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진숙아 사랑한다 작업후기

류 성 2012. 12. 21. 13:31

진숙아 사랑한다 작업 후기

 

기간과 장소 : 2012년 10월 11-12월 10일간 11개 극장 20회 공연

역할 : 초기기획, 극작, 연출, 배우(건달 외)

공연팀 : 조재현, 차준호, 이정아, 정윤희, 오혜진, 박기태, 박정길


전투하듯 치뤄낸 공연사업

 

10월 중 몇 차례 올리고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공연은 11월, 12월 초까지 공연은 계속되었다. 만 2개월간 11개 극장에서 20회의 공연을 올렸고 1500여명의 관객들을 만났다. 이동과 셋업, 극장의 답사 등을 위해 쓴 시간을 합하면 60일중 40일 이상을 진숙아 사랑한다 공연으로 보낸 셈이다.

 

총 8명의 공연팀 모두 너무 고생이 많았다. 스텝과 배우를 따로 둘 여력이 없으니 구분없이 일했다. 빙판길을 운전하며 달렸고, 석면과 유리섬유를 뒤집어쓰며 작업했다. 기침완화제를 먹어가며 공연했고, 맡길 곳 없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공연을 치뤘다. 오랫만에 전투하듯 치른 공연이었다.

 

대선의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이 공연사업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감동을 받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무엇보다 보람있게 살고 있다고 느낀 시간들. 다시 찾아온 뜨거운 마음.

 

 

마음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해보자고 뜻을 모은 날로부터 첫공연을 올리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보름남짓했고, 마련된 재정은 전혀 없었다. 진보운동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별다른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진 힘이 충분한 것도 아니었다. 기획력은 일천했고, 배우와 스탭 인력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홍보일을 전담할 사람은 커녕 공연 때마다 티켓팅할 사람조차도 없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무모한 기획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땡전 한 푼 없었는데 라디오반민특위에서 초기재정을 대주었다. 걸판은 무대감독을 파견하여 무대를 제작해줬고 유니콘 조명과 유니콘 사운드는 조명과 음향을 지원해주었다. 누구는 포스터 팜플렛을, 누구는 모바일 홍보물을 제작해 주었다. 우리는 홍보에 힘을 들이지 못했는데 입소문이 절로 나기 시작했다. 여러 단체 및 지인들은 자기 지역에서도 이 공연을 할 수 있게 여러모로 애써주었다.

 

그렇게 아무 조건없이 도와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났다. 그동안 많은 작업을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원을 받은 적은 없었다. 놀라웠다. 초연 이후에는 공연팀 자체의 역량을 초월한 어떤 힘에 의해 떠밀리듯 공연을 지속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까지 판이 커질 줄은 몰랐다"고들 했다. 도대체 이런 기적은 어디서 나왔는가.

 

나는 이 공연 사업이 시작되고 지속될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은 정권교체를 바라며 "뭐라도 해야겠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그 마음과 뜻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두달간 전격적으로 달라붙어 헌신한 공연팀은 물론이거니와,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며 함께한 모든 이들, 그리고 플랑에 적힌 관객들의 마음과 뜻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운동은 뜻을 세움으로써 시작하는 거다. 공연은 마음으로 만드는 거다. 오래되고 자주 사용하는 바람에 식상해져버린 그 진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깊이 새기지 못했던 그 진실을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다.

 

 

준비된 작품이 없다면 불가능했다

 

진보예술운동의 고질적 병폐는 창작이 기획에 비정상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방식은 대개 이렇다. 어떤 사업을 기획하고 그에 따라 작품을 창작한다. 창작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작가는 창작적 사색을 채 무르익히기도 전에 작품을 써 낸다. 그렇게 만들어낸 작품은 공연팀 성원들에게조차 검증되지 못한 채 공연에 올라가고, 그러다 결국 자족적인 성과만 남긴채 정리되기 일쑤다.

 

많은 작가들이 이런 식의 작업에 아주 관성화되어 있고, 그래서 일상적으로 창작하지 않는다. 정세가 요동쳐도 창작적 사고는 돌아가지 않는다. 놀랍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지 않은가. 작가들이 일상적으로 써낸 작품이 없다보니 막상 어떤 공연사업을 기획하면 또 새작품이 필요하다. 그렇게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들에게 작품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있는 작품을 계기와 조건을 살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획적 사고를 못 하거나, 안 한다는 점이다. 작품이 좀 부족해도 기획이 자꾸 살려줘서 완성도를 높이고 자기 가치를 발휘할 기회를 줘야하는데, 이게 안 되면서 작업은 소모적인 재생산을 반복하고 질은 낮아진다. 우리는 더 많은 작품을 창작해야 하지만, 창작된 작품을 잘 살려낼 고민도 해야 한다.

 

진숙아 사랑한다 공연사업은 이 병폐를 극복한 하나의 정형이다. 작품은 2011년 10월경 약 40분 분량으로 창작되어 초연되었다. 그리고 그해 11월말, 사계절 프로젝트 공연을 통해 60분 분량으로 수정보완되는 기회를 가지면서 좀 더 단단해졌다. 2012년 상반기에도 나는 혼자서 이 작품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었다. 미리 창작되고 검증된 작품이 있으니 기획 실무작업에 곧바로 돌입할 수 있었다. 첫공연까지 보름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연습 및 공연제작 작업도 꽤 여유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진숙아 사랑한다 공연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힘은 그렇게 작품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는데 있었다. 그런데 만약, 예전처럼 새 작품 만든다며 창작단 꾸리고 어쩌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보건대, 이보다 더 잘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부족한 시간과 없는 재정 때문에 공연사업은 무산되었을 것이다.

 

 

다시, 뜨거운 마음을 만났다

 

가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는 대개의 공연에 즐겁게 임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공연을 한다는 즐거움과 흥분, 희열 등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매번 공연이 끝나고 플랑에 쓰여진 관객들의 관극후기를 볼 때마다 나는 뭉클해졌다. '고맙다'는 말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연기간 내내 써내려간 작업일지에 나는 몇번이고 '고맙다'는 문장을 반복 또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그리 순수하고 솔직한 편은 못 되지만, 내가 느끼는 고마움이 가식인지 진실인지, 값싼 것인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인지 분간할 수는 있다. 공연 기간 내내 느꼈던 고마움은 진실이었고, 전에 없이 값비싼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악전고투하듯 작업을 해도 공연기간 내내 나는 너무 행복했다. 그것은 개인적 성취감 따위가 줄 수 없는 힘과 투지, 그리고 행복감을 주었다. 보람있게 살고 있다는 느낌.

 

부끄럽지만 이런 느낌들은 굉장히 오랫만에 만나는 것들이었다. 그동안 나는 생존, 의무감, 당위를 기초로 작업한 적 많았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핑계로 실무적인 수준에서 작업한 적도 많았다. 진정성을 잃은 채 방황하거나 냉소적인 적 많았다. 이 길, 처음 나설 때 그 뜻과 마음을 잊은 채 그저 걸어왔으니 관성적으로 걸어간 적 많았다. 나는 종종 마음이 사라진 간호사처럼 작업했다.

 

공연 기간 내내 나는 자꾸만 내가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도대체 문예운동이란 게 뭔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찾아온 뜨거운 마음 때문일까, 실망스러운 대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 좌절스럽지 않다.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