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배우와 연기 14 긴장의 극복

류 성 2012. 4. 11. 02:25

배우와 연기 14  긴장의 극복


-류 성-



나는 무대 공포증이 있다. 등장하기 직전부터 깊은 호흡이 불가능해지고, 이것은 무대 위에서 몸의 경직, 발성의 불안함으로 이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에 대한 관찰력과 조절력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적응을 하게 되지만, 첫 연기가 흔들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현상도 긴장의 일종이다.

 

배우는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긴장을 하게 마련이다. 적응장애를 일으키거나, 정신적으로 위축되거나, 근육이 경직되거나, 말이 빨라지거나, 호흡이 불안정해진다. 자연스러운 소리를 잃어버리는 것, 자기도 모르게 과잉하는 것도 긴장의 한 형태라고 봐야 한다. 배우의 긴장은 정도와 양태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일단 누군가에게 자신을 보여준다는 사실 자체가 긴장을 일으킨다. 게다가 자기가 아닌 타인의 사고와 행동을 수행한다는 점도 긴장을 일으킨다. 그 외에 심리적, 신체적, 환경적 요인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발생하며 또한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무대에 선 배우가 긴장을 제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긴장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긴장은 수시로 발생하고 심리와 신체의 곳곳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는 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아주 편안해 보였다고 한다. 말도, 걸음도, 사소한 행위조차도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고통스럽게 노력한 결과였다.


긴장은 크게 심리적 긴장과 신체적 긴장으로 나눌 수 있으며 신체적 긴장은 내외의 모든 근육과 기관의 경직현상을 말한다. 신체적 긴장은 해당부위의 수축과 이완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는 의지만으로도 극복된다. 그에 비해 심리적 긴장은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심리적 긴장과 신체적 긴장은 서로 연결되어 상호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스트레칭, 요가, 유산소 운동 등과 같은 신체활동을 이용하면 심리적 긴장을 극복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심리적 긴장을 극복하는 작업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특히 폭력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며 사람들 앞에서 창피스러운 짓거리를 하는 것, 길거리에 내보내 고함을 지르고 다니도록 강요하는 것 따위다. 그들은 어설픈 심리학적 지식을 근거로 그런 짓을 정당화하곤 하는데, 그것이 과연 어떤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배우는 그의 몸과 마음 그 자체가 악기다. 악기를 폭력적으로 다루면서 좋은 연주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배우의 몸과 마음에는 폭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예술이 창조되는 일은 드물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명상과 복식호흡은 심리와 신체의 이완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호흡이 깊고 안정적이 되면, 정서가 편안해진다. 편안해진 정서는 신체의 긴장을 제거하고 이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무술하는 사람들도 심호흡을 하여 호흡을 안정시킨다. 호흡이 정서를 안정시키고 나면, 몸은 두뇌가 시키는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일 준비를 갖춘다.


또한 주의집중력이 강화될수록 긴장은 효과적으로 극복된다. 예를 들어 극적 상황에 충분히 집중하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편안해 보이지만, 산만한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하고 경직되어 보인다. 주의집중의 대상은 사람이나 사물일 수도 있고 자신의 감각이나 느낌, 또는 생각일 수도 있다. 단 그것은 반드시 구체적인 것이어야 하며 또한 의지가 담긴 능동적인 것이어야 한다. 막연한 것을 막연히 보는 것으로는 주의집중의 상태에 이를 수 없다. 


긴장을 극복하는 훈련 방법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긴장을 극복하는 보다 근원적인 힘이 되어준다. 먼저 자기 연기에 대한 믿음은 커다란 도움이 된다. 역할에 대한 작업을 성실하고 올바르게 수행했다면 배우는 자기 연기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있게 연기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도 설득력 없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극도로 긴장될 수 밖에 없다. 단, 과도한 자신감은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작품에 대한 신뢰도 마찬가지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배우의 몸과 마음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누구도 부끄러운 무대에 서고 싶지는 않다. 좋은 연기는 좋은 작품에서 나오지 미숙한 작품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동료와 집단에 대한 믿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동료들간의 유대와 집단성이 고양되면 배우들의 사고와 표현은 보다 능동적이고 자유로워진다. 그 속에서는 보다 쉽게 또 오랫동안 창조적 상태가 이루어진다.



2012년 4월 1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