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종합> 북한극예술의 서사적 특징 연구

류 성 2008. 1. 31. 09:43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 것을 묶은 종합판입니다.



 북한 극예술의 서사적 특징 연구


- 류 성 -                   



*****목차*****


1. 서사의 개념

2. 서사적 장치와 문법

3. 서사가 발달한 북한의 예술

4. 서사적 장치와 문법의 근원

(1) 사실주의 창작방법

(2) 통속성의 중시

(3) 세계관의 발전이 근본문제

 




북한의 가극, 연극, 영화 등의 극예술을 보면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특징들은 서사적인 장치와 문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1. 서사의 개념 



먼저 서사란 무엇인가부터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서사란 용어는 그 의미를 딱 떨어지게 규정하기가 곤란한 용어라서 정의를 하기보다는 개념을 잡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문학의 갈래를 구분할 때 흔히 서정, 극, 서사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문학의 고전적 구분입니다. 수필 등을 포함시켜 4대 장르, 또는 평론까지 포함하여 5대 장르로 구분하기도 하지요. 북한은 서정문학, 서사문학, 극문학으로 구분합니다. 서정의 대표적 형식은 시이며, 극은 대체로 희곡과 시나리오를 말하고, 서사는 주로 소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극의 대표인 희곡과 서사의 대표인 소설은 배경과 인물, 사건과 줄거리가 있다는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서술자의 존재 여부 때문입니다. 즉, 서사에서 서술자가 존재하지만 극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설에는 1인칭 주인공의 시점이든, 전지적 작가의 시점이든 서술자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 서술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과거형인 소설과는 달리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극의 경우 등장인물들이 직접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요. 소설에서는 서술자가 필수요소지만 극예술에서는 서술자가 필수적 요소가 아닌 것입니다. 


어떤 시점으로 서술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서술자는 많은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대사로 다 표현하기 힘든 심리상태를 대신 표현해 줄 수도 있고,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도록 이끌어 줄 수도 있으며, 암시를 주거나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도 있고, 사건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거나 논평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자의 기능은 서사가 다른 장르보다 훨씬 복잡하고 풍부한 이야기 구조를 가질 수 있게 해 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서사성, 극성, 서정성 등을 대립시켜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서사성이 강하면 극성이나 서정성이 떨어지고, 극성이 강하면 서사성이나 서정성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서정과 서사, 극에 대한 단순한 이해에서 비롯된 오해일 뿐입니다. 시에도 서사성이 강한 서사시가 있고, 소설에서도 서정적 묘사방식을 사용합니다.


요컨대 서사성을 강조한 북한의 극예술은 극성이나 극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극예술은 서사성 뿐만이 아니라 서정성과 극성도 매우 강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꼭지를 빌어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 서사적인 장치와 문법



북한의 연극, 가극 등 극예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서사적 장치와 문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무대 밖에서 제3자의 시점으로 불리워지는 노래인 방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오페라(이탈리아식)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 그리고 코러스들의 합창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1인칭의 노래만 존재하는 것이죠. 이는 많은 오페라 창작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규칙이었지만 이를 어쩔 수 없거나 반드시 지켜야할 철칙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조선식 오페라를 창작하려고 연구하던 중에 과연 이 규칙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의식이 든 겁니다. 그리고 과감한 시도를 합니다. 옛날 창극에서 일부 존재하던 방창에서 실마리를 찾고 이 방창을 가극에 도입하여 제3자의 시점에서 부르는 노래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방창은 주인공이 직접 부르는 노래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과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거나, 사건과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특히 관객들이 가질만한 정서와 반응을 대신 표현해주는 등의 기능을 하는데, 이는 마치 소설의 서술자-정확히 말하자면 전지적 작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극을 만들며 도입한 성악형식인 방창은 연극과 영화, 무용에서도 적극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자막이나 나래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자막은 가극의 경우 표제자막, 가사자막, 설명자막 등으로 나눕니다. 표제자막은 제목을 비추는 것을 말하며, 가사자막은 노래가사를 비춰주는 것을 말합니다. 남한에서도 많이 쓰고 있지요. 설명자막은 상황과 사건의 설명, 등장인물의 심리 설명 등을 담당하는데 이것이 바로 서술자의 기능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나레이션을 북한에서는 설화라고 부르는데 <서술자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설화는 앞서 살펴본 자막과 대개 비슷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자막과 나레이션은 상황이나 사건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상황이나 주인공의 심리를 대신 묘사해주는 등 서술자의 기능을 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북한의 연극과 가극 등은 서사적 문법에 가깝습니다.


