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배우와 연기 8 스스로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류 성 2009. 8. 21. 17:16
 

배우와 연기 8


스스로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류 성-



관객들은 작품의 플롯, 연출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평가하지만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대개 그렇지 않다. 연기에 대한 평가는 ‘잘 한다’, ‘못 한다’, ‘자연스럽다’, ‘어색하다’ 등과 같이 추상적이거나, 발음에 대한 지적 등과 같이 사말적일 때가 많다. 게다가 종종 매우 극단적이기까지 한데, 같은 배우의 연기를 보고 어떤 이는 연기가 좋았다며 칭찬하지만 어떤 이는 연기가 어색하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사실, 작가, 연출가, 디자이너, 배우 등이 함께 창조해낸 연극공연에서 어느 영역만 따로 떼어내어 평가하기란 쉽지 않으며, 특히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배우는 대본을 기초로 말하고 행동하며, 연출의도와 스타일, 상대배우와의 호흡, 장치, 음악 등에 의해 복잡한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연기를 창조한다. 그 중 무엇이 배우가 창조해 낸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공연을 보고 배우의 연기에 대해 정확히 구분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부족한데다가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배우는 자신의 창조에 대한 평가를 들어볼 수는 있다.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힘이 날 것이며, 지적을 받으면 의기소침해지거나 또는 ‘그건 내 연기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칭찬을 받는 지적을 받든 간에 그것이 배우에게 다음 작업의 의지를 불어넣어 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평가의 전부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반쪽짜리 평가에 불과하며 배우의 예술적 성장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란 과정으로서의 작업과 결과로서의 작품을 포함한다. 결과로서의 작품은 공개되어 관객들이 평가할 수 있지만 과정으로서의 작업은 예술가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평가할 수 없다. 배우는 자신이 창조해낸 결과물에 대한 관객의 평가에 귀 기울이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스스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역할에 대한 접근방법,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노력, 작업 중에 느끼고 깨달은 것 등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고 정리해보는 것은 자신의 예술적 성장에 더 없이 좋은 자양분이 된다. 이렇게 자신의 작업을 스스로 평가할 줄 아는 배우들은 다음 작업에서는 무엇을 개선하고, 어디에 도전해야하며,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하는지에 대한 열쇠를 얻는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새로운 작업을 거듭할 때마다 자신의 예술적 생명력에 활력을 더해간다.


그러나 자신의 창조 결과에 대한 관객의 평가를 궁금해 하면서도 자신의 작업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등한시하는 배우들도 많다.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을 경시하는 예술창조는 비록 그 결과물을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도록 포장할 수 있지만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성장시킬 수는 없다. 그러한 작업을 계속하는 배우는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더라도 문득문득 공허감을 느끼고 종국에는 자신이 소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배우들은 관객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못한 배우들은 대개 관객의 평가에 갈대처럼 이리 저리 휘둘릴 뿐만 아니라 겸허하지도 못하다. 그들은 쉽게 좌절하므로 종종 배우생활을 포기하고 만다. 또한 칭찬만 듣고 싶어할 뿐 쓰지만 약이 되는 지적들을 피하려 하므로 예술적 발전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평가에 관한 하나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려 한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서툴고 기계적인 연기를 펼쳤지만 첫날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고 배우들은 모두 흥분되어 있었지만 유독 A만은 표정이 어두웠다. 자신의 연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날, 배우들은 전날보다 실수를 덜 했고 적극적이며 생동한 연기를 펼쳤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사실 관객의 반응이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좁은 공간에 많은 관객이 들어차 있을 때는 반응이 뜨겁지만 넓은 공간에 몇 안 되는 관객이 있을 때는 반응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쨌든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을 휘감았던 전날의 흥분은 자취를 감췄다. 몇몇 배우들은 의기소침해졌고, 몇몇 배우들은 대본과 연출의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나 A만 유독 흥분해 있었다. 그날 무대에서의 자기 연기가 정말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나는 관객의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휘둘리는 배우들보다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평가할 줄 아는 A가 훨씬 배우다운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다음날, 다른 배우들은 공연 중 관객의 반응을 의식하고 연연해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오직 A만은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2009년 8월 2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