자기자신을 망친다는데 있다.
-연기의 전제는 자신감이다. 잘하고 못하고 해석의 좋고 나쁘고는 둘째문제다. 대사와 행동 모두가 스스로에게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연기하기 전에는 갈등하고 번민하더라도 연기하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있게 해내야 한다. 무대는 자신없는 연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오늘은 꽤 잘 보낸 편이다. 아침엔 밥을 했고 세탁기를 돌렸고 빨래를 걷었고 거실정리를 했고 아직 잠든 아이들의 뺨에 뽀뽀를 했다. 오전에 있었던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냈고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연극작업을 했다. 쉬는 시간에는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이동중에는 책을 읽고 자료를 수집했으며 틈틈히 메모를 했다. 이제 집에 도착하면 새벽1시. 눈이 아프고 몸이 노곤하지만 라디오 대본을 써야한다. 새벽 3시가 넘어가면 잠든 천사들의 발을 손에 쥐고 잠을 청할 거다.
-강호동도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구질구질하게 변명하거나 꼼수를 부리지 않고 깨끗하게 사과하고 물러났다. 남자답게 잘 처신했다. 그러나 곽노현의 경우는 다르다. 할 말 다 하고 시비를 가리고 끝까지 싸우면서 버텨야 한다.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문제이기 깨문이다. 사람은 언제든 위기에 몰릴 수 있지만 문제의 본질에 따라 깨끗이 물러나야 할 때가 있고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끝까지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강호동의 위기는 전자의 경우고 곽노현의 위기는 후자의 경우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위기를 잘 파악하고 옳은 선택을 했다. 과거의 어느 때 나는 이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잘 할 거란 자신도 없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이번에도 실수한 건 아닌가. 협력연출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많이 개입해서 연출의 역할을 뺏은 것은 아닌가. 배우들의 근원적 문제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장면 만들기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몰아붙이기만 한 것은 아닌가. 내 지도력 부족은 무시하고 내심 연기력 부족만 답답해 했던 것은 아닌가. 큰 방향만 냅다 지르고 구체적인 실현까지 책임지지 않은 것은 아닌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혁신하려 들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 것은 아닌가.
-각 5년을 정리한다면. 94년~98년. 사람맛에 눈뜨고 연극에 눈뜬 기간. 98년~02년. 세계관 예술관의 기초를 쌓은 기간. 03년~07년. 상승으로 시작해 파멸로 끝난 기간. 07년~11년. 경험과 연구, 새로운 모색의 기간. 12년~16년. 인생항로의 전환을 일으키는 기간.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상상과 실재가 다르고 구상과 구현이 다르고 글과 말은 다르고 대본과 연극이 다르다. 때로는 간극이 너무 커서 두렵기조차하다. 지금이 바로 그 때. 시간도 부족하지만 투지를 발휘하기엔 당장 너무 지쳐있다. 그래도 힘내라. 날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연출. 끌어내기.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에너지, 진실성과 기술, 정서와 호흡, 리듬과 템포, 적극성과 창발성. 모든 배우들이 스스로 끌어낼 줄 알고 자동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옳은 지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배우들을 탓하지 말고 부족한 지도력을 반성하라.
-연기창조작업에서 반대할 것. 평범한 해석과 표현. 진부한 해석과 표현. 모호한 해석과 표현. 소극적인 해석과 표현. 과잉된 해석과 표현. 내용을 떠난 형식. 형식을 갖추지 못한 내용. 기술 없는 진정성. 진정성 없는 기술. 기계적이고 무의미한 반복연습. 늘어지고 지루한 연습.
-대본은 열쇠이자 구속이다. 대본은 핵심을 파악하는 열쇠로만 사용해야 한다. 비밀은 거리두기에 있다. 거리두기에 실패할 경우 구속되고 만다.
-거의 항상 그렇듯 좀 더 밀어부쳐야 한다. 대본을 쓰거나 장면을 만들 때,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을 때 거기서 멈추면 안된다. 그 때, 대개는 골조에 살을 얼기설기 입힌 것에 불과하다. 조금만 찬찬히 또 냉정하게 검토해보면-가장 좋은 방법은 전후장면들까지 이어서 실연해보는 것이다- 대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관객과 배우의 정서가 무르익기도 전에 서둘러 끝내고 있다는 것을. 강풀의 모범 헬로우 고스트의 모범을 기억하라.
-가족의 아이러니.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가족을 이루지만, 정작 가족이 된 그 순간부터 가족의 생계 아니 생존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있게 된다.