일례로 북한의 연극과 가극 등은 극이라는 장르적 문법에서 보자면 장면의 수가 굉장히 많은 편에 속합니다.


극은 실시간으로 직접 행해지는 예술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소설이나 영화에 비해 시공간의 제약, 장면수의 제약, 인원수의 제약 등이 심한 예술이지요. 극작의 기술은 이러한 제약과의 싸움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북한은 가극과 연극을 연구하면서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한 몇 개의 장면들로만 구성하는 것은 낡은 극작술이라고 판단하고, 생활의 논리에 맞게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펼쳐내는 방향으로 극작술을 혁신합니다. 그리고 이에 발맞추어 연출에서도 다장면 연출을 연구하고 무대미술에서 흐름식 입체무대를 내놓습니다.


쉽게 말해 마치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많은 장면들로 구성하여 전개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서사적인 문법에 가깝습니다.




3. 서사가 발달한 북한의 예술



북한의 연극, 가극 등의 극예술에서 나타나는  서사적 장치와 문법이 우연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자체의 분명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를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북한의 예술이 문학과 무대예술을 막론하고 서사가 발달해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문예사전을 살펴보면 "우리 근로자들과 청년들을 교양하는데서 여러가지 예술이 다 필요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소설과 영화에 힘을 넣어야 합니다."-《김일성저작집》 18권, 446페지-"우리의 혁명적 문학예술에서 소설문학은 영화와 함께 가장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북한이 소설을 발전시키려고 큰 노력을 기울였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시문학에서도 서사적 묘사방식을 사용한 서사시가 발달해 있습니다. 서사시란 형태상으로 보면 시인의 주관적 정서를 표출하는 서정시와는 달리 일정한 이야기 줄거리와 서술자가 존재하여 서사적 방식으로 형상한 시이며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영웅적 인물의 삶과 역사적인 사건 등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은 시문학의 종류에서 서정시 외에 서정서사시, 서사시를 하위 종류로 두고 있는만큼 여기에서도 서사시의 발달을 가늠해 볼 수 있겠지요.


또한 무용에서도 감정을 표현한 무용외에도 이야기 줄거리를 가진 무용이 많을뿐만 아니라 종합예술인 음악무용극, 음악무용이야기, 음악무용서사시 등이 발달해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명칭이 다른 만큼 장르적 특성에서 차이가 있지만 역사적인 사건들을 소재로 이야기 줄거리를 구성하였으며 시와 음악, 무용 등이 서사적 토대위에서 결합했다라는 공통성이 있습니다.


2002년에 창작되어 현재까지 공연되고 있는 대집단 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같은 작품도 서사적인 기법과 구성을 취하고 있지요.


이렇듯 북한의 예술 전반에 서사가 발달한 것을 볼때 북한의 극예술에 나타나는 서사적 특징을 그저 우연적으로 자리잡힌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북한의 문학예술이 여타 나라들처럼 몇몇 걸출한 예술가의 작업에 의해 선도되고 특징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힘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즉, 서사가 발전할만한 자체의 분명한 이유가 있고, 이것은 북한의 문예이론과 정책에 근거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4. 서사적 장치와 문법의 근거



(1) 사실주의에 기초한 창작방법


사실주의는 현실의 일부를 선택하여 과장하거나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예술이념이자 창작방법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단순히 세부적인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복잡하고 다양한 관계 속에 얽혀있는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며 어떻게 반영하는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되지요. 여기에서 사실주의는 삶과 세계의 '진실'을 진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삶과 세계를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진실하게 드러내려는 사실주의 창작방법은 시, 미술, 연극 등 모든 장르의 예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만 아무래도 서사의 대표적 장르인 소설에서 그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극예술분야에서도 사실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희곡작가들은 가능한 직접적인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희곡에서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운문체 일색이었던 대사를 생활에서처럼 산문체로 바꾸고,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며, 과장이나 우연에 기대지 않고 논리적인 구성을 취하고, 인물의 성격을 유형화하지 않고 개성화했습니다. 또한 배우들은 연기에서도 과장을 배격하고 실생활에서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지향하고, 무대미술가들은 실제와 같은 장치를 설계하였습니다. 연출가들은 연극의 모든 요소들이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루도록 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주의를 제대로 구현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극은 무대라는 공간에서 직접 실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본질적인 특성상 몇 개의 한정된 장면속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밖에 없으므로 삶의 모습과 그 본질을 소설이나 영화처럼 풍부하고 다양한 장면을 통해 보여줄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북한은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으로 봅니다. 삶을 진실하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본래의 모습대로 입체적으로 그려야 한다고 보고 극 구성에서 다장면 구성법을 적용시킵니다. 극이 발전하는데 따라 인물의 성격과 생활의 논리에 맞게 한 장면 안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자주 변화시켜 화폭을 다양하고 폭넓게 펼쳐나갈수 있게 하고 생활의 흐름을 중단함이 없이 그대로 재현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인물과 이야기를 극적으로 빈틈없이 잘 짜면서도 생활을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펼쳐낼 수 있게 됩니다.


