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작업후기-끝나지 않는 연극

류 성 2013. 8. 30. 13:46

작업후기-끝나지 않는 연극


공연명 끝나지 않는 연극 (극단 유목민)

공연기간 52~5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작가 오태영   연출 손정우   예술감독 심재민  드라마트루크 류 성

조명 김용주  무대 이진석  의상 조현정  안무 이영일  영상 최종찬

음악 박용신  조연출 심현우  무대감독 유태선  오퍼 이용호·노우란·문건우

진행 김민지  기획 동규찬  기획보 김지원  촬영 조성원·김재정·김양우·최정인


1.

제가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했던 "끝나지 않는 연극"이 좋은 결과를 거두었습니다. 서울연극제 대상, 희곡상(오태영), 연출상(손정우), 남우주연상(이봉규)까지 받았네요. 수상하신 분들께서 수고하신 건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외 팀원들의 수고도 얘기하고 싶어서 끄적거립니다.

먼저 배우들입니다. 사견이지만, 오태영 선생님 작품은 연출하기도 어렵지만 연기하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있는 인물들이 중의적인 대사를 쏟아냅니다. 연습하는동안 종종 저라면 이 작품 연기 못했을거란 생각, 자주 했습니다.

아내 역할의 오민애 선배님. 복잡다단하고 상호모순적인 내면을 여러가지의 형태로 빚어 다이나믹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역시 공력은 공력입니다. 참, 선배님 연기를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ㅎㅎㅎ

며느리 숙희 역할의 조선주. 가뜩이나 모호한 캐릭터인데, 게다가 수차례 바뀌는 수정본에 참 힘들었을겁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팔색조같은 연기를 펼쳐 보여주더군요.  아마도 가장 깊은 인상을 새긴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들 역할의 김결. 멋진 배우에요. 특히  연습과정을 잘 만들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 감동적이었죠. 마지막 장면, 꾹꾹 눌러가며 툭툭 내뱉는 그의 대사들이 객석을 긴 침묵에 빠뜨리는데, 소름돋듯 짜릿했습니다.


딸 자야 역할의 홍정연. 잘 웃고 밝아서 환한 기운 가진 배우에요. 하지만 걱정많이 했습니다. 막내라서 선배들 선생님들 눈치보고 주눅들기 쉽거든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대담하게 열연하더군요.


사내 역할의 김대영. 아주 짧게 나오지만 아주 강렬했습니다. 위압적인 무대세트마저 눌러버리는 강렬함이라니. 게가다 그렇게 선한 인상에서 그렇게 공포스런 기운이 뻗어나올 줄이야 전혀 몰랐네요.


사내역에 기획일에 학교일까지 하느라 동분서주했던 동규찬. 게다가 장면과 대사도 곧잘 쓰는 걸 보니 다재다능한 친구입니다. 그래도 연습할 때 연기하는 거 보니까 배우말고 다른 거 하기엔 참 아깝더군요.


다음은 스태프들입니다. 빛나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자기자신은 어둠속에 숨는 사람들이죠. 비록 관객이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스태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만약 조연출상도 있다면 당연히 심현우가 받아야 합니다. 이건 뭐 조연출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수많은 역할을 했는데, 뭐하나 빠짐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일하더군요. 누가 뭐래도 일등공신 중 한 명입니다.


조명으로 각 장면마다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해내신 김용주 감독님.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조명을 보며 그만 마음을 뺏겼습니다. 영우씨를 비롯한 크루 여러분들도 너무 수고하셨죠.


성함을 몰라서 죄송합니다 음향감독님. 정교하게 디자인된 음향으로 극의 스타일을 한층 살려 주셨지요. 저 마술같은 효과들 어떻게 하는건가  궁금했는데 덕분에  많이 배웠고, 훔쳐 쓰고 싶은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갑니다.


무대디자이너 이진석님. 극의 스타일과 꼭 들어맞으면서도 효율적이고, 배우들의 움직임과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도록 고려한 멋진 무대였습니다. 작품이 주는 시대적 무게감에는  무대디자인의 공도 크다고 봅니다.


