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사상성, 예술성은 더 높아져야 한다
-류 성-
정보가 정치권력에 의해 차단되고 독점되었던 시절에 많은 진보적인 연극은 사회의 구조와 모순을 폭로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묻혀있거나 왜곡된 사실을 들추어 대중들에게 알려냄으로써 대중들을 각성시키고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려 했습니다. 연극은 세계의 모순을 폭로하고 진실을 보고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일차적인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의 개발과 발전으로 인해 환경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대중들은 예전처럼 정보에서 소외되어 있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형태를 빌어 다시 재생산합니다. 너무 많은 정보가 진실을 왜곡할지언정, 대중은 정보에 대해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차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환경이 변화했고 대중의 능력도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곧 연극의 변화를 촉구합니다.
바뀐 환경은 연극이 작품에서 다루는 소재 그 자체를 대중들에게 더 이상 충격적이거나 흥미로운 것으로 접근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사실에 대한 폭로, 보고, 전달은 이미 예전과 같은 힘을 잃었습니다. 대중은 ‘그건 우리도 알고 있으며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고 반응합니다. 대중은 사실이 아니라 심층의 진실에 접근하려 합니다. 그러니 연극의 역할도 바뀌어야 합니다. 연극은 폭로자, 보고자, 전달자의 입장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연극은 이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연극은 모순의 폭로, 사실의 나열과 보고 등 표면적인 것을 전달해서는 자신의 사명을 다 할 수 없습니다. 대중이 알고 있는 사실의 내적인 것, 즉 심층적인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이제 연극은 누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다며 사실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죽음에 담긴 내적인 의미, 즉 진실을 탐구하고 형상화해야 합니다. 연극은 사실의 전달자가 아니라 진실의 안내자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바뀐 환경과 변화된 대중의 능력은 연극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실력을 요구합니다. 예술가로 하여금 소재가 주는 무게에서 벗어나 주제와 내용에 집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삶의 표면이 아니라 삶의 심층을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서 새로운 진실을 이끌어내라고 요구합니다. 연극의 사상성, 예술성은 더 높아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