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연기-9 말이 안 들리는 이유
배우와 연기 9
말이 안 들리는 이유
-류 성-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대사, 즉 ‘말’이다. 몸연극, 비언어극 등의 실험적인 연극들도 있지만 그래도 연극에서 말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런데 종종 말이 안 들리는 배우들이 있다. 말이 안 들리는 이유를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배우의 목소리 크기 자체가 약한 경우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의 공연이 소극장에서 이루어지거나, 중극장 규모만 되어도 와이어리스를 착용한다. 때문에 목소리 크기 자체가 문제되는 경우는 드물다.
단, 발성이 좋으면 풍부한 표현을 끌어내는데 유리하고, 음향기기를 사용하더라도 덜 왜곡된 소리를 만들기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발성능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목소리 크기를 억지로 키우려는 노력은 좋지 않다. 무리하게 소리 크기 자체를 키우려고 하면 발성기관에 긴장을 일으켜 오히려 소리가 작아지는 현상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성대를 해칠 수도 있다. 습관이 되면 목소리가 변형이 되어 듣기 싫은 목소리가 된다. 힘을 주어 억지로 키워낸 목소리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큰 소리가 아니라 조절력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소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배우의 발음이 안 좋은 것이다. 실제로 혀가 짧다든지, 치아상태 등 구강구조의 문제로 발음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드물고, 오히려 평소 습관에 따른 영향이 많다.
일상생활에서는 일부러 발음을 똑똑히 하지 않아도 대개 무리없이 의사전달이 된다. 그래서 잘못된 발음이 습관화 되는 경우가 많고 이 습관이 무대 위에서도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발음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말을 할 때 신경을 쓰는 노력만 기울여도 고칠 수 있다. 말을 할 때 그냥 내뱉는 것이 아니라 자기 귀로 들으면서 내뱉는 습관만 들여만 해도 상당부분 고쳐진다. 나쁜 습관을 고치는 방법은 좋은 습관을 붙이는 것이다.
셋째, 공명이 안 되는 소리도 안 들린다. 같은 음량이라도 공명이 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귀에 잘 들어온다. 음향기계에서 소리에 Reverb를 적용할 때 음량이 더 커진 듯이 들린다. 목욕탕에서 노래 부르거나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공명의 효과 때문이다. 공명이 있는 소리가 일반적인 소리보다 더 크고 귀에 잘 들어온다.
배우는 건조하게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 공명을 이용한 소리를 내야 한다. 공명 기관들은 가슴부터 두개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고 훈련을 통해 개발할 수 있다. 특히 가슴 공명을 잘 쓰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공명이 되지 않고 나오는 건조한 소리는 아무리 크고 또렷하더라도 관객의 정서에 침투하기 힘들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넷째, 호흡이 짧거나 불안정한 것이다. 대사는 실생활에서 쓰는 말과는 다르다. 단적으로 실생활에서 쓰는 말은 짧지만, 대사는 길다. 대사는 인물과 상황에 대한 정보도 주어야 하고, 인물의 성격도 드러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수식어가 많고, 문장 길이 자체가 길다. 2개 이상이 연결된 복합문장도 자주 사용된다.
그러므로 호흡이 짧거나 안정되지 못하면 대사를 치기가 힘들고, 배우는 애를 쓰며 쥐어짜게 된다. 관객들에게는 대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쥐어짜고 있는 배우의 상태가 먼저 들어오고 결국 그것이 내용전달을 방해한다.
초보 배우들의 경우 불필요하게 자주 호흡을 사용하는(자주 띄어읽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문장 전체를 알아듣기 힘들게 만든다. 자꾸 엉뚱한 데서 끊어 읽는 배우들도 있다. 호흡이 짧으면 자연히 긴장하게 마련이고, 그러니 엉뚱한 곳에서 숨을 쉬게 되는 거다. 이 역시 관객을 무슨 말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다섯째, 대사가 배우 자신의 것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의 주체성에 대한 것으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말은 사고의 반영이다. 자기 말이 아닌 남의 말을 한다는 것은, 남의 사고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가 대사를 제대로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대사를 통해 남의 사고에 접근해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다시 남의 말을 제 말로 소화해 뱉아야 한다.
대사를 외우고 유창하게 말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 아니다. 남의 말을 자신의 말이 되도록, 즉, 남의 사고를 이해하고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 연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때 비로소 배우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부족하면 연습은 기계적이 되기 일쑤다. 대사를 외우기 바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내뱉는다. 이렇게 내뱉은 말은 강조점, 리듬과 템포, 뉘앙스 등을 살리기 어려워 평이하거나 또는 혼란스럽게 들린다. 게다가 긴장이 발생하기 쉬워져 발음, 발성, 호흡 등이 부정확해진다.
반면에 자신의 것으로 소화된 후 뱉어내는 말은 자연스럽고, 알아듣기 쉽고, 유창하며, 무엇보다 에너지가 넘친다.
배우는 말과 관련한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발성능력도 높여야 하고, 정확한 발음을 위한 습관도 들여야 하며, 공명기관들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의 주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다.
<2010년 6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