-동네극장의 또다른 의미와 역할. 정당과 전선, 생활과 정치가 만날 수 있는 곳. 그것이 상층이나 중앙 혹은 큰 규모의 지역이 아닌 소규모의 지역에서. 각자 정당은 다르지만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만나고 교류하고 교감할 수 있는 공간. 그들뿐만 아니라 중도층까지도 쉽게 인입할 수 있는 품이 넓은 곳. 광장이 없는 대한민국의 도시마을에서 광장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곳. 극장.
-늦은 반성이지만 서둘렀어야 했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오늘 결정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결함과 과오 자존심 패배감 옹졸함 소극성 자포자기 책임방기 기타등등. 무엇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지난 5년간 너무 게을렀다. 답은 찾았으나 곧은 길을 걷기보다 우회하려 했고 그러다 결국 첫발도 떼지 못한 꼴이 되버힌 건 아닌지. 아니 지난 5년간의 모든 것을 회의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후회와 반성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소위 몰입이란 양날의 칼이다. 몰입의 기술은 긴장을 제거하고 진실성을 강화할 수 있다. 반면 몰입의 기술은 관객을 소외시키고 폐쇄적으로 만들 수 있다.
-강에 비친 달은 달의 모습을 가졌을 뿐 실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달의 허상에 현혹되어 강물에 뛰어든다면 빠져 죽을 뿐이다. 무척 어리석어 보이지만 생활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허상은 그것이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상이 있으므로 실체로 오인하기 쉽기 때문이다.
-피해야 할 작업을 하고 있다. 시간에 쫓기며 작업하기. 내 신념과 타협하며 작업하기. 스트레스와 피로 속에서 작업하기. 기존의 것을 변형 재탕 편집하기.
-짧은 작업기간이라고 배우의 발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동시에 A부터 Z까지 염두에 둘 수도 없다. 아무리 아쉬워도 배우의 현재 수준을 기초로 하고 또한 반드시 발전시켜야 할 부분을 찍어내고 이에 집중하라. 물론 배우는 전체 연기에서 놓아도 되는 부분은 하나도 없겠지만 연출가는 성과를 내야하는 곳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짚어주어야 한다.
-000이 남들과 다른 점. 기교가 진정성을 위해 숨어서 역할한다. 다른 이들은 기교 자체를 과시한다.
-내 작품의 이야기 구조는 이렇다. 먼저 실제로 있었거나 있을법한 형상, 그것도 전형적인 형상을 다룬다. 마지막은 실제로 있거나 있을 수도 있지만 보편적이지 않은 형상 그러니까 있었으면 하는 형상을 다룬다. 그래서 어떤 관객들에게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이상주의적이며 교과서적이고 심지어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현실적이고 싶지 않다. 작품을 냉정한 현실주의자의 비위에 맞춰 쓰고 싶지는 않다. 작품에 대한 나의 관점이 그렇다. 현실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왜 문 앞에서 그러고 있냐?
-인류는 어떻게 철을 알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까?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본과 부가 바뀌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무리 혹할만한 제안이라도. 그러니 고사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 내가 본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과학적, 인문학적 연극. 연극적인 것은 홀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과학에 기초해야한다. 철학과 인문학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연극은 오락이자 동시에 탐구이며 토론이기 때문이다.
-000를 작가로 만든 것들. 불운했던 어린 시절, 독학, 생물학의 전공, 건강의 악화, 실직, 배타적 열중, 문학과 역사의 탐독, 수없는 수정과 퇴고작업, 경험의 반영, 과학의 접목, 예술지상주의의 거부, 사회정치적 실천. 그리고 당대의 역사.
-슬픔을 연기하는 법. 슬픔에 머물러 있으려 하면 저급하고 인물을 왜곡한다. 그건 슬픔이란 감정에 탐닉하고 있는 자의 것이다. 그런 사람을 보고 슬프진 않다. 슬픈 상황에서 슬픔을 극복하려고, 탈출하려고, 전환하려고 투쟁해야 한다. 그 투쟁이 그의 슬픔을 감동적으로 만들어준다.
-작업에서 각자의 몫은 이렇다. 관객과 연행자들이 공감하고 소통할수 있는 "화제"를 제시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다. 작가가 제시한 화제를 놓고 관객과 배우가 잘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연출의 몫이다. 관객과 만난 그 자리에서 직접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배우의 몫이다.
-창조작업에서 극적환경은 너무나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