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폭발은 무대가 아니라 관객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류 성 2008. 12. 29. 16:30
 폭발은 무대가 아니라 관객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류 성-

화산이 폭발하고 잠시 후 세계는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그와 같이 연극의 절정은 갈등의 폭발입니다. 폭발 후 관객은 긴장을 해소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연극은 시작과 함께 폭발의 순간을 위해 하나하나 축적해갑니다. 그런데, 자주 잊어버리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폭발은 무대가 아니라 관객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경우, 무대에서 폭발하려고 노력합니다. 절정이라고 이름 붙인 바로 그 장면에서 절제보다 과잉을 쉽게 선택합니다. 대본, 음악, 연기, 연출, 조명 등의 모든 요소들이 바로 그 장면에서 폭발하려고 사력을 다합니다. 이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대는 축적하는 곳이지 폭발하는 곳이 아닙니다. 폭발은 무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관객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작품을 만들면서 ‘이 지점이 폭발하는 지점이야’라고 설정하고 폭발하는 그 순간을 형상화하는데 힘을 쏟습니다. 그리고 관객의 마음에서는 아직 어떤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무대에서 배우들이, 조명이, 음악이 자기도취에 휘말린 채 있는 힘껏 폭발해 버립니다. 대부분 그 결과는 관객에게 ‘바로 여기가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자, 폭발하세요!’라고 소리치는 셈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 순간, 관객은 작품의 세계에서 멀찌감치 도망가 버립니다. 관객에게 그 순간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순간이며, 진실이 사라진 인위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며, 강제로 열어보이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폭발의 순간으로 이르는 과정이 제대로, 정확히 축적되었다면 관객은 자신의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폭발할 것입니다. 배우가 울지 않아도 관객은 울고, 무대가 조용하더라도 관객의 심장은 격하게 고동칠 것입니다. 정확히 축적되지 못했다면 무대에서 인위적으로 폭발하는 모든 것들은 과장과 거짓, 인위성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무대위의 배우는 우는 소리를 내며 눈물을 펑펑 흘리는데 관객은 그럴수록 몸을 뒤틀며 표정을 찡그리게 됩니다. 무대는 큰일이 난 듯 시끌벅적한데 관객은 그 시끄러운 소동을 관조합니다.


폭발은 관객의 것입니다. 관객의 것을 예술가 자신의 것처럼 여기고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려고 할 때, 예술은 관객을 소외시키고 감동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무엇보다 잘 축적하는데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어쩌면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에게는 오직 축적 할 수 있는 권리가 유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 권리를 충실히 잘 행사함으로써 관객의 권리까지 달성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