말하자면 서사의 장점을 극에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생활을 진실하게 그려내기 위해 다장면으로 구성하는 방법은 북한에서만 창조한 것은 아닙니다. 서사극 이론을 정립한 브레히트나 <보이체크>의 작가 게오르그 뷔희너 등 진보적 예술가들도 사회의 진실을 그려내기 위해 기존의 연극과는 달리 많은 장면들을 취하여 삽화적으로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장면 구성법은 생활을 풍부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극으로의 몰입을 차단시켜 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배경이 되고 있는 무대장치들의 원활한 교체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극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이 끊어져 관객들은 극적 세계에서 튕겨져 나갈 수 밖에 없겠지요. 하기에 다장면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상징적인 소품을 사용하여 아예 연극적 약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방법들이 사실주의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충족시키는 방법이라고 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북한은 대신 무대장치에서 흐름식 입체무대를 개발하여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흐름식 입체무대란 사실적으로 재현된 입체적인 장치와 배경을 마치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끊김이 없이 전환시키는 무대를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은 극에서 튕겨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되겠지요. 말하자면 다장면 구성법과 흐름식 입체무대를 통해 소설이나 영화와 같이 풍부하게 생활을 재현하면서도 극적인 긴장을 유지시켜 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필자는 2005년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직접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공연에서 북한의 흐름식입체무대를 이용한 다장면연출력이 얼마나 높은 수준에 올라섰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2) 통속성의 중시


통속성이라는 말은 통속적인 성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한에서 통속적이라는 말은 대중적이며 그래서 저속하고 천박한 것을 말하며, 통속적인 예술이라는 말은 대중의 대중의 세속적이고 천박한 취향을 쫒아 고상함이 떨어지는 예술을 말합니다.
 

통속성에 대한 이러한 의미가 자리잡힌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적 논리에 의해 상품화된 예술에 대한 비판이라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예술의 창조와 발전이 전문적인 예술교육을 통해 높은 미학적 안목과 재능을 소유한 전문적 예술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문학예술작품의 통속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작품이라야 예술수준이 높은 것 처럼 주장하는 것은 예술지상주의적 견해이며 대중들의 감정에 잘 맞고, 이해하기 쉬우며, 대중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통속적인 예술을 진정 훌륭한 작품으로 봅니다.


즉, 대중들이 좋아하는 예술을 천박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훌륭한 예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대중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문학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문학예술정책으로 삼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통속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아니라 예술의 창조와 발전에 대한 관점과 입장 자체가 다른데서 비롯됩니다. 즉, 예술의 창조와 발전은 몇몇의 전문적 예술인들의 탁월한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중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과 입장에서 북한은 문학예술작품의 창조와 보급 전반에서 통속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연극, 가극, 영화 등에서 쓰이는 나레이션(설화)나 자막은 통속성과 연관지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나레이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서술자의 이야기, 즉 설화로서 원래 서사적 방식의 형상수단입니다. 즉, 소설과 같은 서사적 형태의 문학작품에서는 서술자의 이야기, 즉 설화가 필수적인 요소이지요.


북한의 문예사전에 의하면   "설화란 인물과 생활에 대한 창작가의 립장과 태도를 밝히며 내용을 보충설명하는 형상수단의 하나"로 보고 "영화나 연극에서 설화를 쓰는 경우에 그것은 사건이 전개되는 환경과 그 과정을 설명하는 서술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극의 내용과 생활의 의미를 설명하거나 암시하며 마감대목에서 사건에 대한 결론을 주는 수단으로 리용될 수도 있다"라고 합니다. 또한 가사자막의 경우 "가사의 내용을 관중들에게 더 잘 전달하고 노래를 대중속에 널리 보급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막과 나레이션을 잘 쓰면 "작품의 인민성을 높이고 관중과 무대와의 연계를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서술자가 따로 없이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으로만 진행된다는 극예술의 특징은 그 어느 장르보다 생생한 감동과 긴장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때로는 작품의 내용을 깊이 있게 전달하는데는 불편함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북한은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고 극예술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작품의 내용을 보다 깊이 있게 전달하기 위해 설화와 자막 같은 서사적인 장치를 필요에 따라 접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컨대 북한의 극예술에서 사용되는 설화나 자막은 서술자의 기능을 담당하여 관객들에게 작품의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접근시킬 수 있도록 하는 서사적인 장치이며 이는 앞서 이야기한 예술에 있어서 통속성을 중시하는 관점과 입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이 극예술에서 무조건 설화나 자막을 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무분별하게 설화나 자막을 남용한다면 극예술의 본질적 특징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겠지요.


