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배우와 연기 13 연기는 배우의 존재 자체에서 흘러나온다

류 성 2012. 4. 9. 11:39

배우와 연기 13  연기는 배우의 존재 자체에서 흘러나온다


-류 성-


배우는 작품을 책임지는 제1선에 있는 예술가다. 배우야말로 극작가보다, 연출가보다, 그 누구보다 막중한 책임을 가진다. 배우는 자신의 이성과 감성, 몸과 마음을 동원해 극의 의미를 구현한다. 연극이 인간을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고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힘은 궁극적으로 배우에게 있다. 관객의 사상과 정서는 배우를 통해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로토프스키의 연극론을 빌어 말하자면 배우는 관객을 수직 상승시키는 ‘승강기’다.


그러나 기술자 같은 배우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좋은 목소리, 적당한 끼, 신체적 조건 등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기술을 전시하여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 그만일 뿐, 작품의 의미와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 등은 안중에 없거나 그다지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무당 같은 배우들도 있다. 얼핏 보기에 그들은 자신의 진정성을 발휘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빙의현상처럼 그 때 잠시 자신의 몸을 빌려줄 뿐이다. 그런 배우들은 종종 무대 밖에서 실망과 배신감을 준다.


배우는 자신의 예술이 사회와 인간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재이며 보다 쓸모있고 보람있게 쓰일 수 있도록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좋은 배우들은 책을 항상 가까이 하며 다방면적인 지식과 간접적 경험들을 축적한다. 또한 사색을 즐겨하며 인간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다. 똑똑한 배우는 피곤하기만 할 뿐, 쓸모없다고 여기는 편견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편견일 뿐이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안목 자체가 낮다면, 그가 만들어 내는 예술도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이며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기술로써 자신을 어느 정도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기술은 화장과 같을 뿐이라서 종종 그것은 낡은 자신의 모습을 더 추악해 보이도록 만들기도 한다. 예술가로서의 배우는 기술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의 혁신과 성장에도 충분히 노력해야 한다. 배우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신의 예술에 대해 좀 더 긍지있게 대하고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배우는 고상한 이상과 역사와 사회에 대한 소명, 진실함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예술이 사소한 것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무대에 서는 배우라고 폼을 잡으며 거만을 떠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그저 남들을 웃기거나 울리기 위해 무대에서 까불어대는 사람쯤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드라마란 그 본질상 운명과 신, 사회구조와 편견 등에 맞서 투쟁하는 인간의 삶이며 극적 순간이란 인간의 위대성이 발현되는 순간을 말한다. 그것은 역할에 의해서도 표현되지만, 배우의 존재 자체로도 표현된다. 연기에는 배우의 존재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열정과 투지, 철학과 신념, 지성과 감성이 마련이다. 시인 김남주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표현능력, 기발한 발상법, 완벽한 형식 따위가 시적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내는 유일한 길은 위대한 삶이다.’


혹시 이것은 너무 이상주의적인 생각인가? 하지만 그런 이상조차 없이 살면 인생은 생존활동에 불과하고 배우란 하룻밤 즐기고 잊혀질 오락을 위한 일개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혹시 옳은 얘기긴 하지만 현실적이지는 못한 생각인가? 그래, 비현실적이라고 인정하자. 그러나 전태일이 되물었듯이 ‘그렇다고 내가 왜 현실과 한 패가 되어야 하는가?’


2012년 4월 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