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연극] 웃음의 대학 리뷰-1

류 성 2008. 11. 14. 16:34
 



연극
웃음의 대학 리뷰-1



-류 성-



희극작가 츠바키의 신념


츠바키는 사키사카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며 수정작업을 계속합니다. 그는 다른 작가들처럼 ‘권력에 순응할지언정 차라리 붓을 꺾는’ 행동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력이 요구하는대로 수정작업을 계속’ 합니다. 그의 최종목적은 기어코 공연을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츠바키는 작가적 자존심도 팔아먹은 쓰레기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신념이 투철한 작가입니다.


그의 신념은 작가적 자존심이 아니라 웃음의 힘입니다. 웃음의 힘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그는 기어코 공연을 올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자 합니다. 설령 그 공연이 검열에 의해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른 내용의 작품이 되더라도 그는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츠바키가 시대와 권력에 맞서 싸우는 방식인 듯 합니다. 그는 작품의 메시지가 아니라 웃음 그 자체가 세상과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신념이 투철한 만큼 그의 싸움은 매우 치열합니다. 사키사카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수정을 요구하면 그는 밤을 새워 써내는 일을 반복합니다. 검열의 최종목적이 공연을 못 올리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 그 순간에도 ‘오늘도 밤을 새워 생각하면 어제보다 더 좋은 생각이 날 수도 있다’며 또 써 냅니다. 오히려 사키사카의 요구사항을 역이용하여 더 재미있게 써내고 결국 그렇게 냉혹했던 검열관까지 웃게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츠바키는 '이런 시대에 웃음은 필요 없다'던 냉혹한 검열관 사키사카를, '태어나서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었다'던 사키사카를 무려 여든 여덟번이나 웃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키사카는 츠바키의 열렬한 지지자로 변신합니다. 츠바키는 웃음을 결코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압력을 극복합니다. 아니, 그 압력마저 온몸으로 끌어안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츠바키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웃음의 힘입니다.

츠바키 역의 황정민과 사키사카 역의 송영창


동지가 된 검열관 사키사카


사키사카는 츠바키의 작품이 단순히 웃기기 위한 장치들로 점철되어 논리적인 문제가 많으며 진실하지 않다고 봅니다. 사키사카는 특유의 논리적이고 냉철한 사고에 기반하여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들을 지적합니다. 츠바키가 사키사카의 지적과 의견을 받아들일수록 대본은 더욱 탄탄해지고 재미있어집니다. 희극작가였던 츠바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사키사카와 같은 사람의 의견이었습니다.


츠바키는 단순히 웃기려고 장면을 억지로 지어내는 경향이 있었다면 츠바키는 그것을 뛰어넘어 개연성을 충분히 갖춘 장면을 구성해냅니다. 사키사카의 의견에 따라 개연성이라는 토대위에 지어진 장면은 더 큰 웃음을 터뜨리게 해줍니다. 사키사카는 그 순간부터 검열관과 창작자의 영역을 넘나들게 됩니다. 그는 스스로 연기까지 펼치며 츠바키와 함께 작품을 수정해나갑니다. 그리고 츠바키는 사키사카에 의해 숱한 희극적 영감을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사키사카는 츠바키의 창작 작업에 가장 위험한 적이자 가장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키사카의 역할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측면에서 작가에게는 무제한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며 일정한 강제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톨스토이, 체홉 등은 매일 정해둔 시간에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강제했다고 합니다. 사키사카는 어떤 부분이 어떤 문제가 있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수정할 부분을 한정해 주고, 내일 아침까지 해오라며 마감시간도 한정해 줍니다. 이러한 압력이 츠바키에게 오히려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 되어 버립니다. 사키사카는 수정을 계속 요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츠바키가 작품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지요.


검열인지 공동창작인지 모를 일주일을 통해 웃음의 힘에 빠져든 사키사카는 공연의 마지막 즈음, 츠바키의 완전한 동지가 됩니다. ‘나라를 위해 모두가 목숨 바쳐 싸워야 한다’고 부르짖던 그가 징집영장을 받고 전쟁터로 끌려가는 츠바키에게 ‘나라 같은 거 생각하지도 말고 무조건 살아 돌아오라’고, ‘이 작품을 꼭 공연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부르짖습니다. 츠바키의 악전고투는 끝내 웃음을 모르는 사키사카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냈습니다. 사키사카라는 인물의 변화는 웃음의 힘으로 세상이 변화할 수 있음을 암시해 줍니다.


<연극 웃음의 대학 리뷰-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