북한은 "시극이나 방송극 같은데서는 설화가 필수적인 형상요소로 되면서 작품의 사상예술성을 높이는데 적극적으로 작용하지만 영화나 연극 같은데서는 많은 경우 설화를 쓰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3) 세계관의 발전이 문학예술의 근본문제


북한은 문학예술이 "인간과 그의 생활을 통하여 절실하고 의의있는 인간문제를 밝혀냄으로써 사람들에게 생활의 진리를 깨우쳐주며 그들을 참된 삶의 길로 이끌어"주어야 하며 "인간의 존엄과가치, 인민대중의 운명과 관련되는 의의있는 문제를 예술적으로 감명깊게 밝혀냄으로써 사람들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위한 투쟁에로 고무하고 추동하는 훌륭한 교과서로, 힘있는 무기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예술을 통해 인간의 세계관이 발전할 수 있으며 또한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바꾸어낼 수 있다라고 보는 것이지요. 세계관의 발전을 문학예술의 근본문제로 삼는 것은  문학과 영화예술, 음악예술, 무대예술을 막론하고 문학예술 전체에 적용되는 대전제에 해당합니다.


문학예술에 대한 이러한 관점과 입장은 여러 진보적 예술가들과 맥을 같이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술을 통해, 또는 실제 삶을 통해, 또는 그 삶을 위한 예술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의 즐거움에 속한다.” 라고 말한 브레히트는 서사극이론을 정립하였는데 그 목표는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켜낼 인식과 용기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용어와 기법의 차이는 있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삶의 본질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에 기초하여 현실을 바꾸어낼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문학예술이라는 입장과 관점은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이와 같은 문학예술에 대한 입장은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기초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그려내는데서도 구현되지만 보다 주되게는 등장인물을 통해 집중적으로 구현됩니다.


북한의 5대 혁명가극 중의 하나인 <피바다>는 일제에게 남편도 잃고 자식도 잃으며 고통받던 주인공이 마침내 일제를 반대하는 싸움에 떨쳐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막심 고리끼의 소설 <어머니>를 연상시키지요. 연극 <성황당>은 사람들이 미신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과 지혜로 삶을 개척해나가야 함을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즉, 주인공들의 세계관의 변화발전을 설득력있게 그려내는데서 가장 집중적으로 구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세계관은 단순하게 변화발전하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계기와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180도 전환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도 않지요. 숱한 경험과 그에 따른 인식이 축적되어야 하고, 어떤 계기와 사건을 만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복잡한 세계관의 발전과정을 사실주의의 원칙하에 진실하고 설득력있게 그려내야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현실을 바꾸어낼 지혜와 용기를 줄 수 있겠지요.

북한의 극예술은 주인공들의 변화발전과정을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기초하여 설득력있게 그려내기 위해 힘을 쏟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무대에서 실연된다는 극예술의 특성상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었으며 북한은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창과 설화, 자막과 같은 서사적 장치들을 적극 도입하여 통속성을 강화하고, 흐름식 입체무대와 다장면연출법을 개발하여 마치 영화나 소설처럼 풍부한 장면을 제시하는 등 극예술의 본질적 특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서사의 장점을 접목시켜 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실주의 창작방법>과 <통속성의 중시>가 <세계관의 발전>이라는 근본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복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주의적 창작방법>과 <통속성의 중시>라는 양대 기둥이 <세계관의 발전>이라는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것이지요.


<끝>



* 참고서적 및 사이트

-<북한의 문학예술 운영체계와 문예이론> 전영선 / 역락

-<북한 문학의 이해> 김종회편 /  청동거울

-<북한의 공연예술1> 서연호, 이강렬 / 고려원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예술인들> 전영선 / 역락

-북한 문학예술 사이트 http://www.nk-culture.re.kr

-북한 문화예술연구소 사이트 http://cafe.daum.net/BTF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