아, 그리고 저도 아주 조금은 수고했습니다. ㅎㅎㅎ


2. 


드라마투르그. 연극에서 제일 모호한 역할입니다. 유럽의 개념과 미국의 개념과 한국의 개념이 조금씩 다 달라요. 작품선택, 프로그램구성, 번역, 각색, 컨텍스트 연구, 연출적 조언, 과정의 기록 등등의 일을 한다고 해요. 그렇게 보면 또 한사람의 작가이자 연출가이자 평론가이자 기록자, 연구자가 되는거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한국적 상황에서의  드라마투르그는 연구자 역할에 비중을 두는 게 좋다고 봐요. 이 부분이 빠져있으니 우린 종종 작품만 열심히 만드는데 그치는 겁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사람이 성장하는 건데요. 게다가 연구작업의 성과는 창조작업에 직간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제가 드라마투르그로 참가한 "끝나지 않는 연극"의 어느 장면에 대해 분석한 글입니다. 혹시 도움이 되시는 분 있을까 싶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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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대에 대하여
 
연조의 마지막 꿈 장면에서, 연조는 “넓은 광장에 마련된 사형대에 올라서”고 싶어 합니다. 연조가 올라서고 싶어하는 “사형대”는 아마도 길로틴(단두대)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방식의 처형은 “올라서지” 않습니다. 길로틴은 모두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넓은 광장”에 마련되어 있지요. 끔찍한만큼 대단한 구경거리기도 했고, 군중들에게 공포심,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넓은 광장’에서 집행했던 겁니다.


사내에게 한 대 맞기 전 장면에서, 부들부들 떠는 연조의 눈에는 길로틴 장치의 환상이 떠올랐을텐데, 이것이 무대 위에서 표현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길로틴에 목이 잘리기 전, 루이 16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의 모든 죄목에 대해 무죄로 죽어간다!” 자신에게 덧씌워진 죄에 대해 저항하며 사형대에 올라가고 싶어하는 연조의 이미지와 겹치는 부분입니다.
 
길로틴의 상징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도 가능합니다. 길로틴은 프랑스 혁명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확장해보자면, 길로틴은 ‘지난 시대의 청산’을 상징하는 장치입니다.


극 중 어머니의 대사 “아버진 거기서 죽어야지. 그렇게 한 시대를 마감해야지!” 아들의 대사 “아버지 대에서 끝장을 내라”는 등의 대사는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지요.
 
길로틴은 끔찍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평등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사형수에게 재빠른 죽음을 주는 것은 상류층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고, 일반 평민들은 심한 고문을 받으며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었습니다. (연조가 오랜 시간 고통에 떠는 것은 그런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후 “사형은 신분의 구별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더욱 인간적인 방식으로 집행되어야 한다”는 결의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길로틴은 정식 사형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평등하고 인간적인 죽음을 주기 위해 사용되었던 길로틴이었지만,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데 사용하기도 했고(그 수가 2만명을 넘었다는군요), 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에서 공산포로들을 처형하는데도 사용했다고 합니다.(총살이 아니라)
 
베트남의 전기공 응우 옌 반쪼이는 베트남전을 기획한 미국방장관 맥나마라를 폭탄 테러하려다 체포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처형당할 때, 워낙 커다란 사건이다보니 내외신 기자들이 처형장에 가득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내 눈가리개를 벗겨달라. 내 조국의 하늘을 보고 싶다. 나는 죄가 없다. 이 땅에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죄를 범한 맥나마라를 나는 처단하려고 했다”
 
응우 옌 반 쪼이는 끝내 눈가리개를 벗고, 눈을 부릅 뜬 채로 처형당하는데요, 연조의 대사인 “난 눈을 뜨겠어, 눈을 떠”라는 부분을 연상시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유사한 사례는 많습니다.


어쨌든, 처형당하기 직전의 순간,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선언하며 자기 변호를 하는 장면은 대단히 드라마틱한 순간입니다. 이런 면에서 연조에겐 “50년을 기다려온 자기 변호의 기회”, “사형대 위에서 쏟아낼 말들”이 너무나 간절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