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류 성의 예술 편지-2 주제의 덫

류 성 2008. 3. 12. 13:41


< 류 성의 예술 편지-2>

 

주제의 덫 



-류 성-



하兄.


이틀 전, 나는 兄의 근황을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공연을 올린 하兄의 작품이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이로 인해 兄이 낙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兄이 그 작품에 많은 노력과 애정을 쏟아 부었음을 알고 있는 나는 형의 낙담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백하건대, 사실 나도 하兄의 작품을 보았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조명실에 있는 兄에게 인사를 할까 생각했으나 그만두었습니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兄에게 찬사를 늘어놓을 수도 없었고, 나도 兄의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며칠간 兄의 이번 작품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리고 兄의 창작과정도 함께 돌이켜 보았습니다. 더불어 지난 시기 兄의 작품들도 떠올려보았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兄은 도대체 작품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이 편지가 兄의 탐구에 얼마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술작품에 주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제가 없는 작품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도 없지만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작품이 도대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학창시절에 兄이 해준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형은 언제나 작품에 의의있는 주제를 담아내려고 노력했고 이번 작품도 매우 훌륭한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예술의 책임을 다하려는 兄의 신념과 투지에 대해 나는 숙연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하兄.


외람되지만 나는 지난날 兄이 지나치게 주제에 경도된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예술가들의 창작과정에서 주제는 나침반의 역할을 합니다. 창작과정은 탐구의 여정이라 자칫 길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이때 주제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나침반입니다. 그런데 나침반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주지만 어떻게 가야하는지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저는 여기에 주목하게 됩니다. “어디로”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도 중요합니다. 조금 앞질러 이야기하자면, 우리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힘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주제가 아니라 형상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예술가들의 목적은 형상의 창조에 있지 주제의 표현에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제는 형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지요. 예술가는 형상을 창조하고, 창조된 형상은 주제를 드러낸다고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우리 예술가들은 창작 작업을 주제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하나의 소재에서 출발하기도 합니다. 또한 인물에서 출발할 수도 있고 상황에서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출발은 아니겠지요. 이 모든 것들이 형상으로 덩어리질 때 예술가의 창작은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형상은 주제와 소재 등이 뒤섞인 하나의 덩어리입니다. 여기에서 이들을 칼로 무우 자르듯이 떼어내고 분리하는 것은 예술가의 역할이 아닙니다. 아니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창작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내 생각에 그것은 창작을 하는 예술가의 몫이라기보다는 평론가, 혹은 연구자의 몫입니다.


예술가가 단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작품을 쓴다면, 예술창작의 목적과 방법이 단지 주제의 표현에 있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주제에 경도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작품을 읽고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시어에 대해 토론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내가 받았던 느낌-비록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매우 뜨거웠던-에 대한 발표숙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주제와 소재, 인물, 구성을 떼어놓고 분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달달 외우고 있었던 주제를 답안지에 써넣었습니다.


내가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곤혹스러울 때는 작품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 입니다. 작품을 대중과 만나게 해 줄 기획자도 묻고 홍보역할을 해줄 기자도 묻습니다. 작품의 주제가 무엇이냐고. 그때 나는 매우 곤혹스럽습니다. 인물과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짧은 지면과 프리젠테이션 시간은 ‘간단히 주제만 말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요구는 나에게 강박으로 작용하여 창작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예술가 스스로도 주제에 경도되기 쉬운 듯합니다. 나 또한 기왕이면 의의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내가 내놓은 주제가 진부하다고 평가받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주제의식이 미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두렵습니다. 보다 참신한 주제, 문제성 있는 주제,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주제에 매달리게 됩니다. 주제가 잘 드러나는지 고심합니다.


하兄.


나는 지난날 우리가 함께 작업을 했던 몇 작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우리는 형상을 소홀히 한 채 주제에 경도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주제의 덫에 걸려들었고, 주제에 형상을 끼워 맞춘 듯한 작품을 창조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우리의 사상적 입장이 무엇인지 주지시킬 수는 있었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제를 제시했지만 독자와 관객의 심장에 파고들지 못함으로써 우리의 작품들은 그만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물론 참신하고 문제성 있는 주제를 내놓은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응당 우리들이 예술가가 주목을 돌려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주제에 경도되어 형상을 소홀히 하게 되면 창작과정도 어려워지고 좋은 작품도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좋은 주제를 제시했으나 감동적이지 못하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兄.


兄은 주로 주제에서 작품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만, 나는 兄이 자꾸만 ‘주제의 덫’에 걸려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兄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창작에 접근할 것을 조심스럽게 권하려고 합니다. 인물에서, 또는 상황에서 출발해보십시오. 그리고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의 주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생활적인 성격의 형상에 집중해보십시오.


“예술가는 자신의 세계관에 기초해 생활을 인식하고 분석평가하며 그에 맞는 감정정서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분명하고 타당한 사실이다.”


지난 날 兄이 내게 보여준 구절입니다. 만약 형이 생활 속에서 자신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인물 혹은 상황을 잡아낸다면, 그 형상에는 이미 兄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창작에 접근하는데 兄이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형상에 대한 탐구가 곧 주제에 대한 탐구라는 것을 확고하게 믿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兄이 느끼는 감동을 믿었으면 합니다.


봄기운이 무르익어 감에 따라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兄의 마음도 곧 그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향그러운 봄날 같은 兄의 작품을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건강하세요.


<끝>


 ***편지형식이지만 가상의 인물과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쓴 글임을 밝혀둡니다.