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배우와 연기 7 작업 자체를 즐겨야 한다

류 성 2009. 8. 10. 02:52
 

배우와 연기 7

작업 자체를 즐겨야 한다.



-류 성-


관객들은 작품을 평가하지만 작업에 대해서는 거의 평가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하다. 작품은 공개되지만 작업은 예술가 자신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정인 작업이 어떠했든 결과인 작품이 좋다면 관객들은 그의 예술을 칭찬한다. 여기에는 과정이 좋으면 결과도 좋다는  믿음이 역으로 작용하는 바, 좋은 결과를 보고 과정도 좋으리라 추정하기도 한다.


관객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예술가가 작업을 홀시하고 작품을 뽑아내는 데에만 경도될 때 발생한다. 관객들은 잘 모르지만, 예술가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종종 외견상 그럴듯한 결과를 뽑아내기 위해 과정을 희생시킬 때가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연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느 극단의 작업 모습을 요약해보자. 연습은 연출가의 지시를 외우고 익히는 데 집중하지만 배우에게 창조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에는 인색하다.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를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상대배우와 토론하고 협업하기 보다는, 연출가의 지시 혹은 허가를 받으려 든다. 공연을 올릴 날짜가 다가올수록 연출가는 자주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그에 따라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그러나 일부 배우들은 이미 다 외웠다며 반복되는 연습을 지루해하며 기계적으로 연기한다. 초보 배우들은 연출가나 선배들에게 지적받거나 혼나지 않는 것이 목적인 듯 보인다.


그들의 작업은 연출가가 원하는 결과를 뽑아내기 위한 공정에 다름 아니다. 새롭게 창조하기 위한 시간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연출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배우들도 창조에 열정적으로 도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련한 배우들은 그야말로 나쁜 의미에서의 프로답게 작업하고,  미숙한 배우들은 위축되어 있으며 실수하지 않으려고만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보기에 꽤 그럴듯하고 관객들의 박수도 받는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작업과정에 대해 별달리 문제의식이 없으며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 중 배우 A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무대에서 연기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더구나 관객에게서 박수와 칭찬을 받을 때의 즐거움은 무엇에 비길 수 없다. 그 순간을 위해 지루하며 고통스러운 연습과정을 참고 견뎌낸다.'라고.


그러나 나는 그  극단이 잘못 작업하고 있으며 배우 A의 사고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시키고 있다. 관객의 박수를 받을 때 비로소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창조하는 기쁨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그들은 모르거나 혹은 간과하고 있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예술가의 생명은 작업 속에서 성장한다. 창조를 위해 도전하고 실험할 수 있는 기회인 작업과정이야말로 예술창조의 본질이다. 연극작업 또한 단지 결과를 뽑아내기 위한 공정이 아니라 작업에 참가하는 배우들의 창조적 열정을 격려하고 보장하는 과정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작가와 연출가는 자신의 그림에 배우의 연기를 끼워 맞추려 들지 말고 그들의 창조적 상상력이 발양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진지하고 창조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되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혁신에서 누구보다  배우가 앞장서야 한다. 작품과 연출의도, 자신이 맡은 역할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사색하며, 동료배우와 수차례 반복해서 연습하며 언제나 새롭게 도전하고 발견해야 한다.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연습은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도전하고 발견하는 연습은 언제나 흥미롭다. 또한 배우는 동료배우의 도전과 발견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배우의 연기란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으며 상대배우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극은 집단작업이기 때문에 이 점은 더욱 중요하다. 배우는 연기의 본질이 창조에 있으며 연극의 본질은 집단 작업에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또 하나의 안타까운 하나의 예가 있다. 배우 B는 작업에서는 불성실했지만 무대에서는 탁월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배우들도 많다. 그들은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비록 작업에 소홀하더라도 무대에서 그 재능을 발휘하는데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B 또한 그런 배우 중의 하나이며 그는 내심 자신의 재능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B는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었다. 그는 무대에서 관객의 박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작업 중에 결코 동료들의 박수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료들은 그의 재능을 부러워했지만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작업에 불성실한 그가 얼마나 오래 연기할 수 있을까.


거듭 강조하건대, 배우는 작업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작업에서 창조하는 즐거움을 모르는 배우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은 무대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관객의 박수는 이내 공허함으로 다가오며 그의 예술적 생명 또한 얼마 안 가 소진되고 말 것이다. 관객의 박수는 작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오직 작업에 충실해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한 관객의 반응에 겸허할 줄 알아야 한다.



2009년 8월 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