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이웃 공연 작업 일지 -3
류 성
2009. 7. 25. 01:26
이웃 공연 작업 일지 -3
이번 작업은 조금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완성된 대본을 그저 하나의 지도라고 인식하고
제시된 상황들과 스토리만 남기고 해체해버린 후
배우들이 즉흥연기와 토론을 통해 재구성해나가는 방식이었다.
애초에 의욕이 앞서 과한 욕심을 부린건데,
연습날짜도 너무 안 빠져서 시도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따르는 작업순서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한 회의 리딩을 거친 후 전체 동선을 전부 그어버렸다.
분석을 철저히 하지 않는 리딩을 오래하는 것 보다
차라리 일어서서 극중의 행동을 실연해보는 것이
인물과 상황을 이해하는데 더 나을 때도 있다.
다행히 3-4시간 만에 동선을 모두 그었다.
사실 나는 '한 번 더 해봅시다'란 말만 반복했을 뿐
대부분은 배우들이 직접 그었다.
개략적인 틀이 나왔고 흐름이 보이므로
이제 나와 배우들은 함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몫이 크다. 배우들은
부실하게 써놓은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내야 하고
인물의 일관성 없는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해야 하고
재미없는 대사를 맛깔나게 만들어야 한다.
배우들은 잘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연출인 나다.
대본수정과 장면연출을 위해 몇번이나 대본을 훑어 봤지만
이번 작품은 감이 빨리 오지 않는다.
배우들이 채워넣는 걸 보면서 컨닝을 좀 하는 수 밖에.
특기할 것.
동선을 긋느라 여러차례 장면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조금 지루했는데,
혹은 배우들이 자칫 지루해할까봐 걱정했는데,
어느 배우는 연습후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적었다.
왜 그랬을까?
첫째, 반복하는 동안 배우들은 사색하고 창조하고 있었으나 나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고
둘째, 배우들의 사색과 창조를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나의 흐릿한 눈 탓이다.
현재 스코어. 지휘를 해야 할 내가 가장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